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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국물 맛집 02화

어제 먹은 술이... 들깨

들깨 미역국(명동밥집)

by 소채

"어제 먹은 술이 아직도 깨지를 않네요. 그래서 들깨 미역국!!!"

한참 국을 끓이는데, 봉사자가 지나가면서 농담을 던지고 간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재 개그에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끄덕여 본다. 조금 있다가 다른 봉사자도 다시 한번 술이 덜 깬다고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여기 봉사자들의 평균연령이 높긴 높은 듯하다.


어제 먹은 술이
아직도 깨지를 않네요.


어찌 되었든 이른 아침에 야외 천막 식당 구석구석에 퍼지는 고소한 들깨 냄새가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하지만 마냥 긴장을 내려놓지는 못한다. 들깨는 된장과 비슷하게 조리 중에 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리 중에 바닥에 가라앉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계속 저어준다.


얼마 전 들깨 수제비를 끓이던 날 오후, 국통을 씻을 때 발견한 바닥에 눌어붙은 들깨 때문에 놀란 기억이 있다. 다행히 탄내가 배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머릿속에 '들깨는 된장과 더불어 주의 식재료'라고 새겨 넣었던 것이다.




미역에는 철분, 칼슘과 아이오딘 함유량이 많아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작용을 해서 국내에서는 오래전부터 미역국을 산후조리용 음식으로 이용했다. 고려 시대 이전부터 고래가 출산 후 그 지역에 있는 미역들을 먹는다는 사실이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미역은 수심이 얕으며 일조량이 많아 따뜻하고 물살이 빠른 지역이 주산지이다. 자주 건조해지는 환경과 뜨거운 태양열을 극복하기 위해 진화하면서 줄기에는 미끌미끌한 '알긴산'을 함유하게 되었다. 알긴산은 몸속에 쌓인 중금속등을 체외로 배출시켜 주는 탁월한 기능을 갖고 있는 성분이다.


하지만 비슷한 미끄러움을 갖고 있는 파와의 음식 궁합은 상극이다. 파에 들어있는 성분(유황, 인)이 미역에 들어있는 성분(칼슘)을 제대로 흡수되지 않게 작용한다는 이유이다. 하지만 미끈거리는 성분은 오래 끓일 경우에만 해당됨으로 미역 냉국에서는 파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건미역(1kgx2개)을 바트(용기) 바닥에 깔고 물을 부으면 서서히 부풀어 오른다. 물을 쭉쭉 빨아들이면서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2개의 바트가 꽉 찬다. 그냥 미역국으로 직행하기에는 미역조각 크기가 너무 커서 가위나 칼로 잘게 자른다. 한참을 가위질을 하다 보면 손목이 시큰거리기 때문에 한가한 시간에 조리실 봉사자들이 돌아가면 삭둑삭둑 가위질을 한다.


손질된 불린 미역은 냉장고에 며칠 보관 후에 미역국을 끓이는 아침에 바로 국통에 바로 풍덩하고 육수가루와 함께 팔팔 끓여 낸다. 국을 끓일 때마다 들어가는 간 마늘과 대파를 오늘은 패스한다.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고민되는 간 마늘 투여 여부는 이렇게 정리했다. 소고기 미역국은 넣고 나머지 미역국(조랭이떡 미역국, 홍합 미역국, 들깨 미역국)은 안 넣는 걸로. 그리고 대파는 모든 미역국에 안 넣는 걸로. 땅땅땅!


대파는 모든 미역국에
안 넣는 걸로


탈피한 들깻가루(1kgx3개)은 미역이 팔팔 끓은 후에 불을 줄이고 집어넣는다. 혹시라도 바닥에 눌어붙지 않게 조리 중에 계속 국자로 바닥을 긁어 준다. 고소한 들깨향이 야외천막 식당에 은은하게 퍼지면서 봉사자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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