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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 Apr 17. 2024

10화  똥 먹지 마

“선생님, 우리 개가 비만인지 좀 봐주세요.”

저는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묻습니다. 묻고 나서는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또 비만이라는 말을 들을까 봐서요.      


이 전에 갔던 동물병원에서 수의사가 말했습니다.

“솔이는 비만이에요.”

“예에?”

“5kg 안팎이 적정 몸무게이니 당장 살을 빼세요. 정 힘들면 적어도 6kg 초반 선은 유지해야 해요.”

제 머릿속에서 온갖 말들이 옹알거렸어요. 그러나 그 말들은 언어란 구체성을 띠지 못했어요. 솔이의 몸무게는 7.2kg. 적정 몸무게라는 5kg을 한참 넘어서 있다는 사실만이 안갯속의 등불 같았어요.

그날 바로 솔이는 다이어트에 돌입했어요. 간식을 끊고, 점심 저녁에 주는 고기의 양을 줄이고, 사료 급여를 자율 급여에서 시간제 제한 급여로 바꿨어요. 전자저울을 사서 사료 한 톨의 무게까지 달았어요. 그렇게 닷새가 지나자 솔이의 등허리가 갸름해졌어요. 강변 잔디밭에서도 살 좀 빠졌다는 소릴 들었죠. 저는 기뻤어요. 고작 닷새간이었고 고작 200g 빠졌지만 고생한 보람이 느껴졌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그 뛰놀기 좋아하던 솔이가 뛰노는 걸 힘들어했어요. 잠깐 뛰고는 잔디밭에 납작 엎드려서 헉헉거렸어요. ‘작아도 에너자이저’라는 소리를 듣던 솔이였는데 이젠 바람 빠진 고무풍선 같았어요. 다이어트 결심이 흐물거렸어요. 이렇게까지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갈퀴가 되어 제 마음을 긁어댔어요. 다이어트는 모진 마음으로 밀어붙여야 끝을 볼 수 있다는데 이래서야….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 하니가 왔어요. 하니를 보자 경각심이 꽃부리에 숨어 있다가 놀란 벌의 벌침처럼 저를 찔렀어요. 흐물거리던 다이어트 결심이 배추 포기 묶이듯이 다시 옭매였어요.

하니는 초고도 비만견이거든요. 몸뚱이는 공기를 빵빵하게 넣은 둥근 풍선 같고, 구불구불 접힌 목살은 잘 갈아 놓은 밭고랑 같아요. 뒤뚱뒤뚱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옆으로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고요. 그래도 지지난 주에는 하니의 허리선이 살짝 살아났었는데. 하니 할머니에게 하니 살이 빠진 것 같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좋아서 호호 웃었지요. “간식 끊고 다이어트 사료만 멕여서 계우 200그램 빠졌는데 표가 나?” 

하니 할머니가 하니의 전용 자가용에서 눈만 삐죽 내밀고 있는 하니를 들어내었어요. 몰티즈 하니의 전용 자가용은 바퀴 달린 장바구니예요. 할머니는 늘 하니를 장바구니에 태워서 여기까지 끌고 오지요. 

자가용 밖으로 나온 하니는 지지난 주에 살아났던 허리선이 뭉개져 있었어요. 요요가 온 듯했어요. 나무 의자 끝에 하니 자가용을 주차하는 하니 할머니에게 애가 탄 봄이 엄마가 말했어요. 

“아이, 참! 하니 걸려서 오라니깐요.”

“나도 그러고 싶지. 근데 야가 안 걸으라고 해. 가만히 장승처럼 서 있어. 내가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내가 못 견디겠어. 몹시 힘들어. 어서 태워서 여기 와야 내 다리가 좀 쉬지.”

“하니 살을 빼려면 하니 할머니가 하니를 이겨 먹어야지이이.”

“내가 이겨 먹고 싶어도 내가 마음이 약해서 그게 안 돼야.”

보슬이 엄마가 웃으며 끼어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보슬이도 비만이잖아요.”

하니 할머니가 굽은 허리를 뚜뚜뚜 폈다가 나무 의자에 앉았어요.

