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만큼 기꺼이 하고, 애쓰지 않으면 괴로움이 없다
나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애쓰지 않고 살아가기.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늘 무언가를 위해 애쓰는 삶을 살았다. 학생 때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그리고 수능을 향해.
대학에 들어가서는 또다시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향해. 졸업 후엔 취업을 향해. 취업 후엔 대학원 입학을 향해. 대학원 졸업 후엔 다시 취업을 향해!
내 삶에 ‘출산’과 ‘육아’는 강제로 걸린 브레이크 같았다. 나를 키우기 위한 목표만을 향해 가던 내가 이제 다른 생명을 키워야 했다.
‘집에서’ ‘아이만’ ‘키운다는 게’ 그렇게 엄청난 일인지도 모르고, 그저 내가 갈 길에 잠시 브레이크가 걸린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잠깐만 멈춰서 아이 좀 키우고 다시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야 마땅하다고, 그렇게 하지 않는 건 나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생각했다.
둘째가 여섯 살이 되고 내가 마흔이 되자 조급해졌다. ‘이러다 영영 아무것도 못 하고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거 아냐?’
내 능력이 여전함을 증명해야만 했다. 다행히 실행력만큼은 뛰어났던 나는 덥석 덥석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우리 집 방 한켠을 공부방으로 꾸미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6개월 후에는 학원을 열었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은 힘들어도 행복하다. 아침에 눈을 떠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기 때문이다.
벅찬 그 마음은 이상하게도 목표를 이루고 나면 사라졌다. 학원 운영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조금씩 이상한 마음이 깃들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원생을 더 늘려야 하나?
선생님을 고용하고 규모를 더 확장해야 하나?
그러면 우리 아이들에게는 신경을 못쓸 텐데……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인가?‘
다시 목표를 잃었다.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재빨리 다른 목표로 갈아타지 않는 이상 나는 자꾸 길을 잃었다.
잘 되던 학원을 접었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애쓰지 않고 살아가기.
항상 애쓰고, 그에 대한 보상을 원하고, 목표를 달성하면 다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괴로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 이 순간을 괴로움 없이 살기.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잠시 달콤한 낮잠에 빠져도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내 몸이 조금 피곤했구나. 모자란 잠을 조금 보충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해주기로.
우주의 먼지와 같은 내 존재가 새벽 일찍 일어나 종종거리고 애쓰고 살아간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충분히 자고 느긋한 내가 행복한 것이, 그리고 행복한 내가 그 에너지를 주변에 나누는 것이 이 지구에 훨씬 이로운 일일 것 같다.
불행한 성취중독자가 되느니 행복한 우주의 먼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