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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Jan 13. 2018

[Part3] 내 청춘의 값어치는 얼마인가?

[Part 3 : 행복하지만 불안한, 퇴사 이후의 삶]

2017.1.26(목) / 회사를 떠나고 7일 후.


회사와의 이별(?)을 기념하기 위해, 출발 이틀 전에 충동적으로 홍콩마카오 항공권을 예매했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가이드북 한 권을 사서 홍콩으로 날아왔다.


나는 방전상태였다. 회사에서의 폭풍같은 시간들이 지나고, 내게는 홍콩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볼 정신적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행을 온 것이 무색하게, 나는 호텔방 안에서 아주 긴 시간동안 잠을 잤다. 그리고 발길 닿는 대로 걸어다니며 거리를 구경했고, 적당한 곳에 무작정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오늘은 마카오로 넘어온 날. 이 곳 마카오는 황금과 향락의 도시다. 어릴 적 동화책에 그려져있던 황금궁전처럼 생긴 호텔들이 셀 수 없이 늘어서 있다.


호텔 안은 제각기 별천지다. 호텔 실내에 베니스의 운하를 재현해놓은 곳이 있을 정도이다. 이곳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성지(聖地)가 아닐까. 그야말로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이다. 자본주의의 '개미'로 살아온 나는, 황홀한 그 세계에 현혹되기보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앞섰다.




'그깟 몇 푼'으로 나를 비인간과 무자비의 벼랑 끝에 몰아세우던 회사를 탈출하자고, 패기 넘치게 나선지 오늘로 7일째였다. 마카오의 호텔방에 혼자 누워있다가,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지난 해의 성과급이 입금되었다는 문자였다. 회사에서 내게 주는 마지막 급여일 것이다.


매달 월급이 입금될 때와 똑같은, 은행의 무미건조한 자동발신 문자였다. 그러나 그 문자를 받은 나는 숫자 뒤에 붙은 '0'을 세느라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월급의 4배가 넘는 큰 금액이었다. 지난 3년간 받아본 성과급 중에서 가장 높은 금액.


입금된 금액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비겁하게도, 이정도 금액이 매년 입금된다면 그냥 꾹 참고 다닐만도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냥 10여년만 꾹 참고 돈을 모아서 잘 굴리면, 차라리 그게 나은 것이 아닐까, 하는 갈등. 물론, 내가 있던 곳은 이 정도의 성과급을 받기란 10년에 한 번도 어려운 일이었고, 내 결정에 대해 후회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온갖 고고한 이유를 다 대며 마치 자본주의의 비정함에 저항하는 투사라도 된 양, 세속적인 가치를 뒤로 하고 나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선 개척자가 된 양 자기위안을 했지만, 사실은 단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내 청춘을 팔아먹은 값어치가 싸다는 것에 불만을 품었던 것은 아닌가.


'누군가 당신에게 하룻밤을 보내는 데에 10만원을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당신은 그 제안을 수락하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한 거부감을 표한다. 세상에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운운하며. 그런데, 그 금액이 10만원이 아니라 100억이 되면 반응은 달라진다.


황금의 도시 마카오에서, 딱 내가 지불한 값어치만큼의 호텔방에 누워, 입사 이래 처음으로 경험한 거액의 성과금을 보며, 나는 문득 그 매춘의 값어치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나도 사실은 딱 그만큼의 얄팍함으로 큰 결정을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내가 핏대를 세워가며 비판한 이 모든 체제의 모순에서 자유로운가.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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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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