“내가 저거 눈을 안 쳐다봐야 하는데 쳐다보면 안 돼야. 그걸로 끝이야. 넘어가버려. 야가 원래는 안 이랬지. 날씬하고 잘 쫓아다녔는데, 내가 모르고 고양이 사료를 먹였더니 요렇게 돼버렸네.”

그러나 지지난번에 들은 하니 엄마의 말로는 하니가 초고도 비만견이 된 건 단순히 고양이 사료를 먹었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3개월 전에 딸이 길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그 고양이들이 아픈 고양이들이어서 애지중지 보살피다 보니 하니가 한순간에 사랑 순위에서 밀려나 버렸대요. 하니의 폭식이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고요. 그걸 깨달은 건 하니가 초고도비만이 되고 나서였대요. 

“고양이 사료를 끊고 다이어트 사료를 먹이는데 살이 영 안 빠져. 슬개골 때문에 내가 걱정이야.”

하니 할머니의 말을 보슬이 엄마가 받았어요.

“우리 보슬이도요. 슬개골 탈골 1.5기래요. 비만일수록 슬개골에 가해지는 압박이 커진다고 동물병원에서는 살을 1kg 빼라고 하대요. 일단 근육을 강화하는 영양제와 뼈를 강화하는 영양제를 사서 먹이면서 다이어트를 병행하는데, 요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안 주고 배길 수가 없더라고요.”

구름이 엄마가 말했어요.

“저는 말린 버섯을 간식으로 먹여요. 살이 덜 찌개. 사슴고기도 살이 안 찐대요.”

봄이 엄마가 말했어요.

“고구마말랭이가 제일 살이 많이 찌는 것 같더라고요. 조금만 먹어도 금방금방 표가 나요. 배도 빵빵 궁댕이도 빵빵.”

“우리 하니는 고구마 끊었어. 맛본 지 한참 됐어.”

“우리 보슬이도 간식을 끊고 나니 마음 아파 죽겠어요. 눈치 보여서 과일도 마음대로 못 먹겠고. 미안해서 저 몰래 뭘 먹을 수가 있어야죠. 사실 얘보다는 나 때문에 다이어트가 무너진다니까요. 개 다이어트는 엄마가 강해야 성공하는 것 같아요. 개들도 만병의 근원이 비만이라는데, 쩌.”

그럼요. 정말 쉽지 않아요, 개들의 다이어트. 보통 심장으론 못 해요. 제가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애절한 눈빛에 순간순간 무너지는 마음을 곧게 세우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더라고요. 그래도 몸이 동글동글 농구공 같은 하니를 보니 무너지던 제 마음이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서네요.  

    

이야기하다 말고 봄이 엄마가 갑자기 어디로 달려가더니 봄이를 안고 왔어요. 봄이가 있던 곳을 보니 도도 엄마가 고구마말랭이를 개들에게 나눠주고 있네요. 어느새 솔이도 도도 엄마 앞에 앉아서 간절한 눈빛으로 도도 엄마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저는 솔이를 잡으러 총총총 출동했어요. 

고구마말랭이가 막 솔이를 향해 가고 있어요. 

“안 돼요, 솔이는!” 

도도 엄마가 말했어요.

“너는 안 된대. 미안.”

고구마말랭이가 솔이를 건너뛰어 포메라니안의 입속으로 들어갔어요. 솔이가 포메라니안을 응징했어요. 깨깽깽. 저는 두 손으로 솔이를 낚아 올렸어요. 

“너! 엄마가 간식 안 된다고 했지? 예민하게 굴지 마. 흥분 가라앉혀.”

저는 솔이를 들고 간식 파티에서 멀어졌어요. 제 손에 잡힌 솔이는 물 밖으로 나온 뚬벙의 물고기처럼 파닥거렸지요.

“지금은 엄마가 원망스럽겠지. 하지만 다 널 위해서야. 어제 봤던 13살 오빠, 기억나? 그 오빠도 비만 때문에 당뇨가 생겼고 당뇨 때문에 눈이 안 보이게 된 거래. 눈이 안 보이는 세상이 얼마나 답답하겠니?”

