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머리카락을 뽑고,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들

발모광(발모벽)과 교조증

by 졔졔

어렸을 때 엄마 미선은 내게 자주 이렇게 묻곤 했다.


"너 나중에 어른되서도 그렇게 손톱 물어뜯을 거야?"

"아니..."


대답과 달리 어른이 된 나는 지금도 손톱을 물어뜯는다.


손톱이 정말 못생겼군.

타자를 치는 지금도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 손톱의 왼쪽 편이 퉁퉁 부어있다. 잘못 물어뜯은 손톱이 살 안을 잘못 파고들어 염증이 발생한 까닭이다. 20년 이상 쌓아온 경험으로 이쯤은 거뜬히 넘긴다. 그냥 고름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늘이나 물어뜯어 떨어져 나온 다른 손톱의 끝으로 고름이 찬 손톱 옆을 쿡 찔러 넣어 고름을 짜주면 된다. 날로 올라가는 삶의 잡 스킬과는 반비례하게 손톱의 바디는 자꾸만 뭉툭해진다. 비례하는 것이 있다면 손톱 옆의 거스러미들 정도?


불안하거나 무언가에 집중할 때 정신을 차려보면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다. 혹은 이미 물어뜯은 손톱이 노트북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잠깐, 손톱 옆 살점은 삼켰던 것 같기도 한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손톱을 물어뜯지 않기 위해 비싼 돈 들여 네일아트도 받아 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다 보면 앞니에 매니큐어 가루가 파랗게 껴 있기도 했다. 미관상으로도, 위생상으로도 좋지 않은 것은 아니 행여 이 글을 읽다가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하고 싶었다면 참아주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발톱은 물어뜯지 않는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겨주길 바란다.


이렇게 손톱 물어뜯기를 즐기는(?) 내가 손톱을 물어뜯지 않는 때도 있다. 물어뜯을 손톱이 남아나지 않았을 때나 타깃이 손톱이 아닌 날, 나는 머리카락이나 속눈썹, 눈썹, 심지어는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집게손가락 끝을 족집게 삼아 다리털을 뽑는다. 비중으로 따지자면 머리카락을 뽑는 경우가 태반이고 나머지는 가끔 손댄다. 머리카락을 뜯는 일은 손톱을 물어뜯는 것보다 나쁜 일 혹은 기행을 저지르는 것 같고 무언가 들키는 기분이 되어 남들이 알지 못했으면 하는 행동인데, 그럼에도 무의식적으로 계속하게 되기 때문에 숨기기는 쉽지 않은 행동이다. 원형탈모까지 겪어 머리카락의 소중함을 아는 나임에도, 원형탈모 이후에도 이 행동은 고쳐지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만지는.jpeg 나중에 이 사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다른 사람이랑 생각하면서 말할 때도 머리카락을 만지거나 뽑는다고...?


처음 머리카락을 뜯기 시작했던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제부터였던가를 되짚어 보다 보면 이런 장면이 그려진다. 교실 한가운데 내가 교복을 입고 의자 위에 가부좌를 틀어 앉은 채 왼쪽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리고 왼손으로는 분주히 머리카락을 훑고 있다. 왼쪽으로 기운 고개로 비뚜름하게 앉아 시험지를 보며 눈으로는 바쁘게 시험 문제를 풀어가는 내가 보인다. 곱슬인 내 머리 중에서도 유독 꾸불꾸불한 머리카락을 탐색하기 위해 왼손으로 스스로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탐지된 꾸불 스팟 중에서 이 꾸불함의 원천이 되는 그 한 올의 머리카락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감지하고 뽑아내는 작업을 하며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시험이 끝나고 답안지를 제출함과 동시에 숨을 돌리려 가부좌를 풀고 의자를 뒤로 빼내어 일어나는 순간, 바닥에 수북이 쌓인 머리카락들을 발견한다. 다른 친구들이 발견할까 봐 발로 슬며시 머리카락 일부를 밟아 발을 끌며 다른 곳으로 머리카락을 흩뿌려 놓는다. 탈모라고 오해받는 것도 곤란하지만, 잔뜩 뽑힌 머리카락의 무덤이 내 것임을 알게 하는 것도 곤란하다고 생각하면서.


그즈음 시작된 머리 뽑기는 손톱 물어뜯기를 대체하거나 보완할만한 무언가가 되었다. 무언가에 집중한다고 하면서 머리카락을 훑어 꾸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솎아내는 작업에도 열심인 것이 가능한 일일까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머리카락을 뽑는 것은 반쯤은 무의식의 영역이고, 오히려 집중을 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생각을 한다. 델포이에서 신탁을 받던 무녀들이 무의식의 상황에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나도 무의식 속에서 머리카락을 제물 삼아 시험 점수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는 했다. 단순 반복 작업을 할 때보다는 글을 쓰거나, 기획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계획을 세우는 일들을 할 때 머리카락을 뽑는다. 일할 때 외에도 스스로를 관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추정하기로는 뭔가 초조하거나, 고민이 될 때도 나는 머리카락을 뽑는다. 물론 머리카락 대신 손톱을 물어 뜯기도 한다. 지금껏 머리카락 얘기를 브런치에 쓰면서도 얼마나 많은 머리카락이 뽑혀나갔는지 모른다.


그냥 나만의 버릇이라고 생각하던 행동에 이름이 붙은 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전 직장 동료가 퇴사를 앞두고 나에게 '너무 애쓰지 마. 머리카락 좀 그만 뜯고. 그거 병이야 병. 발모광인가.'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 제일 먼저는 민망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굴이 벌게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음에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내가 머리카락을 뜯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에서, 그리고 본인이 알고 있다는 것을 말로 꺼낸 사람이 지금껏 없었다는 점에서 '최초로 들킨' 기분이 들어 당황스러웠다. 그다음에는 내 행동에 이름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이런 행동을 한다니.


