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손해를 두려워하지 마라

작은 손해가 아이를 크게 만든다.

by 감차즈맘 서이윤

저는 한국과 미국에서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며 수많은 부모님과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누구나 좋은 대학을 꿈꾸었고,

그 목표를 향해 부모님과 아이 모두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본 끝에,

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의 '그다음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공부를 잘했고,

좋은 대학을 나왔고,

괜찮은 직장까지 가졌는데도

그 지점에서 삶이 멈췄습니다.


분명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일찍 멈춰버렸습니다.


더 이상 꿈을 찾고, 무언가를 해내려던

꿈 많고 패기 넘치던 아이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은 건

그저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어른 아이였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이건 아이의 한계가 아니라,

어른이 만들어낸 한계라는 것을.


그렇다면 그 한계는 왜 생겼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손해를 감수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모님들은 말합니다.


"우리 애는 양보를 잘해요."


하지만 ‘양보’와 ‘손해’는 다릅니다.


지하철에서 노약자를 보면 자리를 내어주는 건 양보입니다..

내가 잠시 불편해도,

다시 돌아올 내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손해는 다릅니다.


가득 찬 열차에 내가 타려던 순간,

힘겹게 다가오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내가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일 —

그게 바로 손해를 감수하는 마음입니다.


어릴 때 손해를 경험한 아이는,

언제 한 발 물러서야 하는지,

언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게 바로 가치의 깊이이고,

진짜 성숙함의 시작입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것만 잘해.”

“남 신경 쓰지 마.”

“손해 보지 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마음 한쪽이 서늘해집니다.


그 말은 결국 자신감이 아니라

아이 마음 속에 **이기심의 뿌리**로 남게 됩니다.


'내가 먼저.'

'손해보지 말아야 한다.'

‘나만 잘 되면 된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늘 계산하고, 비교하고, 따지게 되면서

결국 '작은 이익에만 집착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기적인 아이에게 열리지 않습니다.


세상은

손해를 피하는 사람보다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사람에게 문을 엽니다.


간혹 미국에서 부모님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아시안으로서 벽을 느껴요."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그 벽을 넘어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아이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손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꺼이, 즐겁게.

작은 손해를 감수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손해를 받아들이는 용기와 마음이

아이를 더 멀리 나아가게 합니다.


간혹 부모님들이 아이들하고 대화하다 길어지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좋은 대학 들어간 다음에 얘기하자"

"시험 끝나고 얘기하자."


겉으로는 '지금은 바쁘니까' 처럼 들리지만,


'지금은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손해를 감수해 본 적 없는 아이는

나중에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손해를 감수할 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는 그대로 배웁니다.


"나중에 이 일부터 해결하고 이야기해요."


그 순간,

부모와 자식은 닮아있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미루고,

같은 방식으로 거리를 둡니다.


진짜 성장하는 아이는


손해를 감수할 줄 알고,

기꺼이 나누는 기쁨을 아는 아이입니다.


작은 손해는

아이를 단단하게 만들고,

세상을 넓게 만듭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마음.


손해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아이에게 세상을 함께 키우는 마음을 알려주세요.


그 마음 하나만 물려줘도,

아이의 인생에 만나는 어떤 문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문을 열 수 있습니다.

keyword
이전 02화부모의 귀가 흔들릴 때 아이의 중심도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