그래도 그 개는 엄마가 막대기로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강변 잔디밭을 산책이라도 하지요. 제가 아는 한 개는 눈이 멀고 귀가 멀고 관절염까지 심해서 아예 산책을 못 해요. 가끔 개모차를 타고서 콧바람을 쐬는 게 다지요.

“너도 그러고 싶어? 아니지? 그러니까 미리미리 건강을 챙겨야 하는 거야. 눈 꼭 감고 딱 3개월만 참자. 3개월만 지나면 익숙해지는 단계에 접어들 거고 그럼 훨씬 수월해질 거야.”

저는 포동이 아빠의 말을 되뇌었어요. 솔이는 제 말을 잘 알아들은 것 같았어요. 목덜미에 일으켰던 털을 순둥순둥 눕히고 제 팔에 머리를 기대었어요. 

그런데 정말로 3개월만 지나면 수월해질까요?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포동이는 지금도 수월해 보이지 않거든요. 간식 파티에서마다 포동이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싸워대요. 엊그제는 소풍 나온 연인의 피자 상자를 덮쳐서 순식간에 피자 한 조각을 물고 달아나 3초 만에 먹어버렸어요. 우걱우걱 씹어먹지도 않았어요. 한입에 통째로 꿀꺽 삼켜버렸어요. 포동이 아빠가 잡으러 갔을 때는 이미 늦었어요. 포동이 아빠가 피자를 삼킨 포동이의 입을 찰싹찰싹 때렸어요. 하지만 포동이 배 속으로 들어가버린 피자를 도로 게워내게 하지는 못했지요. 어제는 포동이가 하늘을 보고 나란히 누운 연인의 피크닉 자리로 달려가 테이크 아웃 커피를 덮쳐서 커피 목욕을 했고요.    

 

솔이 친구 코코가 왔어요. 저는 솔이를 잔디밭에 내려주었어요. 코코는 어깨를 솔이에게 살살 비볐고 솔이는 화를 냈어요.

“으르렁!”

코코가 가버렸어요. 저는 솔이에게 말했어요.

“왜 그래? 코코가 놀자는데.”

솔이가 꼬리를 내렸어요. 제 눈치를 보면서 잔디밭에 엎드렸어요. 그러고는 친구들이 신나게 뛰노는 모습을 심드렁하게 지켜만 보았지요. 이제 겨우 8개월짜리가 세상살이의 쓴맛 단맛 다 본 늙은이 같았어요. 두 눈은 이슬 젖은 버찌 같았고요. 

그때 붉은 개가 왔어요. 놀자고 솔이를 툭툭 쳤어요. 솔이는 으르렁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자 붉은 개도 코코처럼 가버렸어요. 

제 마음에 또 위기가 찾아왔어요. 이렇게까지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 다이어트 결심이 녹아내리기 시작했어요. 손가락은 이미 가방 안으로 들어가 닭가슴살 칩 봉지를 만지작거렸지요.

그 순간 잔디밭에 한가운데 있는 빵빵한 궁둥이가 눈에 들어왔어요. 단호박 호빵 같은 하니의 궁둥이. 하니의 궁둥이가 움직이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처럼 초록색 잔디 위에 가만히 올려져 있었어요. 저기 나무 의자 쪽에서 하니를 부르다 부르다 지친 할머니가 어기적어기적 걸어와서 하니를 절구통 들 듯 들고 갔어요.

녹아내리던 마음이 된서리를 맞고 다시 얼어붙었어요. 저는 악어 입에라도 넣은 것처럼 얼른 가방에서 손을 뺐어요.    

  

다음 날에도 강변 산책길을 걷는 솔이의 발걸음은 느렸어요. 다이어트 전에는 강변에만 오면 신이 났는데, 비둘기 냄새, 청둥오리 냄새, 수달 냄새, 물고기 냄새, 지렁이 냄새, 풀냄새, 온갖 냄새에 환장해서 토끼처럼 껑충껑충 뛰어다녔는데, 지금 솔이는 세상 살맛이 하나도 없다는 듯이 아무 냄새도 맡지 않고 느릿느릿 걷기만 했어요. 

