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관성의법칙 / 1장: 평행우주
"뉴턴의 제1법칙: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고,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같은 속도로 운동한다.
부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자산은 당신이 움직이지 않는 한, 결코 스스로 성장하지 않는다. 반면, 성장하기 시작한 자산은 복리의 법칙에 따라 가속도를 얻는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이 물리학적 법칙을 이해하고 적용했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 서울 지하철 2호선 스크린도어에 붙은 부동산 세미나 광고 중에서
기하급수적 성장의 비밀
성인 남성의 몸에는 약 37조 2천억 개의 세포가 있다. 이 세포들은 각자의 기능을 수행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생명체를 형성한다. 비슷한 원리로, 지구에는 79억 명의 인간이 존재하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경제라는 거대한 유기체를 구성한다.
그런데 이 경제 시스템에서 부의 분배는 세포처럼 균등하지 않다. 전 세계 부의 50% 이상이 불과 1%의 인구에게 집중되어 있다. 왜일까?
그것은 부가 세포처럼 분열하는 것이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기 때문이다. 1만 원이 연 10%의 수익률로 성장할 때, 100년 후 그 가치는 약 1억 3700만 원이 된다. 하지만 복리의 마법이 500년간 지속된다면? 그 가치는 무려 3조 9000억 원이 된다.
부자들은 이 비밀을 알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 비밀을 모른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서울에는 약 450만 가구의 집이 있다. 그 중 임지수가 소유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홍대입구역에서 나와 좁은 골목을 걸을 때마다 지수는 자신이 거대한 수학 방정식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은 그의 월급과 비례해 오르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월급보다 더 높다. 복리효과를 고려하면 10년 후 그 격차는 정확히 115%나 된다.
골목 끝 낡은 건물의 좁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지수의 심장은 약간 불규칙한 리듬으로 뛰었다. 불안한 심장 박동은 진화론적으로 위험에 대한 생존 반응이다. 원시 인류에게는 맹수의 위협이었을 것이 현대인에게는 경제적 불안이 되었다. 두려움의 대상만 바뀌었을 뿐, 뇌의 편도체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은 동일하다.
계단 꼭대기에 도착하자 붉은색 네온사인이 어둠 속에서 깜박였다. '이자카야 코스모스'. 식당 이름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공간은 고작 몇 평의 원룸인데.
평일 저녁이었지만, 카운터에는 이미 10여 명이 대기 중이었다. 모두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젊은 직장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 몇 명이 자신의 경제적 우주에서 살고 있을까? 통계적으로 볼 때, 서울의 20-30대 중 부동산을 소유한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나머지 85%는 그와 같은 평행우주에 살고 있을 것이다.
예약 명단을 확인한 직원은 지수를 곧바로 2층 VIP룸으로 안내했다. 문 앞에 서서 지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8시 정각. 약속 시간에 정확히 도착했는데도 마지막이었다.
부의 시간 방정식
부자와 가난한 자는 시간을 다르게 경험한다.
가난한 자의 시간 방정식: [시간 = 돈] 그들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번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부자의 시간 방정식: [시간 × 레버리지 = 돈] 그들은 레버리지를 활용해 시간의 가치를 증폭시킨다.
레버리지의 세 가지 형태:
타인의 시간 (고용)
타인의 돈 (부채)
시스템 (자산)
당신의 시간은 어떤 방정식에 따라 흐르고 있는가?
문을 열자 세 개의 감각이 동시에 그를 습격했다. 코를 자극하는 향신료와 고급 양주의 향기, 귀를 울리는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웃음소리, 그리고 눈을 압도하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명품으로 치장한 옛 친구들의 모습.
"드디어 왔구나! 임지수, 학교 때부터 전설적인 출석률!"
테이블에 둘러앉은 10여 명의 친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정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손목에서 티파니 시계가 반짝였다. 지수의 세 달 월급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정확히 780만원. 지수의 뇌는 즉각적으로 이 시계를 구매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 시간을 계산했다. 520시간. 점심시간을 제외한 근무일 기준으로 65일. 약 3달.
정훈의 향수 냄새는 그가 알던 대학 시절의 친구와는 전혀 달랐다. 그때는 3천원짜리 바디스프레이 향이었지만, 지금은 프랑스 니치 퍼퓸 브랜드의 30만원짜리 향수였다. 냄새의 분자 구조는 비슷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사회적 계층은 완전히 달랐다.
