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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꿈 Sep 21. 2022

내가 다 마셔야지

현꿈의 글 '열하루'


     우리들의 글자국, 일곱 번째





        나의 공간에 나의 글을 남깁니다.





내가 다 마셔야지


                        현꿈


엄마는 커피

아빠는 맥주

할머니는 식혜

할아버지는 꿀물


다들 마셔요

뜨거운 거 후우후우

차가운 거 아잇 차가워!


나는 물 마셔요

벌컥벌컥

아 시원해


음료수 마셔요

톡 쏘는 탄산

아 짜릿해


공기 마셔요

흐으음 후우우


볼록 빵빵

들이마셨다

다시 홀쭉

내쉬어요


내 몸이 풍선이에요

앗! 내가 마신 거 다 빠져나간다

다시 들이마셔요

내가 다 마셔야지 




마신다? 마신다!

 우리에게 음식(飮食)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누군가 만나면 ‘식사하셨어요?’로 안부를 묻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 제목처럼 먹기 위해 살기도 한다. 먹는 게 삶의 이유가 될 만큼 우리에겐 큰 행복이다. 이 음식(飮食)을 그대로 살펴보면 ‘마실 음’과 ‘밥 식’이 보인다. 즉,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렇다. 우리는 먹고 마신다. 매일 많은 것을 마신다. 물, 차, 국, 주스부터 공기까지 이렇게나 마실 것이 많다. 그런데 줄곧 먹을 것에 대해서만 생각했었다. 마시는 것보단 먹는 것을 먼저 찾았었다. 그럼 이제 마시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이번 주제는 ‘마실 것’이었다. ‘마신다’ 하면 떠오르는 카페, 갈증, 자판기, 정수기, 약수, 한약, 건강 차, 탄산수, 숨 등 모든 것이 이번 시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 마시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표현해도 좋다며 가능한 모든 생각을 떠올려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했다.




마실 것투성이

 아이들에게 보여준 나의 시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해 마신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는 무엇을 마실까? 옛 기억을 더듬어 무엇을 자주 마셨는지, 무엇을 마실 때 좋아하셨는지 떠올렸다. 엄마는 커피, 아빠는 맥주, 할머니는 식혜, 할아버지는 꿀물을 마셨다. 인삼차, 대추차, 한약, 막걸리 등 많은 마실 것이 떠올랐지만 이것으로 정했다. 이렇게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마시는데 그럼 나는 무얼 마실까? 아이들의 마음이 되어 물, 음료수, 공기를 마시는 걸 표현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가장 좋아하는 체육 시간이 끝나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물부터 찾는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곤 세상 시원한 표정으로 행복해한다. 그래. 땀 흘리고 마시는 물이니 얼마나 달까? 꿀맛은 이런 거다 싶을 거다. 음료수를 마실 때는 톡 쏘는 탄산으로 목구멍이 놀라면서도 그 짜릿함을 즐기곤 한다. 이렇게 액체로 된 것만 마실까? 우리가 하루도 안 빠지고 매 순간 가장 많이 마시는 공기를 꼭 시에 넣고 싶었다. “흐으음” 들이마시면 볼록 빵빵해졌다가 “후우우” 내쉬면 다시 홀쭉해지는 아이 배가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풍선처럼 빵빵해지지만, 다시 공기가 빠져나가면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들어 다시 힘껏 들이마시며 “내가 다 마셔야지” 소리치는 아이가 상상되어 썼다.



너는 무얼 마셔?

