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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Jan 10. 2018

[Part3]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 생각하는 삶

[Part 3 : 행복하지만 불안한, 퇴사 이후의 삶]

2017.1.21(토) / 회사를 떠나고 1일 후.



<그랜드 마스터 클래스 빅퀘스천 2017, 오래된 미래> 라는 긴 이름의 강연에 다녀왔다. 올해에는 리처드 도킨스가 최초로 내한하는 것으로 가장 큰 화제가 되었다.


리처드 도킨스 외에도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소설가 은희경 작가, 서울대 조국 교수, 철학자 강신주 등 각 분야의 전문가 십여명이 '빅 퀘스천'을 던지고 이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풀어내는 릴레이 강연이다.


이틀간 하루 8시간씩 진행되는 빡빡한 일정의 강연, 첫 날이었다. 적지 않은 가격에도 강연자 리스트를 보고는 단숨에 예매를 했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강연장을 찾았다. 사실은 시설이나 운영 면에서 미숙한 점이 많아 다소 불편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다음번에도 꼭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뇌에 영양을 공급하는 기분이었다. 대학 시절로 돌아간 기분도 들었다. 치열하게 배우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절. 부족하나마 나 나름의 답을 찾아가던 그 시절로 말이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회사를 다니던 3년간은 내 자신을 소진시키던 시간이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며 저축해 둔 지식과 역량을 밑천삼아, 신용불량자가 빚을 돌려막기 하듯 그저 쥐어짜 소진하기만 했던 것 같다. 소진되는 만큼 새로운 지식이 채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우리는 100년 가까이 살아가야 하고,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우리가 머릿속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행위는 왜 학교를 졸업하면 면제되는 행위로 여겨지는 걸까?




강연의 주제는 다소 거창했다. 왜 배우는가,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각자도생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가 등등. 한 분야에 통달한 사람은 오히려 그것을 가장 쉬운 방법으로 풀어낼 줄 아는 것 같다. 다소 무거운 주제들이었지만 강연은 어려운 내용을 어렵지 않게, 그러나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게, 찬찬히 진지하게 풀어나갔다.


강연도 좋았지만, 나는 황금같은 주말 이틀과 십오만원이라는 큰 돈을 오로지 빡빡한 강연에 투자하여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신기했다. 


엄마와 오빠와 함께 왔다는,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워 보여 그냥 극성엄마 손에 끌려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열세살 초등학생. 통번역 자원봉사를 하시다가 우수 봉사자로 뽑혀 선물로 강연 초대권을 받아 참석하신 일흔살의 할아버지.


손을 들고 무대에 오른 분들은 하나같이 뜨겁게 이야기를 쏟아내었고, 때로는 청중과 진지하고 첨예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나는 혼자 갔었는데, 덕분에 청중들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쉬는 시간에 우르르 몰려나오며 관객들은 강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서 손을 들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아쉬워." "아까 말한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저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등등.


학점이 걸린 강의도 아니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그 곳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누구보다 순수한 열정으로 배우고 토론하고 고민했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얄궂게도 회사를 떠난 첫 날의 일정이 이 강연이었다. 회사에 있던 3년간 잊고 있던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여전히 세상에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10대부터 70대까지가 모여 같은 주제를 배우고, 옳고 그름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는 그 곳은 연대의 현장이었다. 서로의 고통과 고독을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것에 대해 들여다보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진다.


내가 일하던 곳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비합리적인 일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 곳이었고, 나는 생각의 자유를 박탈당한 기분이 들었다. 


회사의 지침에 대해 때로는 나도 의견을 같이 했고, 때로는 반대 의견을 가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찬성이든 반대이든 상관 없이, 회사의 지침에 대해 옳고 그름, 찬성과 반대를 '생각해보는' 행위 만으로도 이미 '빨갱이' '반동분자' 로 분류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도 점점 생각하는 행위를 잊어가고 있었다.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먹고사니즘'을 방패삼아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 지어는 그것을 '현실적인 것', '어른스러운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함께 모여서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많이 바뀔 수 있을텐데. 설사 그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제각기 다를지라도 말이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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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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