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호롱불은 깊고 그윽했다
담벼락을 넘어 불어오는 칼바람에
문풍지 떨리는 소리를 듣는
호롱불의 미세한 흔들림이 아름다웠고
호롱불이 만드는 그늘이 좋았다
바람 소리에 뒤섞여 간간이 들리는
개 짖는 소리가 다급할수록
군불 지핀 안방은 아늑했고
겨울이 익어가는 아랫목에
두 손을 녹이며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잔잔한 미소가
낮은 조도(照度)에서 더욱 빛이 났는데
그때 본 외할머니의 주름진 미소는
어머니의 미소와 영락없었고.
NOTE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내가 막내로 워낙 어렸던 데다가 외할머니께서 중풍으로 몸져누워 말년을 보내신 까닭도 있었다.
그만큼 외할머니를 뵐 기회가 적었다.
유일하게 어느 겨울 외갓집에서 보낸 하룻밤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밝기가 많이 부족한 호롱불이 신기했고, 그윽한 어둠 속에서 깊어가는 겨울이 정겨웠다.
오래 잊고 있었지만 외할머니의 모습이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어머니와 서로 닮았다.
마침 어머니께서도 외할머니와 같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운 어머니를 따라 외할머니에 대한 유일한 추억까지 소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