테이블에 앉으며 지수는 천체물리학자가 별을 관찰하듯 친구들의 얼굴을 차례로 살폈다. 같은 고시원에서 라면을 나눠 먹던 원석, 공강 시간마다 커피를 마시며 드라마를 토론하던 민혁, 밤새 과제를 함께 했던 승우... 얼굴은 낯익었지만, 그들이 발산하는 에너지 파장은 완전히 달랐다.
명품 셔츠, 자신감 넘치는 몸짓, 지수가 평생 마셔보지 못한 30년산 위스키. 10년이란 시간이 그들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가 물리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 오늘의 귀한 손님을 위해 건배!" 정훈이 잔을 들었다. "임지수, 우리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타임캡슐 같은 친구를 위하여!"
모두가 웃었다. 지수는 '타임캡슐'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았다. 그는 시간이 멈춰버린 존재였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진화하는데, 자신만 고등학교 때의 성적표처럼 같은 자리에 멈춰 있었다.
경제적 진화의 세 단계
생존자(Survivor): 월급으로 생존. 자산 없음. 노동으로 돈을 번다.
관리자(Manager): 일정 자산 보유. 돈과 노동을 모두 활용한다.
소유자(Owner): 충분한 자산 보유. 돈이 돈을 번다.
진화 속도 = 소득 × 저축률 × 투자수익률 × 레버리지
임지수의 진화 속도: 500만원 × 0.16 × 0.02 × 1 = 16만원/월
정훈의 진화 속도: 800만원 × 0.3 × 0.15 × 3 = 108만원/월
격차는 매월 92만원씩 벌어지고 있었다.
"지수야, 회사는 잘 다니고 있어? 무슨 스타트업이라며?" 민혁이 물었다.
"응, 디지털 마케팅 회사야. 작지만 성장성이 좋아."
지수는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월급은 3년째 거의 같은 자리였고, 주식 옵션은 종이 쪼가리나 다름없었다.
"아..." 민혁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동정이 미세한 바늘처럼 피부를 찔렀다. "나는 지난달에 국내 톱 투자은행 팀장으로 승진했어. 연봉이 두 배로 뛰었지. 이제 연 1억 넘게 받아."
테이블 건너편에서 원석이 샴페인을 따랐다. 금색 거품이 천천히 유리잔을 타고 올라왔다. 마치 부의 상승 곡선처럼.
"축하해, 민혁아. 그럼 이제 강남에 집 살 계획 있어?" 원석이 물었다.
"이미 청약 넣어놨지. 판교도 하나 있고."
지수는 샴페인 잔을 들며 미소를 유지하려 애썼다. 입술 근육을 제어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부동산으로 흘러갔다. 마치 양자역학에서 입자가 항상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로 떨어지듯, 모든 이야기는 결국 '어디에', '얼마에', '언제' 부동산을 샀는지로 귀결되었다.
"원석이가 청담동에 집 샀다며? 진짜야?" 승우가 물었다.
테이블이 순간 조용해졌다. 무중력 상태처럼 모든 것이 떠 있는 느낌이었다. 원석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와인 잔을 손가락으로 돌렸다.
"뭐... 그냥 작은 아파트야."
"84제곱미터면 작은 게 아니잖아. 서울에선 30평이면 왕궁이지." 승우가 웃으며 말했다. "가격이 얼마인데?"
원석은 잠시 망설였다. 지수는 그 망설임이 진짜 겸손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 같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연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열다섯 억..." 원석이 마치 고백하듯 말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테이블 위의 초밥과 사시미가 순간 플라스틱 모형처럼 느껴졌다. 지수는 자신의 전세보증금 1억을 떠올렸다. 그 돈으로는 청담동 아파트의 화장실 하나도 살 수 없다는, 백분율로 환산하면 6.6%라는 잔인한 계산이 머릿속을 스쳤다.
"대박이다. 어떻게 모았어?" 정훈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엔 부러움보다 동료애가 묻어났다. 그들은 같은 종족이었다. 부동산이라는 우주선에 올라탄 승무원들.
원석은 다른 행성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우주 탐사대원처럼 자신의 부동산 정복 여정을 설명했다.
"5년 전 마포에 오피스텔을 2억에 샀어. 전세금 1억 5천으로 갭투자했지. 그걸 3.5억에 팔아서 용산 빌라로 갈아탔어. 그게 1년 만에 두 배가 됐고... 그렇게 계속 갈아타다 보니까."
