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가요 이야기 #9
시간, 그리고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후배한테 대략 10여 년 만에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21세기가 훌쩍 지나 20년째가 되는 내년 2월 1일, 올림픽 체조 경기장에서 ‘민중가요 소환 콘서트’를 하려고 하는데, Pre Event로 민중가요 이야기를 좀 써 달라는 것이었다.
날 뭘 믿고?
생각해 보니 이 후배는 대략 20여 년 전에도 몇 년 만에 나타나 다큐멘터리 PD를 하고 있으니 자신의 입봉작에 들어갈 타이틀 음악과 BGM을 작곡해 달라고 부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난 생각했다.
날 뭘 보고?
제대로 된 작곡가나 작가를 쓰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나한테 부탁을 했을 수도 있다. 싸구려라고 자학까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난 비교적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도 늘 여기저기에 불려 다닌다. ‘착한 아이뼝’이라는 불치병에 걸려 거절도 잘 못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게 오늘의 나를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과거 음악으로 벌어먹고 살려고 준비하고 있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은 글 쓰는 재미에 푸욱 빠져 있는 나에게 그 뜬금없는 후배는 고맙게도 늘 과분한 제안을 해 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내가 어설프다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어느 시대나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 인한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늘 있었다. 전통적인 진보의 관점은 “더 이상 못 참겠다”이고, 그에 대응하는 전통 보수의 관점은 늘 “아직은 때가 아니다”이다. 대중들이 전자에 폭발적으로 동의했을 때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이 바로 ‘혁명’이다.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역사는 서서히 변화의 불씨를 축적한다. 마치 물이 끓는 것처럼... 하지만 100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은 늘 조급하다. 그래서 나처럼 특별한 목적을 가지지 않는 한 특정한 입장 속에서 살아가며 의도와 무관하게 역사의 진보에 크고 작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삼원색 중 하나인 빨강은 흰색과 만나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핑크가 되었다. 하지만 원색주의자(이런 말이 있나? 그냥 원리주의자의 패러디 정도로 이해 요망... ㅋㅋ) 입장에서 보면 빨강도 하양도 아닌 애매모호한 핑크가 자신들보다 더 사랑받는다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토록 사랑스러운 핑크는 어쩌면 빨강과 하양에게는 저주스러운 색깔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핑크는 너무 아름다운 비유고... 그렇다면 흑백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이 사회에서 회색은 어떨까? 회색은 흑에게나 백에게나 늘 비판의 대상이었다. 흑과 백이 사물의 본질이고 사건의 팩트라면 회색은 현상이고 인식이다. 대중들은 흑과 백을 섞어서 회색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앞에서 백이 옳으니 흑이 옳으니 떠들고 있다. 세상의 본질이 흑과 백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총체적으로 회색이다. 회색을 두고 흑에 더 가까우니, 백에 더 가까우니 떠들어 봤자 인류의 미래보다 자신이 먹고사는 문제가 더 절박해진 신자유주의 포스트모던 사회의 대중들은 이 세상을 대충 회색으로 인식하고 있다. 회색에 대한 진정한 고민과 성찰 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주장은 운동이 아니라 찻잔 속에서 찻잔조차도 흔들 수 없는 파편적 회오리에 지나지 않는다.
삼천포의 매력이 이렇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이제 본격적으로 30년이 지난 지금 민중가요를 ‘소환’한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소환은 말 그대로 강제로 불러내는 것이다. 먼저 나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소환’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주관적 상식에 빠지지 말고 애매하다 싶으면 사전을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역시, 썩 좋은 의미는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민중가요를 소환한다는 게 민중가요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했다는 의미일까? 그 궁금증을 콘서트의 제목이 부연한다. “the 청춘”...
이런... 삼천포에 너무 오래 머무른 것 같다. 글이 너무 길어졌다. 다음에는 하필, 지금 이 시대에 “the 청춘”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민중가요를 소환하는 의미를 대략 세 가지로 추려 살펴보겠다. 스포를 하자면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중가요의 소환인가, 청춘의 소환인가?
둘째, 문화현상으로 바라본 민중가요
셋째, “the 청춘”에 바란다
필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저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맴돌고 있을 뿐이다(@back2ana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