 쓰디쓴 커피, 달고 시원한 식혜, 구수한 보리차, 시원한 물, 따뜻한 물, 미지근한 물, 오렌지 주스, 딸기주스, 토마토 주스, 버블티, 사이다, 콜라, 환타 등 온갖 마실 것이 아이들의 시에 등장했다. 단 식혜를 마시면 입 안에서 밥알이 수영하고 있다는 표현이 재밌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마신다며 “이건 뭘까요?” 묻고 정답을 알려주는 잠깐 퀴즈 같은 시도 있었다. 커피는 쓰다며 어른이 되면 마시겠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찜통 같은 날씨라서 목이 마르다며 물과 음료수를 원샷하면 갈증이 사라져 시원해 다음에도 또 원샷하겠다며 읽는 사람도 절로 시원한 원샷을 그리게 하는 시를 썼다. 사이다를 흔들고 열어보니 다 쏟아졌다며 다음에는 흔들지 않고 뚜껑을 열었다는 시를 썼다. 다른 아이는 흔들고 따면 탄산이 화산 터지듯이 펑 터진다 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가 엿보였다. “나눠 먹어야지”라는 제목의 시에서는 엄마가 주신 주스 한 병을 옆집 아주머니, 마트 가게 사장님과 나눠 마셨다. 남은 주스를 벌컥벌컥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빨리도 먹으면서도 이웃과 나누는 것을 배우고 행동한 아이가 기특했다. 음료수를 컵에 따르고 마시려고 할 때 누군가 “나 한 입만”을 외쳐 어쩔 수 없이 음료수를 줬다는 아이의 시에는 배려하는 착한 마음씨가 보였다. 시는 시를 쓴 사람을 닮았나 보다. 심성이 고운 이 아이는 시에도 이런 마음이 스며들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음은 아침 식탁 옆에 앉아있는데, 몸은 아직 침대 위에 발라당 쿨쿨”

“겨우 정신 차리고 터덜터덜 냉장고 앞으로 가서 냉수를 들이켠다. 벌컥벌컥, 으아아 정신 차리고 학교 간다.”

아침 기상의 고단함과 아침을 시작하는 냉수의 시원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공기가 나쁜 곳과 좋은 곳이 있다? 우리가 살려면 공기는 꼭 필요한 것이다. 이런 좋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나무를 심는 등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까지 일깨워주는 시였다.



주스 위에


풍덩

수영장이다

저는 수영장 왔어요

주스죠

시원한 주스 위에 얼음 위에

나 너무 시원했어요

얼음이 둥둥 튜브에 있어요

온도를...

나중에는 다른 수영장을

가야겠어요

벌써 시간은 사라져 가요

“가자”



오늘도 내일도 기대되는 우리들의

 항상 열심히 시를 써 감각적인 시를 완성해내는 아이라 이번에도 어떤 시를 썼을까 기대하며 읽었다. 읽자마자 ‘설마 주스를 마시는 걸 수영장에 온 것으로 표현한 걸까?’ 하는 놀라운 마음에 “수영장이랑 주스를 어떻게 표현한 거야?”라고 하니 주스가 수영장이라고 했다. 이 작은 시인에게 시원한 주스는 수영장이었다. 주스 위에 얼음이 떠 있는 모습이 수영장에 떠 있는 튜브였다. 시 옆 그림처럼 주스 위 튜브에 떠 있는 아이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 너무 시원했어요”, “나중에는 다른 수영장을 가야겠어요. 벌써 시간은 사라져 가요”라는 표현과 마지막에 “가자”라는 마무리까지 이제는 자신의 시에 비유를 쓸 수 있고 따옴표를 사용해 말하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가 생겼다. 항상 자기만의 시를 멋지게 쓰는 아이에게 대단하다며 연신 칭찬해주며 아이의 시를 읽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물은 갈증 날 때 마신다”, “물은 힘들 때 마시면 맛있다”, “그냥 먹으면 맛이 안 나도 운동을 하고 먹으면 달다”, “컵도 마실 기세로 마신다”, “수영장에서도 수영할 때 실수로 마신다”

어떨  마시는지, 어떻게 마시는지 다양한 ‘마심들이 있었다. 마시는 것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있었다.  먹어본 사람이 먹으면 계속 먹을 거라며 탄산이 너무 맛있다는 아이, 앞으로도 열심히 야무지게 마시겠다는 아이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마실  대해 즐겁게 썼다. 마실 것에 대한 선호가 확실하게 있는 우리 반이었다.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모두 좋아하길.



아직은 글쓰기가 낯설고 어렵지만,


이런 글 자국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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