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 미친여자 널뛰기 하듯, 요동치는 직장생활]
2015.12.1(화) / 회사를 떠나기 416일 전.
얼마 전 나보다 입사일이 꼭 1년이 늦은 후배가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나이로는 나보다 한 살이 많은 후배였다. 나는 내가 하던 업무를 그 후배에게 인수인계 해주었다. 그렇지만 회사생활이나 태도 측면에서 가능하면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 그 후배에게 '선배' 운운하며 젠 체를 하기에는 조금 멋쩍었기 때문이었다.
부서 사람들은 그 후배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불렀다. '자유로운 영혼'은 순화된 표현이었고, 속 뜻은 '조직 부적응자' 였다. 그는 늘 와이프와 저녁을 먹어야 한다며 바람처럼 퇴근을 했고, 야근이 꼭 필요한 날에는 저녁을 굶고 일을 몰아서 한 후에 역시나 바람처럼 집으로 향했다. 상사가 갑자기 소집하는 술자리에는 늘 "필참입니까? 필참이 아니면 저는 집에 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친구였다.
'심심한데 술이나 한잔 할래?'라는 상사의 말 한 마디에, 선약은 물론이고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운동이나 학원도 취소하고 달려가는 우리의 문화에서 그는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부서원들은 뒤에서 쑥덕댔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내게 '후배관리 좀 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 후배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제발 눈치보는 척이라도 좀 하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선배질 하지 않겠다는 처음의 결심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그 후배를 위한 잔소리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후배 관리 좀 하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였다.
후배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나는 소름이 끼쳤다. 어느 새 나도 이 '꼰대문화'에 물들어 가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저 후배의 와이프라면, 어떻게든 기를 쓰고 집에 일찍 돌아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남편은 좋은 남편이지 않나. 사실은 저 후배가 정상이고 우리 모두가 비정상인 것은 아닐까?
그 후배는 얼마 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사회생활'이란 것에 미숙했던 그에게는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에는 왠지 미안함과 씁쓸함이 남았다. 나는 그의 등 뒤에 남은 "꼰대" "기성세대" 중 한 명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나는, 이 소름 끼치는 곳에 어느새 물들어 버린 걸까? 어쩐지 나는 이 곳의 비인간적인 잣대로 그 후배를 판단하고 있었다. 정작 내 남편이 될 사람은, 회사에 목숨을 걸어서 나와 우리 둘의 가족을 등지는 것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섭다. 점점 더 물들까봐.
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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