그의 손이 우주를 가로지르는 로켓의 궤적을 그렸다. 시작점은 지수의 현재 위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도착점은 완전히 다른 은하였다. 그의 궤적은 정확히 복리 곡선을 그렸다. 초기 2억이 5년 만에 15억으로 성장한 것은 연평균 49.5%의 수익률을 의미했다. 원석의 우주선은 광속의 절반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정석적인 갭투자네." 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미 그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 우주 여행자였다.
지수는 '갭투자'란 단어를 태양계 바깥에서 온 이질적인 물체처럼 조심스레 검토했다. 전세금과 매매가의 차이(갭)만큼만 자기 자본을 투입하고, 나머지는 대출과 세입자의 전세금으로 레버리지를 일으키는 투자법. 자신에게는 블랙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갭투자의 수학적 원리
예시: 매매가 3억원, 전세가 2억원인 아파트
필요 자기자본 = 매매가 - 전세가 = 1억원
레버리지 비율 = 매매가/자기자본 = 3억원/1억원 = 3배
연간 자본수익률 = 주택가격 상승률 × 레버리지 = 5% × 3 = 15%
이것이 부자들이 항상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이유다. 1억으로 3억짜리 자산을 통제한다. 그리고 3억 전체에 대한 가격 상승 혜택을 누린다.
"솔직히 처음엔 무서웠어." 원석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고백했다. "대출이 수억이니... 대출 이자만 월 150만원 넘게 나왔어. 하지만 정훈이가 등을 떠밀었지. '부동산은 타이밍이다. 망설이는 사람은 영원히 관객으로 남는다'라고."
관객으로 남는다. 지수는 그 문장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관통하는 바늘처럼 그의 의식을 꿰뚫는 것을 느꼈다. 자신은 지금 이 자본의 연극에서 객석에 앉아 있었다. 무대 위에선 친구들이 부의 춤을 추고 있었고, 그는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시장이 너무 뜨거워서 진입하기 어렵지 않아?" 승우가 물었다. "집값이 미쳤다던데."
승우. 유일하게 지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듯한 친구.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서도 '아직'이라는 단어가 묻어났다. 그는 '아직' 집을 사지 않았을 뿐이지, 곧 살 예정인 사람이었다.
정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계산하는 물리학자처럼 냉정하고 정확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부동산을 '집'으로만 보는 거야. 부동산은 '돈'이야. 돈이 도는 방식을 이해하면 진입점은 항상 있어. 풍선 효과라고 들어봤지? 강남이 비싸면 사람들은 다음 지역으로 이동해. 그 흐름을 읽는 거야."
정훈의 시선이 지수에게 머물렀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천문학 수업을 함께 들었다. 별을 관측하고, 우주의 신비에 대해 밤새 토론했던 친구였다. 하지만 지금 정훈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천문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자본의 우주, 부동산의 별자리.
"지수야, 관심 있으면 얘기해. 내가 분석은 무료로 해줄게."
지수는 미소로 답했지만, 그의 목에 음식이 걸린 듯했다. 장조림과 초밥이 유령처럼 입 안에서 존재감을 잃었다. 대화는 결혼과 육아로 넘어갔다.
"지수 너는 언제 장가가?" 민혁이 질문했다.
"글쎄... 아직은..."
"요즘 장가가려면 집은 있어야지." 원석이 와인잔을 들며 농담처럼 말했다. "내 처갓집은 딸 시집보낼 때 신랑한테 아파트 있는지 제일 먼저 물어봤다니까. 내가 청담동 아니었으면 지금 장인어른한테 눈도 못 마주쳤을 거야."
모두가 웃었다. 지수만 빼고. 그는 실험실에서 자신의 DNA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기분이었다. 자신은 다른 친구들과 기본적인 유전자 구조는 같은데, 어딘가 하나의 염색체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완전히 다른 생물학적 운명을 타고난 것 같았다.
모임이 끝나고 택시에 오른 지수는 창밖으로 서울의 밤을 바라보았다. 한강을 건너자 강남의 고층 빌딩들이 빛의 성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마치 다른 행성의 풍경처럼. 그 빛나는 성벽 너머에 원석과 민혁의 우주가 있었다.
"기사님, 혹시 강남에 사세요?" 지수가 갑자기 물었다.
기사는 백미러로 그를 흘깃 보며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천 년의 지혜와 체념이 담겨 있었다.
"강남이요? 제가 어떻게 거기 삽니까. 인천에서 출퇴근해요. 서울은 집값이 미쳤어요."
