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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Jul 05. 2024

오이

24년 7월 5일 금요일

해마다 오이를 심는다. 오이 모종 다섯 개만 심어도 다 먹어지 못해서 오이장아찌를 담기도 했다.

그런데 올 해는 오이가 잘 크질 못했다. 남의 밭 오이가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면 부러웠고, 향긋한 오이향냄새에 침이 꿀떡꿀떡 넘어갔다. 아기 손가락만큼 자란 내 밭 오이는 언제 저만치 자랄지, 애가 달 지경이다.


문제는 하나인 것 같았다. 물이다. 오이는 수분이 95%라지 않는가!  가뭄이 길어지면서 텃밭 작물들이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온라인에는 가뭄 극복을 위한 지혜가 많았다. 그중 눈에 들어온 방법이 페트병을 이용한 관수였다. 페트병에 물을 담아 오이 뿌리 옆에 꽂는 방법이다. 간단했고, 무엇보다 쓰고 버릴 폐용기를 재활용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당장 집에 있는 페트병에 물을 담아 오이 다섯 나무에 꽂았다. 천천히 물이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매일 저녁 밭에 나가 페트병에 물을 채워주었다. 페트병 물을 마신 오이잎들이 평평하게 살아났다. 며칠 되지 않아 오이 4개를 수확했다. 감격에 겨워하며 오이를 따 보기는 처음이다.


흔한 오이를 귀하게 먹는 장소는 산이다. 산에 갈 때 오이 몇 개는 꼭 챙긴다. 산에서 먹는 오이가 제일 맛있다. 배고프고 목마를 때니 뭔들 맛이 없겠냐마는 등산할 때는 오이가 물보다 여러모로 더 낫다. 오이와 초코 발라진 다이제스티스 2개면 목마름과 배고픔이 일시에 사라진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목말라서 급하게 물을 마시고 산에 오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물 마신 배가 출렁출렁 흔들리는 경험 말이다. 얼마나 출렁대는지 '이 배 어디로 갑니까?" 물어봐야 할 정도다.


향긋한 오이 냄새를 맡으니 그때 그 산이 보고 싶다. 다이제스티브랑 핫브레이크 배낭에 넣고 오르던  지리산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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