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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브라운 Mar 06. 2017

작은 고추는 맛이 다르다

신중하게 퇴사하기 (3) - 작은 회사에서는 더 성공하기 쉬울까?


Question


국내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대리 2년차 직원입니다. 저희 회사에는 학벌과 경력이 뛰어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글로벌 IT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온 친구들도 있고, 미국 유럽에서 MBA를 받은 친구들도 있고, 영어는 기본이고 중국어까지 구사하는 친구들도 많고. 이런 친구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까요? 규모가 조금 작더라도 제가 빛을 발할 수 있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은 어떨지 여쭙습니다.





Answer


대기업은 인력 풀이 뛰어나죠. 그런 쟁쟁한 분들과 경쟁해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도 많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큰 대기업보다는 인력 풀이 조금은 처지는 것으로 생각되는 작은 기업으로 이직해서 승부를 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작은 회사라고 만만하게 보면 큰 코 다칩니다. 



전해 들은 스토리


옛날 옛적에 박군이라는 고딩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서울 명문고에서 반장에다가 공부도 전교 10등 안에 들고, 무엇보다도 교내 쌈장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올라운드 스타플레이어'였죠.


그런데 어느 날 아버님 직장 때문에 지방고로 전학가게 됐습니다. 박군은 생각했죠. '내가 서울 명문고에서도 날렸는데(당시 유행하던 표현) 지방고에서는 완전 '나훈아'(당시 최고 인기스타) 되지 않겠어?'


그런데 웬걸? 박군은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나훈아'는커녕 '너훈아', '나운하'도 못 됐습니다. 


먼저 이 학교에서는 공부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서열이 맞짱으로 결정됐죠. 하지만 박군하면 또 서울 명문고 쌈장 아닙니까? 지방고와는 뭐가 달라도 다르겠죠.


그런데 웬걸? 박군은 맞짱에서도 '별로'였습니다. 왜냐고요? 맞짱 뜨는 방식이 달랐으니까요. 이곳 학생들은 자연을 벗 삼아 '내 것 화'하는 게 특기였습니다. 먼저 학교 옥상이 아닌 논두렁 옆에서 싸우다 보니 주변에 돌, 흙, 나뭇가지 이런 것들이 참 많았는데 이를 십분 활용한 거죠. '눈에 흙 던지기', '돌로 찍기', '나뭇가지로 찌르기' 등 수도권에서는 구사하기 힘든 온갖 꼼수들이 횡행했죠. 


이곳 학생들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에도 익숙했습니다. 박군이 온갖 난관을 무릅쓰고 행여나 이길라치면 상대편 친구들이 집단으로 몰려와 박군을 '다구리' 뜨고 어려움에 처한 '자기네 이웃'을 구출해 줬죠. 어찌 보면 외부에서 온 박군 같은 침입자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집단 방어책'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결국 박군은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학생으로 조용하게 고딩 생활을 마쳤습니다. 아니, 그렇게 마칠 수밖에 없었죠. '모난 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요.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영화 중 가장 '레알'한 맞짱 장면을 보여준 극사실주의 영화 '품행제로' [사진 출처: 영화 '품행제로']



(1) 이 세상에 만만한 회사는 없다. 단지 '게임의 룰'이 다를 뿐.


제 경험상 이 세상에 만만한 회사는 없습니다. 어차피 모든 회사가 피라미드 구조인만큼 기업 규모와는 관계없이 경쟁은 있기 마련이고 그 경쟁에서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습니다. 단, 게임의 룰은 다를 수 있죠.


모든 회사가 피라미드 구조인만큼 경쟁은 있기 마련이다


정직한 영업 실적으로 평가받는 회사가 있는 반면, 보고 능력으로 평가받는 회사도 있습니다. (사실 '정직한 영업 실적'이라는 말은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지극히 비현실적인 표현입니다. '반칙 없는 스포츠 경기'가 존재하지 않듯이.)