게다가 그 행동의 이름이 '발모광'이라니. 발모광이란 말이 있는지, 어떤 행동인지, 왜 이것이 병인지 궁금해 일하다 말고 구글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ㅂㅏㄹㅁㅗㄱㅗㅏㅇ 한 자모씩 타이핑을 하며 '광'이란 음절이 까끌거려 광이 들어간 말들을 떠올렸다. 광인, 광기, 광견... 하나같이 부정적인 단어들이 먼저 떠올랐고 조금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자니 축구광, 독서광, 영화광 등 무언가 열렬히 좋아하는 말들이 떠올랐다. 다른 사람들이 축구나 독서나 영화를 좋아하는 만큼 머리카락이나 털 뽑는 것을 좋아한다고...? 내가?


이내 발모광에 대해 나온 검색 결과는 아래와 같은 결과들을 출력해주었다.


발모광(발모벽)

발모벽은 자신의 털을 뽑으려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머리카락을 뽑는 질환으로, 충동조절장애에 속합니다. 환자는 머리카락을 뽑기 전에 긴장감을 느끼며 머리카락을 뽑고 나면 기쁨, 만족감, 안도감을 느낍니다. 이로 인해 모발이 현저하게 상실됩니다. 일반적으로는 평생 유병률이 1%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환자들이 비밀로 하기 때문에 이보다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체로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발병하지만, 그 이후에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동기에는 남녀에게 비슷하게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성에게 더 잘 나타납니다.

발모벽은 심리적인 원인과 생물학적인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납니다. 전체 환자의 1/4 이상은 심리적 스트레스 상황과 연관되어 발생합니다. 심리적 요소로는 부모와 자식 관계의 문제,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걱정, 최근에 느낀 대상의 상실, 우울, 불안 등이 있습니다. 생물학적 원인으로는 강박장애와 마찬가지로 뇌의 세로토닌 체계의 이상이 지적됩니다.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더보기 ► http://m.amc.seoul.kr/asan/mobile/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1882&diseaseKindId=C000006)


그리고 발견한 발모광의 사진들은 대박 충격적이었다. 나보다 더 머리카락 뽑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결과 사진들 대부분은 (병증을 설명하기 위해서 자극적이고 심한 사진을 썼겠지만) 조금 징그러우... 사실 많이 징그러웠다. 저렇게는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 이후로도 머리카락을 뽑거나 손가락을 물어뜯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고, 일종의 강박이라는 말이 틀린 말 같지는 않다. 고민이 많거나 바쁠 때에는 늘 주변에 많은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지만, 최근의 퇴사 이후 1~2개월 정도는 손톱도 꽤나 길었고 (그냥 바디 외의 하얀 부분이 올라온 것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올림픽 배구 경기를 볼 때 외에는 머리카락도 잘 만지지 않았다. (올림픽 배구를 보면서는 머리카락을 안 만질 수 없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친구에게 병원을 꼭 가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스스로 심해진다고 생각하지 않을 경우 그 정도 강박 교정을 위해서 꼭 병원을 찾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대에 있을 때, 군인들이 그렇게 턱수염을 뽑곤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얘길 듣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손톱을 뜯고 털을 뽑는 사람들이. 발모광의 경우 유병률이 0.6~10% 정도라고 한다. 유병률을 확실시하기 어려운 까닭은 이 사람들의 특징 탓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떤 기사를 찾아보면 이런 사람들은 완벽주의자이거나, 목표지향적이고, 조급하고 예민한 성격이나 심리적 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반박하고 싶은데 좀 어렵네...) 이런 특성과 이런 특성의 나를 떠올리며 마음대로 생각해보면 병원을 찾거나 타인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들키는 것이 싫을 수밖에 없을 사람들일 것이다. 한데 10%라는 유병률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런 이들은 꽤 많다.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을 이들. 내 삶에 비추어 이들의 삶을 상상해 본다.


내 생을 사랑해서 열정적으로 껴안다 보니 잘하고 싶어 져서 늘 자신을 불태우는 사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어려운 시험에 도전하는 것을 앞둔 사람, 중요한 제안 작업이나 기획을 앞둔 사람, 잘 보여야 하는 누군가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사람, 일이나 목표 달성을 통한 성과를 보이지 않고는 자신의 존재가 쓸모없이 여겨질까 고민하는 사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가만히 있다가 도태되진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도 이 옷을 벗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괴로워하는 사람,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어 이를 꾹 감당하고 있는 사람, 소중한 누군가를 잃고 그를 떠올릴 때마다 머리카락에 손이 가는 사람.


머리카락을 뜯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들이 나는 애달프고 사랑스럽다. 그것이 어떤 성격 때문이던, 어떤 상황 때문이던 애쓰고 있을 당신들이 나는 어여쁘다. 그래서 내가 내게 반복적으로 하는 말을 나누고 싶다.


탈모만 아니면 머리카락을 조금 뜯는 것은 엄청 숨겨야 하는 큰 하자나 부끄러워할 문제는 아니라고, 그렇지만 이미 충분히 어여쁘니, 조금 덜 애써도 괜찮다고.


그나저나 내가 언제까지 머리카락이나 손톱을 뜯을지가 나도 궁금하다. 내 인생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로 삼아야지.





▼ 졔졔의 머리카락 이야기, 이전 글 보기



keyword
이전 10화9화. 시시각각 머리카락처럼 변하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