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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Mar 07. 2017

[Part2]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며

[Part 2 : 미친여자 널뛰기 하듯, 요동치는 직장생활]

2014.02.09(일) / 회사를 떠나기 1076일 전.


오늘로 꽉찬 21일간의 신입사원 합숙교육을 마쳤다.


3주 전 나는 설램과 긴장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트렁크에 짐을 꼭꼭 채워넣고 동이 트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17살이 되던 해 1월에 시작했던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 이후, 수도 없이 짐을 싸서 이 집을 나서곤 했다. 늘 크고 작은 도전, 크고 작은 출발을 목전에 두고 있던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이 어느덧 10년이구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잘 해낼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잘 해내야지. 이제는 실전이다. 나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이제는 어리광 피우고 도망갈 곳이 없다.



취업이라는 커다란 관문을 넘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신입사원 연수는 또다른 평가와 시험의 연속이었다. 나는 마블링에 따라 등급이 붙는 한우가 된 기분이었다. 너는 에이쁠쁠, 너는 비등급.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주말도 없이 24시간 내내 붙어있는 일정은 상당한 감정소모도 필요로 했다.



연수 중에 의견도 많이 내고 여러 활동에서 나서기도 했다. 그래서 예상치 않게 팀 내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네가 못 하는게 있느냐, 오늘 ㅇㅇ가 못하는 걸 다섯개 이상 찾기 내기를 하자 등등, 팀원들이 나를 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팀원들의 이런 말은 칭찬이었다. 시기나 질투가 아니었다. 하지만 혹시나 스스로 그것에 취해서 자만심에 빠질까봐, 또는 주변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일까봐 좀 더 조심스러워진 것은 사실이다.


친목 모임이라면 주목을 덜 받도록 그냥 뒤로 빠져 있으면 된다. 하지만 이 곳은 나의 일거수 일투족이 평가받는 곳이다. 연수가 끝나더라도, 직장이라는 건 성과를 내고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곳. 그래서 자꾸 고민이 된다.


언제 얼만큼 겸손해야 하는 걸까. 적극적인 태도와 겸손함, 둘 모두를 잃지 않기 위해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내가 잘 하는 것 이상으로 더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과, 조용히 어우러지고 싶은 마음이 충돌한다.



교육 과정 중에, 20명의 팀원들이 서로 장점과 단점을 무기명으로 적는 시간이 있었다. 짧은 연수 기간이었지만 동기들은 나를 제법 깊이 파악했다. 리더십과 포용력이 있다, 뒤쳐진 사람들을 잘 챙긴다, 다재다능하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 혼자 다 할 수 있어서 팀원들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할 말 못해서 혼자 손해볼 성격이다, 모범생같은 틀에 갇혀있다 등등. 어느 것도 내 모습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것이었다. 아직도 누가 썼는지는 모른다. "모든 분야에서 잘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뒤쳐지는 사람들을 잘 챙겨서 함께 데리고 간다"는 동료의 말. 바로 내가 지향하던 바를 콕 집어서 이야기 해주다니, 나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물론 그 동료가 본 모습이 나의 전부가 아닐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못마땅한 점도 많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신경쓰고 고민하고 노력한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부서에 가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당당하되 겸손하게, 조용히 빛나는, 조직에 꼭 필요한 보물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조용히 역량을 쌓고 준비하며 기회를 기다리되, 그것을 일부러 과시하지 않는 사람.


아, 그리고 단점이라기엔 너무 친절하고 따뜻했던 또다른 누군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너무 모든 것을 잘 하려고 해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직장생활의 첫 발을 내딛는 지금, 나는 모든 것이 두렵고 조심스럽다. '어떻게 하면 실수를 안 할까' 정도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감탄할 만큼 잘 할까'로 늘 머릿속이 복잡하다. 매 순간 긴장하고 있으니, 하루를 보내고 나면 정신이 너덜너덜해진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운다고 생각하고, 조금만 내려놓고 가야지. 완전히 넉다운 되지 않도록.


실수해도 괜찮아. 덜 잘해도 괜찮아.


Work Hard, Stay humble.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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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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