그러던 솔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어요. 킁킁 냄새를 맡았어요. 숨어 있던 에너지를 모조리 코로 끌어모았어요. 풀밭 속에서 어떤 강렬한 냄새가 생의 의욕을 막 끌어당기는 것 같았어요. 

지렁이 냄새일까? 가끔 솔이는 풀밭 속에서 자연 건조되어 꼬들꼬들하게 잘 마른 지렁이를 찾아내 짭짭 씹어먹곤 했어요. 저에게 들키면 입에 넣었던 지렁이를 퉤 뱉어냈는데, 지렁이 조각이 미처 땅에 떨어지지 못하고 입술 털에 달랑달랑 붙어 있곤 했지요. 

다이어트 중일 때 풍겨오는 지렁이 냄새는 얼마나 향기로울까? 우리가 배고플 때 맡는 스테이크 냄새 같겠죠. 눈 감아 줄까? 꼬들꼬들 잘 마른 지렁이는 살이 덜 찔 테니까. 더구나 자연 건조된 지렁이니 그야말로 자연식 스테미너 음식일 테니까. 솔이를 위해서 궁색한 변명을 지어낸 저는 일부러 강 너머 산을 바라보았어요. 내가 한눈 파니라고 못 볼 때, 어서 빨리 먹으라고. 

강 건너의 산은 모진 강물에 깎여 갈비뼈가 드러났고 핼쑥했어요. 그래도 굳건했죠. 저는 저 산처럼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핼쑥하지만 굳건한 솔이를 상상했어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솔이에게로 눈을 돌린 순간 저는 충격을 받고 뻣뻣하게 굳어버렸어요.

OMG! 오 마이 갓!

솔이 앞에는 굵직한 똥이 놓여 있었어요. 그것도 두 덩어리나. 똥을 눈 지 시간이 꽤 흘렀는지 겉은 검은색이었어요. 저는 몸서리치며 두 덩어리의 똥을 더 꼼꼼히 바라보았어요. 한 덩어리는 온전한 검은색이었는데, 다른 한 덩어리는 검은색 안에 감춰져 있던 본래의 똥 색깔인 노란색이 3분의 1쯤 드러나 있었어요. 마치 누가 뜯어먹은 것처럼.

“야아!”

저는 리더줄을 당겼어요. 솔이는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텼어요. 그리고 그 노란 부분을 혀로 날름 핥았어요. 맛있다는 듯이. 행복하다는 듯이. 

“너!”

저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어요. 줄을 있는 힘껏 끌어당겼어요. 솔이가 풀밭에서 끌려 나왔어요.

솔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줄을 고정한 후 발로 밟고서 저는 가방에서 물수건을 꺼냈어요. 솔이 입을 억지로 벌렸어요. 이빨과 혓바닥을 닦아냈어요. 솔이가 싫다고 고개를 옆으로 젖힐 때마다 저는 분노로 가득한 팔 힘으로 저지했어요. 마침내 솔이가 제 손길에 순응하고, 저는 솔이의 입안을 싹싹 닦아냈어요. 그런데도 무언가 찝찝했어요. 솔이의 입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어요. 똥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죠. 새 물수건을 꺼내서 또 이빨을 낱낱이 닦았어요. 또 혓바닥과 입천장을 쓱싹쓱싹 훑었어요. 또 냄새를 맡아보았어요. 아무 냄새가 안 났지만, 그래도 미심쩍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찬찬히 솔이의 숨결 냄새를 맡았어요. 그 숨결에 미세한 똥 냄새가 스민 듯했어요. 

“으이이이.”

저는 몸서리를 쳤어요. 가방에서 물통을 꺼냈어요. 뚜껑을 열고 솔이 입에 물을 들이부었어요. 솔이가 캑캑거렸어요. 그러든가 말든가 중요한 것은 솔이의 숨결 냄새. 아직도 똥 냄새가 남은 듯했어요.

