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오늘 내가 만날 사람들은 주제넘고, 배은망덕하고, 오만하며, 시샘이 많고, 무례할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그는 인간의 결함을 미리 예상하라고 했다.
타인에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다.
세상은 늘 다정하지 않고, 사람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타인은 지옥이다”
그 말은 우리들의 일상에서도 종종 사실이 된다.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시선과 의도적인 행위 하나하나에 하루가 흔들린다.
타인의 말과 표정 속에서 사람들은 쉽게 지옥을 본다.
마르쿠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금처럼 침대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오직 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다.”
게으름은 단순한 나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만
갇힌 이기심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묻는다.
타인을 피하는 건,결국 나를 피하는 일이아니냐고.
마네의 〈올랭피아〉를 떠올린다.
하얀 침대 위의 여인은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도발적이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그저 ‘당신은 나를 왜 보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눈빛이다.
그 시선 앞에서 우리는 불편해진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관계가 뒤집힌다.
타인의 시선이란, 이렇게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 같다.
그 불편함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타인에게 어떤 얼굴을 하고 서 있는지를 깨닫는다.
타인은 나를 괴롭히기도 하지만,그 불편한 시선을 통해 나를 보여준다.
지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에도, 우리는 그 속에서 조금씩 나 자신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전쟁이 끝난 폐허 속, 포로로 잡힌 피아니스트에게
독일 장교가 묻는다.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인가?”
그는 대답 대신 피아노 앞에 앉는다.
그리고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연주한다.
무너진 건물 속에 울려 퍼지는 음악. 적과 포로, 그 경계가 잠시 사라진다.
둘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순간 같은 인간으로 존재한다.
이해가 아닌 공명으로 이어지는 순간, 그 짧은 침묵 속에서 타인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타인의 말에 상처받고, 오해 속에서 멀어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모든 관계가 우리를 다듬고 있다.
타인은 나를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완성시
키는 또 하나의 불완전한 나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결함이 부딪히며 조금씩 모양을 맞춰가는 관계, 그 불완전함이 인간다움이다.
우리는 여전히 자주 실망하고 지쳐 버린다.
그러나 또 누군가를 만난다.
그 만남 속에서, 우리는 다시 나를 배운다.
마르쿠스의 말처럼, 오늘 우리가 만날 사람들은 여전히 오만하고 무례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안다.
그들 덕분에 우리 자신을 더 분명히 본다는 것을.
타인은 지옥이 아니다.
타인은 나를 완성시키는 또 하나의 불완전한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