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숨 쉬는 공기
레비나스 읽기(5), 타자의 미지성, 9월 22일 단상
그녀의 밤
느슨한 파도는 빛을 침식한다. 가로등이 듬성듬성 나있는 해변은 보름달에 자리를 내어준다. 예고도 없이 놀이는 시작된다. 침식할 수 없는 것을 덮치고 내어준다. 파도와 빛이 서로를 향하는 손길이 맞닿는 순간 그들은 소멸한다. 완성의 순간 스러지며, 다시 일어난다. 디오니소스의 농밀한 축제는 지치지 않는다. 다만 아침놀에 파멸할 뿐이다.
그녀는 액셀을 밟는다. 아직 밤은 깊지 않았다. 목적지까지 10분 남았다는 메시지를 확인한다. 곧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불 꺼진 가로등은 그녀를 반겨주지 않는다. 보름달은 파도와 밀회를 나눌 수 있을 뿐이다. 그녀가 상실한 밤은 푸른빛에 재생되지 않는다. 세계가 사라진 그녀의 빛은 끝났다. '불꽃놀이가 여러 번 계속된다는 말을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그녀는 되뇌지만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불안하다. 불 꺼진 등대를 돌면 나타날 풍경이 감당되지 않는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라디오를 틀었다.
'우리는 타아를, 이 세계 즉 나 자신이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이 세계를 경험하고 그때 나도 경험하는, 즉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 안에서 타아를 경험하는 자로서의 나도 또한 경험하는 그런 자로서 경험한다.' - 후설
그의 푸른빛
그는 유튜브 화면을 열었다. 화면을 계속 내렸지만 특별히 클릭하고 싶은 영상이 없다. 몇 번을 건성으로 새로고침 한다. 두 번 정도 스크롤을 올렸을 때, 멈춰서 다시 화면을 내렸다. 익숙한 은발과 깊게 파인 이마의 주름이 보인다. 그는 망설임 없이 화면을 열었다. 비브라토 연주하듯 자크 루시에의 손가락은 건반을 튕긴다. Air on G는 남자의 장소로 축복처럼 이어진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바흐는 새롭게 살아난다. 오랜 연주로 굽어버린 어깨와 피아노와 함께 늙어간 노년의 피부는 그의 음악에 빈틈과 이해할 수 없는 심연을 만든다.
피아노 위로 빛이 비췬다. 쪼그라든 손등과 푸른빛을 잃은 탄력 없는 혈관과 달리, 손가락 마디 끝은 결코 늙지 않았다. 그의 플로우 아래 흰색과 검은 것이 파도를 치며 빛을 깎는다. 콘트라베이스와 드럼도 그들의 향연에 하나가 된다. 그들은 이 순간 모두 하나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다.
남자는 온전히 음악과 하나가 된다. 그는 연주하지 않고 연주하며, 보지 않고 듣는다. 콘서트의 공기와 지금 자신이 숨 쉬고 있는 공기는 다르지 않다. 완전히 동일하다고 느낀다.
'타아는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도 포함해서, 자아가 거기에서 공동적 및 상호교섭적으로 존재하는 자아의 공동체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모나드의 공동체가 구성된다. 더욱이 그 모나드의 공동체는 그것의 공동화된 구성적 지향성에 의해 하나의 공통의 세계를 구성한다.' - 후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여자는 해변에 다가가고 있다. 오랜 기간 불면증에 시달린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쳤다. 장시간 운전의 피로는 뒤늦게 찾아와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챈다. 늦은 밤, 빛을 잃은 가로등의 그림자 말고 누구도 반겨주지 않는다. 다만 이 순간, 공기처럼 흐르는 음악이 있다. 뻣뻣하게 경직된 등 뒤로 부드럽게 그녀를 감싸 안는다. 어떤 위로보다 따뜻한 손길에 그녀의 두 눈은 열린다. 영문도 모른 채 뜨거운 것이 쉴 새 없이 흐른다. '이대로 달리다 사라져 버려도 괜찮아' 그녀는 도착하지 않은 채 도달한 느낌이 든다. 여자는 다시 액셀을 밟는다.
사랑의 계절, 남자는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다. 그녀는 산란하는 빛을 보고 있다. 그들은 같은 공기를 마신다. 그들은 하나의 꿈을 꾼다. 잠결에 속삭이는 파도 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린다. 여자는 푸른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