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무게를 모르는 사람에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

by 구름

내가 가장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약속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다른 것들에서는 ‘그럴 수 있지’라고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유독 약속에서만큼은 예민한 사람이 된다. 계획형 인간인 나는 약속을 최소 일주일 전에 잡기 때문에 내가 약속을 잡을 때에는 이미 전후의 스케줄들을 다 확인하고 난 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약속을 취소할 일은 정말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거나 아프지 않은 이상 없다는 것이다. 내게 ‘약속을 잡는다’는 것은 바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조그마한 틈을 내어 그 틈을 그 사람에게 내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나의 시간을 내어 너를 만나도 전혀 아깝지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와의 인연에서 스쳐간 몇몇의 사람들은 사람과의 약속을 정말 가볍게 여겼다. 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전날 약속 파기라든지 혹은 당일 약속 취소라든지, 사람과의 약속을 불과 종이 한 장과도 같이 가볍게 보는 사람들은 내가 그(녀)를 만나기 위해 낸 시간과 노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 나를 오늘 약속을 파기하더라도 언제든지 또 약속을 잡을 수 있는, 그런 한가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와의 약속을 이렇게나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융통성 제로의 인간은 아니다. 약속을 미룰 수밖에 없는 타당한 근거와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라면 나도 충분히 이해를 한다. 하지만 대게 그런 사람들은 가벼운 이유들로 약속을 취소해 버리고, 본인에게 득이 되는 만남이거나 관계에서만큼은 칼같이 약속을 지키며 적극적인 사람이 된다. 그럼 난 그것의 화가 나며, 그런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왠지 모를 초라한 기분을 느낀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몇몇의 얼굴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하나같이 약속의 중요도를 재고 따지며 본인의 기준에서 중요도가 낮은 약속들은 가볍게 여겼다. 습관처럼 그들은 그것들에 익숙해지며 약속을 어기는 것을 당연시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점점 그것들을 참을 수가 없어졌다. 내가 그들을 만나기 위해 했던 노력과 기대감은 나 혼자만의 것처럼 느껴져 씁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나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대하는데, 나 혼자 무거운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었다는 자괴감도 들었다. 그래서 그들을 놓아주었다. 그들은 내가 왜 그들에게서 점점 멀어졌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티를 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게 한 번만 그러지 않는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해서 나에게 약속으로 인한 상처를 주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들을 놓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흘러가는 시간의 소중함과 상대의 소중함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부가적인 설명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그 인연을 놓는 게 맞았다. 그래서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아마 그들은 앞으로도 결코 하나의 약속을 잡기까지 상대가 들인 시간과 노력과 애정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참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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