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칸양 Nov 29. 2017

가을 제주,
흩날리는 억새의 춤에 취하다 #3

17년 만의 제주 여행, 그 추억을 남기며


☞  가을 제주, 흩날리는 억새의 춤에 취하다 #1

☞  가을 제주, 흩날리는 억새의 춤에 취하다 #2




5.


늦은 점심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아끈다랑쉬 오름으로 향한다. 바다를 벗어나 이제는 내륙으로 들어온다. 그에 따라 풍광 또한 달라진다. 푸르른 채소를 가득 심어놓은 밭이 보이고, 군데군데 감귤이 탐스럽게 달려있는 감귤나무들이 눈을 호강스럽게 만들어 준다. 그래, 여기가 제주도였지, 그냥 바닷가가 아니라. 거의 차가 없다. 조용하다. 마치 시간이 멈춰져 있는 곳을 달리는 듯, 한적함과 적막함 그리고 여유가 온 사방으로 그득하게 뿌려져 있는 듯 싶다.


식당에서 20여 분 정도를 달렸는가. 길이 좁아진다. 차 한 대가 다닐 정도의 길. 조금 더 가면 아끈다랑쉬 오름에 도착하겠지. 하지만 생각보다 조금 더 들어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탁 트인 터가 나온다. 아, 여기가 주차장이구나.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이 몇 명 있긴 하지만 여기 또한 조용해서 좋다. 해가 늬엿늬엿 지려고 하는 중이다. 오름까지 오르려면 조금 서둘러야겠다.



아끈다랑쉬의 ‘아끈’은 ‘작은’이란 뜻이고, ‘다랑쉬’는 ‘다람쥐’라고 한다. 즉 ‘작은 다람쥐’ 오름이 바로 아끈다랑쉬 오름이라 할 수 있다. 오름 입구에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어? 그런데 높이가 제법 높다. 해발 382.4m? 이상하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올라가는데 경사가 조금 있긴 하지만, 5~10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고 했는데... 380m가 넘는다면 이건 등산 아닌가? 분명 시간도 최소 1시간 이상은 걸릴 것이고. 웬지 느낌이 싸하다. 


이상하다 싶어 뒤를 돌아보니 반대편에 작은 길이 하나 있다. 어디론가 이어진 길 같은데 그 길 끝에 작은 언덕 같은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이쪽 길이 맞지 않나 싶다. 그런 생각으로 다시 안내 표지판을 보니, 오~ 확신이 선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입구는 '아끈다랑쉬'가 아닌, 그냥 '다랑쉬' 오름으로 오르는 입구였던 거다. 그렇구나. 큰 다랑쉬와 작은 다랑쉬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던 거구나. 별 생각없이 다랑쉬 오름을 올랐다면 아마 중간에 해가 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으리라. 큭. 실소가 터져 나온다. 그래도 천만다행이네.


아내의 손을 잡고 아끈다랑쉬 오름으로 향한다. 오름을 오르기 전에도 제법 너른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 여기도 좋네. 하지만 여전히 바람이 강하다. 바람만 조금 약하면 참 좋을텐데. 강한 바람 때문에 억새들의 흔들림 또한 심하다. 흔들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좌로 취침, 우로 취침하는 듯 싶다. 억새밭을 지나니 본격적인 경사가 나온다. 길 옆으로 조그맣게 안내판이 서 있다. 여기가 바로 아끈다랑쉬 오름 임을 알려주는. 이런. 좀 눈에 잘 띄게 만들어 놓았으면 좋았을텐데... 문득 아끈다랑쉬에 대해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이 곳은 공유지가 아닌 사유지라는. 그래, 그렇다면 이럴 수 있지. 아니 오히려 반대일 수도 있겠다. 사유지에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오면 싫을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이렇게 개방해 놓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그럼.



5분에서 7분 정도 가파른 경사를 오른 듯 싶다. 갑자기 눈 앞으로 평원이 펼쳐진다. 우~와~!!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이 휘몰아친다. 태어나서 이토록 많은 억새를 볼 수 있다니. 그야말로 오름 전체가 억새밭 천지다. 억새를 사람으로 친다면 눈 앞에 백만대군이 도열해 있는 듯 눈부시다. 수많은 억새들이 강한 바람에 이리저리 춤을 춘다. 아, 신나는 음악만 있다면 이 곳은 엄청난 대규모의 억새 나이트(!)이리라.






사진을 찍는데 강한 바람때문에 제대로 표정을 지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지. 예쁘고 멋진 표정을 포기한 채 그냥 찍는다. 이 곳에 있는 것 만으로 즐거우니 사실 사진이 없어도 좋다. 이 느낌, 기분, 즐거움, 만족스러움, 감동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테니. 아끈다랑쉬 오름의 포인트는 오름에 딱 하니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다. 수 많은 억새들의 춤과 합창을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그렇게 굳건이 멋지게 서 있다. 그 나무를 시작으로 오름을 한바퀴 돌 수도 있다. 천천히, 여유롭게.(다만 계속해 이야기하지만 이 날은 바람이 너무 세서 그렇게 여유로움을 즐기긴 힘들었다)


해가 완전히지지 않은 상태여서 아직 뿌연 빛이 남아 있다. 회색빛 하늘이랄까. 저 하늘 가운데 하이얀 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억새와 달. 우린 그 사이를 걷고 있다. 좋다. 좋아도 너무 좋다. 아마 이 아끈다랑쉬 오름에 오른 것만으로도 이번 제주여행의 감동 게이지를 다 채우지 않았을까?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기에 그 감동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아끈다랑쉬의 매력이다. 걷던 중간에 가운데 길을 선택했다가 길이 없어지는 바람에 억새밭을 헤매기도 했다. 다행히 아내 또한 바지를 입고 있어 다리를 긁히거나 하진 않았지만, 만약 가을에 이 아끈다랑쉬 오름을 오르려는 분이 있다면, 필히 긴 바지는 필수 임을 알려 드리고 싶다.



가을 제주의 매력을 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아끈다랑쉬 오름의 억새밭 전경. 그야말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 강추다.





차칸양

Mail : bang1999@daum.net

Cafe : 에코라이후(http://cafe.naver.com/ecolifuu) - 경제/인문 공부, 독서 모임



매거진의 이전글 유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빛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