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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Jan 16. 2018

[Part3] 맘대로 먹지도 못했던 옛날이 생각났다.

[Part 3 : 행복하지만 불안한, 퇴사 이후의 삶]

2017.2.10(금) / 회사를 떠나고 22일 후.


완벽한 백수의 삶을 누리고 있다.


눈이 떠지는 시간에 느지막히 일어나, 새로 장만한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의 요란한 소리로 잠을 마저 깨운다.

커피를 내려 연유와 우유를 넣고 얼음 몇 개를 동동 띄워 마시면 그 때부터 나의 아침이 시작된다.


책을 좀 보다가 출출해지면 미리 안친 현미밥 반공기에 밑반찬을 대충 꺼내 요기를 한다.


늦은 오후가 되면 보통 외출을 위해 샤워를 하고, 잠깐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다시 책을 보고 무언가를 끄적이다가 새벽 두 시가 넘어 잠에 든다.


세상의 시계에 따라 구획되지 않은, 오로지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리듬감있는 하루.




신입사원 시절의 에피소드가 떠올라 입안이 깔깔해졌다. 누군가의 생일이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간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해 우리 부서는 회사 앞 중국집에서 점심식사 자리를 가졌다.


각자 식사를 하나씩 시켰고, 테이블별로 탕수육이나 깐쇼새우같은 요리도 한 접시씩 주문이 들어갔다. 나는 원래도 식사량이 적은데, 그 중국집은 양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탕수육을 한 점 집어먹고, 내가 시킨 짬뽕을 절반 넘게 먹다가 배불러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식사가 끝나갈 때 즈음, 그 자리를 주관한 상사가 우리 테이블의 탕수육 접시를 보고 한마디를 했다. "야, 왜 이렇게 안 먹어? 이집 탕수육 맛있어~~ 얼른 더 먹으라구~"


눈치없는 신입사원이던 나는 별 생각 없이 "많이 먹었어요~ 양이 너무 많아 배불러요^^;" 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때 내 맞은편에 앉은 선배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지금 먹으려구요. 먹을거에요!" 선배는 재빨리 탕수육을 집어 우리 테이블 사람들에게 배분했다. 다이어트 중이라던 본인의 접시에는 은근슬쩍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았다. 유치하고 치사하지만 이런게 눈에 보이더라. 


나는 그 선배가 내 앞접시에 놓아준 탕수육을 다 먹고 오후 내내 속이 불편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 중국집에 가면 나는 무조건 짬뽕밥을 시켰다. 국물에 밥을 말아서 아래쪽으로 잘 숨겨 놓으면, 내가 얼만큼 남기는지 티가 안나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그날, 상사가 우리에게 식고문(?)을 하려던 것은 아닐 것이다. 순수한 마음에서, 후배들에게 모처럼 맛있는 걸 먹이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상사의 한마디를 듣고, 재빨리 내 접시에 탕수육을 덜며 먹으라고 눈짓을 하던 선배의 태도가 우스웠다.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저렇게까지 하는 사람만 남아 있었다.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고, 먹고싶지 않을 때 먹어야 했던 날들. 휴식시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려고 입 속으로 마구 우겨넣었던 점심식사. 잠이 오지 않아도 내일을 위해 어떻게든 잠을 청해야 했던 밤들. 회사 앞 약국에 가서 "그 술먹기 전에 먹는 약 주세요" 하면 살 수 있는, 이름모를 드링크제와 알약을 비장하게 먹고서 들이부었던 원치 않던 알콜.


그 모든 것들을 뒤로 한 지금 나는 행복하다.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그냥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는 오늘의 삶이 감사하다.


질적인 삶, 나를 위한 삶, 느리고 행복한 삶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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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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