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거름으로 만들자
2017.1.20(금) / 회사를 떠난 날
마지막 출근날이었다. 그간 가까이 지내던 회사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작별의 커피와 작별의 밥을 먹었다. 서랍 속 묵혀뒀던 서류를 정리하고, 개인용 사무용품 몇 가지만 단촐하게 챙겨 오후 세시쯤 사무실을 나왔다.
새로운 인생에 첫 발을 내딛는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근질근질했다. 단 1초라도 이 곳에서 시간을 더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이 지긋지긋한 곳을 떠난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만 3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해가 뜨면 컴퓨터를 켜고 해가 다 져서야 터덜터덜 걸어나오던 이 곳에서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은, 묘하게 내 가슴을 간지럽혔다. 상실감과 희열이 뒤엉킨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일었다.
좀 더 잘 했더라면, 그 때 이랬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아니었다. 이 곳에서 썩은 동태처럼 문드러져 간 나의 스물 여섯, 일곱, 여덟, 꽃같던 청춘에 대한 애도였다. 3년새 허리둘레는 10센치가 늘고 몸무게는 5키로가 불었다. 빛바랜 나의 아름다움과 건강에 대한 애도였다. 또한 그곳에 물들지 않고, 월급이라는 마약에 마취되지 않고 기어코 각성하고 그곳을 탈출한 나 자신에 대한 기특함이었다.
조직은 미웠으나 개인은 미워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마치 쓰던 형광펜 하나가 고장나 툭, 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듯이, 그 흔한 잘가라는 의례적인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않은, 애초에 이 관계에 개인적인 연민이라던지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 따위는 없었다는 듯 행동하는 일부 동료와 상사들에 대한 환멸이 일었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그 곳을 빠져나왔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이 곳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2014년의 나 자신에게 뺨대기를 올려붙이고 싶을 만큼 욕지기가 치밀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 시간들을 내 인생의 예방주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예방주사를 맞으면 종종 으슬으슬 초기독감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진짜 독감에 걸린 것보다는 훨씬 가볍게 그 시간을 지날 수 있다.
비록 이 3년동안 내가 발전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실질적으로 무언가 배우지는 못했더라도, 순진한 취준생이었던 나에겐 최고의 인생수업이 되었다. 그저 안정적인 월급만 보장된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처럼 취업준비에 열중하던, 어리석었던 과거의 나에게는 꼭 필요했던 예방주사같은 시간들이었다.
각성(覺醒)하여 진짜 세상의 빛과 그림자에 눈뜨게 한 일종의 빨간약. 월급이 전부가 아님을, 나는 절대로 영혼을 팔아가며 사축(社畜)이 되지는 못할 사람임을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내가 직접 경험하고 후회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내내 그 화려한 껍데기를 동경했을 것이다. 그것을 직접 겪어보며 뼈저리게 후회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에 의의를 두려고 한다.
똥도 모이면 거름이 된다. 나의 3년은 똥이었다. 그것을 그저 하수도에 흘려보낼지, 아니면 거름으로 삼을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나는 그것을 거름으로 삼아 아주 비옥한 다음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
나의 똥같은 날들이여, 안녕.
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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