제가 누굴 닮았겠어요
평소 엄마는 나에게 늘 말씀하셨다.
"여자로 태어났다 뿐이지 뭐 하는 것 보면 상남자 같아"
나의 추진력과 사고처리 능력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인생에 걸림돌 들을 굴삭기로 부수고 길을 만들어가며 여기까지 왔다.
그렇게 살아가다가도 넘어지거나 커다란 씽크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문제에 직면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의 엄마는 굳건히 선을 긋고 엄마의 자리를 지키셨다.
잘했다거나 잘못했다는 말조차도 하지 않으시고 그저 지켜만 보셨다.
내가 하우스푸어가 된 날 엄마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끝내 내 앞에서 눈물을 쏟아 내시거나 어쩌면 좋으냐는 단 한마디의 걱정이나 위로의 말씀도 없으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속 기둥이었다.
한 번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없지만 온 눈빛으로 말하고 계셨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잘 살아 내야만 했다.
시집가는 딸에게 해준 엄마의 한마디
"네가 선택한 길이니 네가 책임지며 살아햐 해"
스스로 선택하게 하되 그 책임도 스스로 지게 하셨다.
그런 엄마가 싫지 않았다.
그 덕에 난 모든 부분에 당당할 수 있었다.
잘 하진 못해도 책임은 다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향해 엄마는
"젠 누굴 닮아 저렇게 독한지 모르겠어"
난 엄마를 닮았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당신 안에 있는 모든 계산력과 지혜를 동원해 삶을 살아 내셨다.
미망인이 되신 때에도 슬픔을 오래 표출하거나 목놓아 울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나가셨다.
그리고는 마지막도 시간을 길게 주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가버리셨다.
몇 해 전부터 만나기만 하면
"지금이 제일 행복해" 하시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그렇게 행복한 엄마로 남기 위해 늘 웃으며 행복하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20여 년간 반복된 수술과 위기에서도 늘 웃으며 자식들을 향해
"고맙고 미안해"
하시던 엄마가 단 한 번 죽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바로 작년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받은 수술 후였다.
"너무 아프다. 그냥 이쯤에서 죽었으면 좋겠다"
하시며 푸르고 드높은 하늘을 향해 한숨을 내쉬셨다.
나는 엄마가 너무 아프다 돌아가시게 되는 날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 엄마를 보내는 날에도 독한 구석을 들어내고 말았다.
호흡기에 의존해 계신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언제나 의식이 없는 상태였어도 무의식 중에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있었던 나의 엄마였는데
이번에는 엄마는 그곳에 안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난 형제들에게 엄마를 보내드리자고 했고, 어떤 추가적인 수술도 반대한다는 의견을 말했다.
우리 형제들은 정이 많은 편이다.
모두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고 너무나 이성적 사고에 집중하고 말았다.
어떤 죄책감이나 원망을 감수하더라도 엄마를 보내드리기로 마음먹고
형제들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다행히 형제들 모두가 의견을 따라 주었고, 우린 그렇게 엄마를 보냈다.
나는 어쩌면 엄마의 지켜보는 자세를 가장 많이 배우고 닮았는지 모른다.
거울을 보며 내 안에서 엄마가 보이는 날이면,
조금 더 그립고
조금 더 슬프고
조금 더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