저는 입술을 깨물었어요.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집으로 가서 양치질하고 입안을 수십 번은 헹궈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야 처음처럼 깨끗해질 것 같았어요. 저는 주섬주섬 물수건과 물통을 가방에 챙겨 넣고 집을 향해 걸음을 바삐 놀렸어요. 솔이는 꼬리를 내리고 저를 따라왔어요.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에 다다랐어요. 그 계단을 딛는 순간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그런들 이 찝찝함을 지울 수 있을까?

아무리 솔이의 입을 닦아내고 헹궈내고 양치질한들 이 찝찝함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두커니 서서 언덕배기를 향해 뻗어있는 계단을 올려다보았어요. 오를까 말까. 망설이다 고개를 돌려 솔이를 보았어요. 솔이의 동공에 검은 두려움의 꽃이 피어 있었지요. 저는 숨을 크게 하~ 내쉬었어요. 깨진 옹기 화분 같은 마음을 토로했어요.

“나는 니가 그럴 줄 몰랐다. 어떻게 똥을 먹니? 세상에 먹을 게 없어서 똥을 먹니? 엄마가 밥을 안 줬니, 고기를 안 줬니? 양만 조금 줄였을 뿐 줄 건 다 주잖아. 그런데 똥을 먹어? 누가 싼 줄도 모르는 똥을…. 저 더러운 똥을….”

조곤조곤한 제 말이 위로로 들렸나 봐요. 아래로 축 처져 있던 솔이의 꼬리가 수평으로 뻗어 올랐어요. 저는 입을 샐쭉거렸어요. 큰 충격이 지나간 제 마음자리는 유성이 충돌한 듯 커다란 구멍이 적나라한데, 이렇게 허망한데, 저를 바라보는 솔이의 눈동자는 속 편한 세상이었어요.

저는 계단에 쭈그리고 앉았어요. 솔이는 제 앞에 앉았어요.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며 같은 풍경을 바라봤어요. 

응달진 그늘을 업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퍼렇게 멍든 바람이 불어 가고, 씨발씨발 새들이 욕을 하며 날아가고, 잔디 깎듯 털을 깎은 개들이 부끄러움에 울컥울컥 지나갔어요. 그렇게 주름진 시간이 구불구불 지나가는 동안에도 제 상심은 여전히 커다란 구멍 안에 머물러 있었죠. 

흘깃 솔이를 바라봤어요. 나와 달리 솔이는 똥을 먹기 전보다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시간 위를 걷는 것들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솔이의 눈엔 햇빛을 업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산들산들 바람이 공중에 몸을 굴리면서 불어 가고, 랄라라라 새들이 노래를 부르며 날아가고, 잔디 깎듯 털을 깎은 개들이 흥겹게 탭댄스를 추며 지나가는 듯했어요. 내겐 생채기가 된 그 사건이 솔이에겐 오히려 힘이 나는 사건인 듯했죠. 

사건을 대하는 온도의 차이가 분명했어요. 그 사실에 저는 또 충격을 받고 흔들렸어요. 

… 사람들이 지나가고 바람이 불어 가고 새들이 날아가고 개들이 지나갔어요…

한참 뒤에야 저는 그 사건이 내게는 사화산에서 용암이 솟구치는 일이었지만, 솔이에게는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일이라는 걸 인정했어요. 내가 느끼는 경악과 내가 느끼는 더러움과 내가 느끼는 찝찝함은 오롯이 내 몫이라는 걸 인정했어요. 두 덩이의 똥에서 솔이가 나와 다른 것을 보았음을 인정했어요. 그 똥에서 오돌오돌 깨물어서 삼킨 사료의 냄새를, 아작아작 씹어서 삼킨 송아지 목뼈의 고소한 골수 냄새를 맡았음을 마침내 인정했어요. 