"네..."
동류항. 수식의 같은 쪽에 있는 항들. 지수는 자신과 택시기사가 같은 방정식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중력장 안에서 비슷한 궤도를 돌고 있었다. 강남은 그들에게 항상 다른 천체였다.
지수는 휴대폰 계산기를 열었다. 청담동 아파트 15억. 그의 월 저축액 80만원. 단순 계산으로도 156년이 걸리는 숫자였다. 물가상승률까지 고려하면 이건 천문학적 불가능이었다. 은하계 반대편으로 걸어가려는 것과 다름없었다.
"내 월급으로 강남 아파트를 사려면 평생 한 끼만 먹어도 모자라겠네." 지수는 중얼거렸다.
기사는 말없이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앞 좌석에서 아나운서의 기계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서울 아파트 가격이 53주 연속 상승했습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지난주보다 0.8% 상승했으며, 전문가들은 당분간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합니다."
경제적 불평등의 물리학
양자물리학의 이중슬릿 실험은 입자가 관찰되기 전까지 모든 가능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적 운명도 마찬가지다.
가난의 이중슬릿:
관찰: "나는 평생 집을 살 수 없다"
결과: 행동하지 않음
최종상태: 가난
부의 이중슬릿:
관찰: "나는 방법을 찾아 집을 살 것이다"
결과: 지속적인 행동
최종상태: 부
당신은 어떤 슬릿을 통과하고 있는가?
마포대교를 건너는 동안 지수는 자신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평행우주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모든 가능한 선택마다 우주가 분기한다. 그의 우주와 원석의 우주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전혀 다른 물리법칙이 작동하고 있었다. 한쪽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다른 쪽은 정체되어 있었다.
원룸 앞에 도착하자 전화가 울렸다. 정훈이었다.
"지수야, 도착했어?"
"응, 방금."
"오늘 표정이 안 좋더라. 부동산 얘기 듣고 충격받았지?"
지수는 침묵했다. 어떻게 정훈이 그의 생각을 읽은 걸까? 학창 시절, 그들은 텔레파시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고 농담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훈이 먼저 다른 차원으로 올라가 버린 느낌이었다.
"다들 처음엔 '나는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해." 정훈의 목소리에서 진정한 우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뉴턴의 관성 법칙일 뿐이야.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지 않으려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하지. 너의 자산도 마찬가지야.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계속 움직일 거야."
"물리학까지 동원하냐?" 지수가 웃으며 말했다.
"인생이 곧 물리학이지. 우주의 모든 법칙은 우리 삶에도 적용돼. 관성을 깨는 순간, 너도 다른 궤도로 진입할 수 있어. 중력 슬링샷 효과처럼, 작은 힘으로도 궤도를 크게 바꿀 수 있어."
정훈의 말에는 깊은 확신이 담겨 있었다. 마치 뉴턴, 아인슈타인, 그리고 부동산 재테크 책을 모두 읽은 사람처럼.
"다음 주에 내가 투자하는 부동산 한번 보러 갈래? 누구나 시작은 작게 해. 나도 처음엔 1억짜리 오피스텔로 시작했어."
전화를 끊고 지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불빛 때문에 별은 보이지 않았다. 광공해가 천체 관측을 방해하듯, 현실의 벽이 그의 꿈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상상했다. 저 위에 무수한 별들이 있고, 그 별들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행성들 중 어딘가에는, 자신과 똑같이 생겼지만 전혀 다른 선택을 한 임지수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청담동 아파트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는 임지수. 혹은 더 큰 꿈을 위해 도전하는 임지수.
한 물리학자의 이론에 따르면, 양자적 관찰이 현실을 결정한다. 관찰하기 전까지 전자는 모든 가능한 위치에 존재한다. 그 이론을 자신의 삶에 적용한다면, 어쩌면 그는 지금 자신의 삶을 어떻게 관찰하느냐에 따라 다른 현실을 창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룸 문을 열기 전,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떤 우주에서 살고 싶은가?"
답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는 관성에 저항하기로 결심했다. 멈춰 있는 물체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외부의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힘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와야 했다.
원룸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 놓인 '양자물리학 개론'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 시절 정훈과 함께 수강했던 과목의 교재였다. 지수는 책을 집어들고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펼쳤다.
"모든 가능성은 당신의 관찰을 기다리고 있다."
지수는 웃었다. 그의 새로운 우주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