'정직한 영업 실적'은 없다
'반칙 없는 스포츠 경기'가 없듯


'신의 직장'이라고 경쟁이 없을까요? 다시 한번, '모든 회사가 피라미드 구조인만큼 경쟁은 있기 마련'입니다. 신의 직장에서 일은 빡시게 안 할지 몰라도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암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고 있을 수 있죠. 결국 그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잘 보이기'가 승진을 위한 게임의 룰인 셈이죠. 


정리하자면 경쟁이 느슨한 만만한 회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경쟁에 있어서만은 큰 대기업 못지않게 치열합니다.



(2) 규모가 작은 회사라고 반드시 인력 풀이 처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아무리 시원치 않은 회사라고 해도 임원은 임원입니다. 모든 임원은 자신만의 '한 칼'이 있습니다.


몇 년 전, 농담 안 하고 정말 '아치'스러운 임원을 뵌 적이 있었는데 이 분은 정말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이 분은 '어떻게 임원이 됐지?'가 아니라 '어떻게 취업을 했지?' 싶을 정도의 풍모와 말투와 실력을 모두 겸비한, 정말 '대기업에서 보기 드문' 인재였습니다. (여기서의 인재는 '이번 사고는 예고된 인재였다'할 때의 인재에 더 가깝죠.)


그런데 웬걸? 이 분이 정말 출중한 능력이 있었으니, '갑질'에 특출난 재주가 있더군요. 일단 풍모가 아치스러우니 상대방이 그냥 당합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정말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합디다. 그러니까 이 회사에서는 쓸모가 있는 거죠. '해결사'처럼요. 그 점은 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만의 '확실한 컬러'가 있는 직원을 의미하는 '엣지녀'는 모든 분야를 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한 방면으로는 뾰족하기 때문에 그러한 '엣지'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발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이 회사는 '갑질' 할 일이 참 많았나 보죠? 그러니까 이런 분까지도 임원이 되죠.


어쨌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어느 회사에나 그 회사만의 게임의 룰에 최적화된 인재는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적어도 그 방면에서만은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중견그룹 중에도 규모는 작지만 인력 풀은 대기업집단 못지않게 뛰어난 그룹도 있습니다. 부족한 인력 풀을 채우기 위해 훌륭한 외부 경력직을 활발히 영입하기 때문이죠. 이런 회사를 만만하게 보고 들어갔다가는 정말 큰 코 다칩니다. 잘못하면 '경력직의 무덤'이 될 수도 있죠.



(3) 큰 회사, 좋은 회사 출신이라고 뻐기고 다니면 '다구리' 당한다.


모 회사에는 '맥걸'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맥킨지 출신 여성'의 준말이라고 하는데요.


맥킨지 하면 글로벌 탑 전략 컨설팅 회사잖아요.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의 여성 부장이 있는데 "맥킨지에서는 이렇게 안 하는데..." 또는 "내가 맥킨지에 있을 때에는..."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셔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물론 본인은 모르죠. 그렇게 말하는 게 얼마나 '밥맛'인지를... (맥킨지나 전략 컨설팅 회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니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결국 이 분은 서서히 왕따를 당했답니다. 비단 맥킨지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겠죠. S전자나 H자동차 출신들도 중견그룹으로 갔을 때 이러면 안 되겠죠.


이런 분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모든 회사에는 그 회사만의 생존 방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회사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이런다고 한국에서 그러면 안되듯이요.