저는 일어섰어요. 착잡하게 잔디밭 쪽을 바라봤어요. 그곳에 가면 개들이 있고 보호자들이 있을 텐데. 웃으며 인사하고 얘기 나눌 기분이 들지 않았어요. 우두커니 서서 가시 무성한 풀을 헤치고 보드라운 흙을 매만지듯이 마음 밭을 호미질했어요. 그런 후 저는 한 발을 잔디밭을 향해 떼었어요. 그 길은 아까 걷던 강변 쪽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었죠. 자전거도로와 인라인스케이트장 사이에 있는 붉은 블록 길이었어요. 그 길엔 똥이 없겠지만, 설령 있더라도 풀밭이 없어 한눈에 보일 테니까요. 단박에 똥 먹는 동작을 차단할 수 있을 테니까요.  

    

마음에 낀 그을음을 숨기고 잔디밭에 당도하니 둥이 할머니가 말하고 있었어요.

“… 잠깐 집을 비우면 어떻게 꺼냈는지 사료를 끄집어내서 바닥에 흩어놓고는 무지막지하게 먹어. 그러고는 소화를 못 시켜서 여기저기 막 토해놓고. 내가 못 살겠어. 개가 원래 이런가?”

봄이 엄마가 말했어요.

“펫샵에서 온 애들이 대부분 그래요.”

“그으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소형견을 좋아해서요. 적정한 사료를 줘야 하는데 더, 더, 더 작은 개를 분양하려다 보니까 죽지 않을 만큼만 사료를 줘요. 둥이도 배가 무척 고팠을 거예요.”

제가 물었어요.

“배고프면 똥도 먹나요?”

봄이 엄마가 손으로 제 팔을 살짝 쳤어요. 

“나는, 첨에, 봄이가 자기 똥을 먹는 것을 보고 엄청나게 충격받았잖아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얘들이 철창에 갇혀서 하루 죙일 뭐 하겠어요? 그 좁은 철창 안에서. 할 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사료는 죽지 않을 만큼만 주지.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요? 그때 자기 똥이 보였겠죠. 눈을 씻고 봐도 철장 안에서는 먹을 게 자기 똥밖에 없으니까. 어떡해요? 자기 똥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자기 똥에서 소화되지 않은 것들을 빼서 냠냠냠. 그렇게라도 먹어야 살지, 안 그래요? 그런 상황이라면 나라도 그랬겠더라고요.”

“우리 둥이도 그런데. 얘는 자기 똥도 먹고 남의 똥도 먹더라고. 참말로 더러워 죽겠어~.”

“좀 전에 솔이가 똥을 먹었잖아요! 이따만하게 굵은 똥을. 저 강둑 풀밭에서, 대형견이 눈 똥 같았는데 그 커다란 똥을 치우지도 않았어! 봄이는 지금도 먹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아주 가끔만 먹으니까. 내가 보고 ‘안 돼!’하면 얼른 안 먹은 척 딴 곳을 쳐다봐요. 지 입가 털에 똥이 묻어 있는데! 그 입으로 뽀뽀해 대니 내가 죽죠. 나는 쟤랑 뽀뽀하기 싫어엉~.”

이어진 봄이 엄마의 말에 의하면 개가 똥을 먹는 증상을 식분증이라고 한다네요. 원인은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한 가지 원인이 췌장 효소가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서 똥에 흡수되지 않은 영양소가 남아 있기 때문이래요. 개들이 가장 좋아하는 똥이 사람 똥이라 하고요.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똥이 초식 동물의 똥이래요. 사람 똥과 초식 동물의 똥에는 개들이 필요로 하는 성분이 들어있어서 그렇다나요.

“나는 둥이가 똥 먹는 게 싫어서 왜 똥을 자꾸 먹느냐고 혼을 내. 그래도 저거는 소용이 없어.”

“우리 구름이도 똥을 먹었는데 지금은 안 먹어요. 사료를 더 줘보세요. 둥이도 배를 곯아서 그럴 수도 있어요.”

“그렇게 먹어대면 살이 쪄서 안 돼. 둥이처럼 작은 개들은 슬개골이 안 좋아서 비만이 되면 안 된다더라고. 수술해야 하잖아.”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니까 이제는 사료를 안 먹더라고요. 한 낱씩 한 낱씩 재미 삼아 먹는 것 있죠? 하루죙일 먹어요, 하루죙일. 사료가 껌도 아니고.”

