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없는 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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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
그 경계가 가장 불분명한 곳이 병원이고
가장 투명하게 분명한 곳이 또 병원인 것 같다
수술을 끝나고서도,
시간이 한참 지난 몇 년 후에도
내게 ‘병원’이라는 존재가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그게 어떤 병원이든 간에
들어가는 데에 용기가 필요하다
날 맞이하는 형식적인 인사,
무미건조한 눈빛, 툭툭 치는듯한 말투 등
편견이라고 한다면 그런 것이
내 마음속에 우두커니 자리 잡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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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반이면 병동에 어린 불빛이 켜지고
거동이 불가한 상태인 나를
침대째로 분리해서 데려가는 직원이 오신다
몸에 베인듯한 진하게 훅 들어오는 담배 냄새와
이를 가리기 위함인지 알 수 없는 향수 냄새가 섞여
숨을 간신히 쉬고 있는 폐에 가득 들어찰 때면
은근스레 직원분에 대한 미운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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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얻고 나서 알게 된 점은
거리엔 생각보다 높은 턱이 많고,
계단이 많고,
신호등 숫자는 너무 빠르게 줄어들고,
거리의 소음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더 아프게 하기 위해
이렇게 세상을 만든 건 아닐 텐데
대상도 없는 미움이 어딜 가나 존재했다
숨을 헐떡이며 허리와 다리를 붙잡고
간신히 빨간불을 넘겨 건너기 일쑤였고
이에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웬 젊은 여자가 느작거리며 거리를 다닌다며
경적을 울려 화를 내는 것이다
버스라도 타는 날엔
버스의 엔진소리가 마치 천둥번개 치는 것처럼
귀를 찢는 것 같은 통증을 유발했고
귀마개를 항시 끼고 있지 않으면
누군가가 조금 크게 말만 해도
귀가 아파 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척추장애와 귀가 무슨 관련이 있겠냐만은
나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정말 많은 합병증에 시달려야 했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겐
아무렇지 않은 데시벨의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귀를 다급하게 가려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어떠한 사명과 가까운
버릇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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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선 환자복을 입고 있는 한
모두가 나를 정말 ‘환자’처럼 대하고,
실제로 나도 환자가 맞다
병원에서의 환자는
말귀를 알아듣는 아기취급을 받게 되고,
실제로 나는 그러한 상태였다
사회를 살아갈 때는
혼자 아무렇지 않게 했던 것들을
이곳에선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었다
밥을 먹으려면
침대를 아주 천천히 조금씩 올려서
앉기 위해 식은땀을 흘려가며 도움을 받아야 했고
그마저도 5분이 지나면 버틸 수가 없어
다시 간신히 누워야 했다
물을 마시려면
누운 채로 간호사님이 떠준 물통의 빨대로
물을 빨아먹어야 했다
걸어보고 싶으면
기구를 가져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 커튼만 바라보며 기다려야 했다
양치를 하고 싶으면
간호사님이 물을 떠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을 머금고 헹군 물을 다른 통에 뱉었다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누운 채로 볼일을 보고
벨을 눌러 누군가 기저귀를 갈아주기를
계속해서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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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말 아기와 가까운 생활을 해서
마음도 아기 때처럼 자그마해진 듯싶었다
벨을 누르고서 한참을 기다려도
내 옆에 있는 환자를 먼저 봐주거나
내게 대하는 태도가 조금이라도 다르다고 느껴지면
그게 그렇게 서글프고 서운할 수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나는 온전히 혼자서
병동생활을 해야만 했기에
부모님의 걱정과 슬픔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텐데
그럼에도 아기처럼 떼를 써댔다
저 간호사가 나를 미워한다-고
내가 먼저 벨을 눌렀는데
나를 삼십 분 동안 방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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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고
학습해 온 지성이 있기에
이렇게 되기까지 부단히 많은 시간소요와
많은 부끄러움이 존재할 줄 알았다
다만 내가 직접 느낀 것은
부끄러움은 잠시고
기본적인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요소들을
나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주기 시작하면
너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내려두고
순식간에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인간이 쌓아 올리는 수많은 업적과
사회적인 요소들,
아등바등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든 것들이
아픔 앞에서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말 한순간이다
나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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