모든 회사에는 그 회사만의 생존 방식이 있다


이를 무시한 채 예전에 근무했던 더 큰 회사, 더 좋은(?) 회사의 방식을 혼자서 고집하고 이를 강요하다가는 '밉상'으로 낙인찍혀 집단 이지메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결론은 기업 규모와는 관계없이 어느 회사를 가든 경쟁은 치열합니다. '게임의 룰'이 다를 뿐 경쟁이 심하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스포츠 종목에 스타플레이어가 있듯 모든 회사에는 실력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게임의 룰'에 최적화된 실력자겠죠. 그리고 규모가 큰 스포츠 종목(예시: 야구)에서 작은 스포츠 종목(예시: 족구)으로 '전향'한다고 해서 갑자기 스타플레이어가 될 수 없듯이 큰 회사에서 작은 회사로 간다고 해서 더 잘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큰 회사에서 일하던 방식을 계속 고집하면 오히려 순위에서 더 밀려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글쎄요. 이를 응용해보면 여기에서는 '작은 고추가 더 맵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맛은 다르다'가 되겠네요.


어디를 가든 힘든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기업의 규모보다는 그 기업이 나랑 잘 맞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승-전-기업문화네요. 


작은 고추가 더 맵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맛은 다르다
어느 고추가 가장 매울까요?



by 찰리브라운 (charliebrownkorea@gmail.com)





Key Takeaways


1. 모든 회사가 피라미드 구조인만큼 모든 회사가 경쟁은 치열하다.

2. 큰 회사는 큰 회사만의 경쟁방식이 있고 작은 회사는 작은 회사만의 경쟁방식이 있는데, 큰 회사 경쟁방식이 작은 회사에서는 안 통할 가능성이 높다. 게임의 룰이 다르기 때문이다.

3. 따라서 이 세상에 만만한 회사는 없다. 그래서 기업의 규모보다는 기업문화가 나랑 잘 맞는지가 더 중요하다.





추신


제 직장생활을 정리해보면 처음 10년은 프로페셔널 펌에서 시작했고, 그리고 그다음 10년은 국내 대기업에서 보냈고, 최근 1년은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는 중견기업을 대기업과 비교해서 "작은 고추는 맛이 다르다"라고 했는데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아예 '고추와 완전 다른 피망'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게임의 룰이 완전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게임 자체가 다르다고까지 할 수 있겠네요.


스타트업의 경우 이 바닥에서 3년 이상 버틴 분들을 보면 대기업과는 완전 다른, 또 다른 생존능력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 역량만 놓고 보면 대기업 직원에 비해 우수한 측면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병사의 경우 팔랑스를 이뤄서 집단으로 적과 싸울 때에는 잘 싸울 수 있을지 몰라도, 로마의 콜로세움과 같은 격투장에서 일대일 다이다이 떴을 때에는 아마 수년간 훈련을 받은 글래디에이터를 당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대기업 직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는 우수하지만 스타트업 직원과 일대일 다이다이 띄우면 아마 승부를 예측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아니, 오랜 조직 생활에 길들여진 대기업 직원은 회사 사정상 어쩔 수 없이 팔방미인이 될 수밖에 없는 스타트업 직원과 일대일 비교에서는 결코 우세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스타트업에서는 경력직을 뽑을 때 대기업 출신들을 오히려 선호하지 않습니다. 대기업에 익숙해진 분들은 스타트업 기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제 지인 중 한 분도 10여 년 간의 대기업 생활을 접고 최근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정말 훌륭한 스타트업에 입사했다가 두 달도 채 안 돼 퇴사를 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여쭤보니 "내가 일을 찾아서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라고 하더군요. 


대기업에서는 끊임없이 일이 떨어지고 그 일만 잘 처리해도 본전은 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힘들여 일거리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죠. 이처럼 대기업이 '남이 잡아다 준 사냥감을 어떻게 요리할까'를 고민한다면 스타트업은 '어떤 사냥감을 어떻게 사냥해서 어떻게 요리할까'까지 모두 고민해야 합니다. 아니, 고민만 하고 끝나서는 안 되고 실제로 실행을 할 줄 알아야 하죠.


최근 10년을 국내 대기업에서 근무해온 저로서는 수년간 스타트업에서 버텨오신 분들에게 존경심을 표하고 싶네요.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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