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 미친여자 널뛰기 하듯, 요동치는 직장생활]
2015.09.12(토) / 회사를 떠나기 496일 전.
우연히 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야후의 CEO 머리사 마이어가 출산 후 16주의 유급휴가를 쓰지 않고 2주만에 복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는 내용이었다. 출산 후 2주 만에 복직한 강철같은 체력도 충격적이었지만, 그에 대해 '논란'이 일어난다는 것이 내게는 훨씬 더 충격이었다.
주어진 Maternity leave를 다 쓰지 않고 지나치게 빨리 복직하는 그녀의 행동은 "직원들에게 만약 진짜 헌신적이라면 항상 직장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며 비판당했다. ( https://goo.gl/eoKrQx)
충격이었다. 머리사 마이어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각종 일간지에서 대서특필 했을지도 모른다. "프로정신"이 투철한, 멋진 기업인이라고.
얼마 전 친한 회사 동기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참 밝고 유머러스한 친구였는데, 툭 건드리면 울음을 쏟아낼 것 같은 표정으로 내게 찾아왔다. 자초지종을 묻는 내게 "진짜 못해먹겠다"는 한마디를, 한숨처럼 툭 내뱉었다. 상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고서, 그간 차곡차곡 쌓인 상처에 소금물을 부은 것처럼 덧나서, 혼자 구석에서 담배 열 개피를 연달아 피고서야 사무실로 돌아갔다고 했다.
나는 성인 남성이 그렇게까지 상처받아 검게 질려버린 얼굴로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이는 걸 처음봤다. -물론 남자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쨋거나 내게는 낯선 장면이었고, 그래서 마음이 더 아팠다. 오죽했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서 가슴에 쌓여있던 상처를 털어내는 그 동기에게 나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 맞는 말 뿐이라 마음이 아팠다. "가장 무서운 건, 어느새 나를 괴롭히는 이 문화와 이 사람들에게 동화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야." 라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헬조선은 내 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시스템은 가해자 없는 피해자를 만들고,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가 되어 시스템에 동조하고,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엉켜 있어, 이제는 누구에게 손가락질을 해야할 지, 어디서부터 도려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도 도려내야 할 암덩어리의 일부 같아 화가 나고 부끄럽다.
하고 하고 또 해도 새로운 일은 계속 몰려오고, 바퀴벌레처럼 잡아도 잡아도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왜 좀 더 근성을 가지고 (즉, 기꺼이 자정 너머까지 야근을 하고 주말을 반납하며) 해내지 못하느냐고 욕을 먹는다. 세상이 더럽다 더럽다 욕을 하는데,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 이 모든 걸 삼켜야 하는 것이 제일 더럽다.
이 현실이 그저 답답하고 슬프다.
나는 매일매일 회사 게이트에 사원증을 태그하는 그 순간부터 탈출을 꿈꾼다. 그리고 허황된 꿈에 그치지 않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 아직은 답을 잘 모르겠다.
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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