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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Jul 14. 2017

[Part 2] 나홀로 응급실행, 혼자는 서럽다.

[Part 2 : 미친여자 널뛰기 하듯, 요동치는 직장생활]

2016.1.21(목) / 회사를 떠나기 365일 전.


내 인생을 통틀어 최고로 아픈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이가 덜덜 떨리게 아프고 등이 쑤시고 아팠었다. 몸살인가 싶어서 병원에 갔었는데, 대충 내 말을 듣고는 "몸살인가보네요~" 라는 무성의한 한 마디와 타이레놀을 받아서 돌아왔다. 근데 그게 몸살이 아니었던거다. 돌팔이 의사.




회사 앞 자취방에서 밤새도록 혼자 끙끙 앓았다.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서 절절 끓는 방바닥에 누워서 몸이 흠뻑 젖게 땀이 나는데도 시베리아 한복판인 것처럼 덜덜덜 떨다가, 너무 아파서 엉엉 울다가 다시 조금 졸다가를 밤새 반복했다. 응급실에 가고 싶었는데 가까운 응급실을 검색하고 택시를 잡아서 갈 만큼의 정신도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혼자서 119를 불렀고, 핸드폰과 지갑만 챙겨서 집 앞 현관에 나가 구급차를 내 발로 걸어서 올라탔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냥 당장 너무 아프니까 병원에서 뭐라도 해주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응급실에 있던 의사는 "너무 춥고 등이 아프다"는 똑같은 말 한마디에, 대번에 신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진 검사, 검사, 검사. 진통제 기운에 잠들만 하면 엑스레이를 찍고, 열을 재러 오고, CT를 찍고.


나를 괴롭히던 병은 신우신염으로 판명되었다. 스트레스 받지 말란다. 나의 하루는 기상 스트레스에서 시작해서 출근 스트레스, 업무 스트레스, 술자리 스트레스, 그리고 다시 내일의 기상 스트레스로 이어지는데 말이다. 모든 병의 근원은 스트레스고, 모든 스트레스의 근원은 회사인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회사에 연락을 하고, 엄마에게도 연락을 하고. 한참이나 열이 내리지 않아서 하루 종일 응급실에 있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약을 받아 퇴원했다. 그리고 주말을 끼고 며칠을 더 쉬고 나서야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약기운에 몽롱한 상태로 먹고-자고-먹고-자는 며칠이 이 와중에 편안하다고 생각한 건 비밀.




지옥같은 하루였다. 집을 나와서 산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새삼스레 서럽고 외로웠다.


구급차의 119 대원들도, 응급실 간호사와 직원들도 계속해서 묻는 말. "보호자 없으세요? 수납 직접 하시는 거에요?" 보호자가 없어서 혼자서 접수를 하고,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하고, 간호사를 부르고 싶은데 간호사를 부르지 못하고, 물이 먹고 싶은데 물을 사러갈 수도 없었다.


겨우 출근을 해서도 몸이 덜덜 떨려서 너무 힘든데, 퇴근길에 좀 더 먼 길로 빙 둘러서 죽을 포장해가야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앉아있기도 힘든데 빈 속에 약을 먹을 수 없어서 냉장고에 있는 차가운 죽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군데군데 뜨겁고 차가운 부분이 고르지 않게 섞인 죽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넣고 있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여전히 오한이 들고 추워서 이불 밖으로 나갈 수 없는데, 목이 말라서 엉금엉금 냉장고까지 기어가서 물을 마시는 것도 힘들었다.


사소한 이 모든 일들이 서러워 죽겠어서 몇번이나 울었다. 떼쓰는 어린아이처럼. 밥먹다가도 울고 물마시다가도 울고 그냥 누워있다가도 울었다.




얼마 전 결혼한 친구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언니, 결혼하니까 울타리가 생긴 기분,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켜줄 것 같은 기분이야."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님께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걱정 끼칠까 싶어 좋은 소식만 말씀드리게 되는데,

정말로 온전히 내 편이고 온전히 내 삶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생기는 게 결혼인 것 같다는 생각이,

이 정신없는 와중에 엉뚱하게도 머릿 속을 스쳤다.


다시는 아프지 말아야지. 너무너무 힘들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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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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