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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Dec 14. 2017

[Part 2] 어른이 되어 버렸구나.

[Part 2 : 미친여자 널뛰기 하듯, 요동치는 직장생활]

2015.10.03(토) / 회사를 떠나기 475일 전.


아름다운 날씨의 개천절 오후. 10년지기 친구와 뮤지컬을 보러 갔다. <로미오와 줄리엣> 프랑스 오리지널 내한공연이었다.



'나의 인생 뮤지컬 중 하나'라고 말하고 다니기는 하지만, 사실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접한 공연실황 동영상을 보고 반해서 외울만큼 많이 본 작품일 뿐이다.


친구와 객석에 앉아서 셀카 삼매경과 근황토크로 정신이 없던 중에 불이 꺼졌다. 무대 왼쪽엔 붉은 옷의 캐퓰렛 가문, 오른쪽엔 푸른 옷의 몬테규 가문. 그리고 첫 곡 <overture>의 전주가 나오는 순간.


친구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탄성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아........!"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면서도 가사 전체를 줄줄 외울만큼 많이 들었던 작품이다. 전주가 시작되는 순간, 열일곱살의 우리 자신이 갑자기 불쑥 우리를 덮졌다. 작은 기숙사에서 지지고 볶으며 버텨내던 열일곱. 세상 고민이 다 우리 것 같았고, 세상 전부가 우리의 무대라고 믿었던 열일곱.


우리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것이 아니라 어린 날의 우리 자신을 보고 온 것 같았다.


대표곡인 <Aimer>가 시작된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흘렀다. 열일곱의 우리가 보던 그 불법다운로드 공연실황 영상 속에서 늘 듣던 줄리엣의 노래. 10년이 지나 살이 조금 빠지고 나이가 조금 들었지만 여전히 청아한 줄리엣의 목소리.


그들의 공연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우리는 많은 것이 변했다.


우리는 나이가 들었고, 여러 번의 사랑을 겪었다. 공연은 아름다웠지만 더 이상 로미오와 줄리엣의 치기어린 사랑이 아름답게만 보이지는 않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고, 저 귀엽고 철없는 것들, 하고 혀를 끌끌 차며 우리의 그런 모습이 우스워 깔깔 웃었다. '어른'이 되어 버렸다.


멋부릴 줄도 모르고 그저 착실하게 공부만 하던 열일곱의 우리는, 공연이 끝나고 이태원에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이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열일곱의 우리는 마치 대단한 약속이라도 하듯, 어른이 되면 꼭 뮤지컬을 직접 보러 가자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스물일곱의 직장인이 된 우리는 그 약속을 지켰다. 그때 그 결연한 모습이 우스울 정도로, 아주 즉흥적으로 이틀 전에 표를 사고 공연을 볼 만큼 돈을 벌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 누리는 그 자유만큼 고된 미생의 삶을 살며, 세상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세상 걱정의 일부에는 눈을 감고 모른 척 하게 되었다. 더 이상 열일곱살 때처럼, 우리가 대단한 '글로벌 리더'가 될 것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 버렸다.


정작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될 줄 알았던 것들은,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겠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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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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