“우리 둥이도 그렇게 될까? 똥도 끊고?”

“펫샵에서 굶었으니까 먹을 만큼 먹고 나야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겠어요? 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 샵에서 그렇게 주면 안 된다고 했어. 20그램씩만 주라고 했다고. 그래야 많이 안 큰다고 했단 말이야.’ 그 말을 듣고 내가 그랬어요. ‘야, 너한테 그만큼씩만 주면 너는 살겠냐? 얘도 살아야 할 것 아니야. 굶겨 죽일 거야?’ 그랬더니 딸이 그러는 거예요. ‘샵에서 그만큼씩만 주라고 했다고. 얘가 이만큼 크면 엄마가 책임질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자기들은 작게 만들어서 비싸게 분양하려고 그러는 거지. 나는 얘한테 그렇게 못해. 기본적인 생존권은 지켜줘야 할 것 아냐. 너는 장난감을 데려왔니, 생명을 데려왔니?’ 그랬더니 딸이 더 이상 뭐라고 안 하더라고요.”

“둥이도 분양하는 곳에서 딱 20g만 주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것 갖고는 성에 안 찼겠어. 사료를 주면 게눈 감추듯이 먹고는 또 달라더라고. 우리는 살찔까 봐 더 주질 못했지.” 

“조금만 더 줘보세요. 배가 고프면 애들이 예민해지더라고요. 살이 찐다, 싶으면 그때 조절하시고요.”

“그래서 솔이도 똥을 먹었을까요? 다이어트하느라 배고파서?”

봄이 엄마가 말했어요.

“식분증의 또 다른 원인은 스트레스래요. 다이어트는 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니까. 근데 솔이가 왜 다이어트를 해? 이 근육질이?”

“동물병원에서 비만이라고 살 빼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어머나, 말도 안 돼! 솔이는 근육이 많잖아요. 근육 무게도 쳐야죠. 다른 동물병원에 가서 물어봐요. 웃기는 동물병원이네.”

순간 텁텁한 마음에 하얀 개망초가 피었어요. 

     

저는 가만히 기다립니다. 수의사가 솔이의 뒷다리를 잡고는 말합니다. 

“와, 이 근육 봐라.”

저는 픽 웃습니다. 그러나 다시 긴장합니다. 수의사의 손이 솔이의 뒷다리에서 배, 가슴, 목, 앞다리를 차례차례 더듬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저는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의사가 말합니다.

“몸무게만 가지고 비만을 판단할 순 없어요. 체형을 봐야 하는데요, 이 정도 근육이면 몸무게가 좀 나가겠죠? 뼈도 굵고 단단하네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솔이는 비만이 아니에요. 배도 나오지 않았고요, 갈비뼈가 손으로 만져지고요. 앞으로 이 정도 몸무게를 유지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긴 숨을 내쉽니다. 

이번이 세 번째 진단입니다. 지금까지 솔이의 진단 결과를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비만 소견 대 정상 소견 = 1 대 2. 저는 결론을 내립니다. 

솔이는 비만이 아니다!

닭가슴살 칩을 간식으로 먹이고 솔이와 강변 잔디밭으로 산책 갑니다. 솔이의 꼬리는 강아지풀 같고 저는 흰 구름 같습니다. 비만이란 짐을 마음에서 내려놓고 나니 울근불근한 솔이의 뒷다리가 튼실한 근육으로 보입니다. 이전엔 셀룰라이트로 밉보였던 이 튼실한 근육이 이제는 자랑스럽습니다. 많은 것을 처음으로 되돌릴 예정입니다. 점심 저녁에 주는 고기의 양도, 간식도, 사료 급여도 자율 급여로…. 

그러나 뽀뽀 금지는 이어집니다. 솔이가 풀밭에서 냄새를 맡을 때의 감시망도 헐렁헐렁 늦추지 않습니다. 그 굵다란 똥은 아직 그 자리에 있고, 그곳을 지날 때 솔이가 입맛을 다십니다. 그 똥 맛이 추억의 맛으로 되살아나나 봅니다. 

그래도 솔이야, 똥은 먹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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