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초록 Jul 06. 2022

식물과의 대화

식물이 원하는 건

  아침의 고요한 시간이 찾아오면 그날의 기분을 한껏 담은 음악을 틀고 커피 한 잔을 들고 작은 정원을 둘러본다. 식물과의 무언의 대화의 시간이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나 물어보면  마큘라타는 돌돌 말았던 새잎을 펴면서 물방울무늬 무늬의 고른 분포를 슬그머니 보여주고 코니오그램은 여리디 여린 고사리 촉을 하나 올리며 인사를 한다.                

코니오그램의 진한 잎맥의 인사를 받으면 하루가 선명해진다

  잘 자라기만 하면 너무 좋지만 가끔 잎이 지거나 새잎을 내어주지 않는다거나 하면 그때부터는 진짜 대화가 필요하다. 블루스타펀은 도통 새잎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연유가 무엇인지 몰라 물을 많이 주어 보기도 하고 흙도 새로이 채워주었는데 그래도 소식이 없어 마지막으로 분갈이를 해주었다. 그 전에도 화분이 길쭉하게 크긴 했는데 이번에 보니 러너들이 위쪽으로 꽉 차서 입구가 넓은 분으로 바꾸어주니 제법 굵은 새이 나왔다. 그전까지는 그저 갸웃거리며 보아오던 블루스타펀을 이제 오늘은 웃으며 바라보아 줄 수 있다. 블루스타펀도 바람에 잎을 흔들거리며 잔뜩 신난 표정이다.

작은 화분에서도 잘 자라고 있었던 블루스타펀

  벨벳 싱고니움도 자꾸만 잎이 지길래 계속 잎을 떼어주기만 하고 물이 말라서 그런가 싶어 물도 자주 주고 병충해 때문인가 싶어 잎 뒷면을 수시로 체크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뿌리를 한번들었는데 뿌리가 꽉 차 있어서 흙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큰 분에 흙도 채워 넣고 분갈이를 해주니 새잎이 여러 군데서 나온다.

벨벳싱고니움 포함 싱고니움들은 참 싱그럽다

 식물의 언어를 나름 잘 알아듣는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도통 모를 때가 있다.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해보면 식물도 대답을 해준다. 정답이 있긴 한데 그 과정은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아닌 것을 제거하는 데 있다. 물을 주었는데도 새잎이 나오지 않으면 그건 아닌 것이고 병충해인 줄 알고 약을 뿌려주었는대도 아무 변화가 없으면 그것도 아니다. 그렇게 실패하면서 경험을 쌓아간다. 많은 실패가 쌓이면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경험으로 쌓인다.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그 실패는 모조리 다 성공이다. 내가 피해야 할 것들을 알게 해 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물이 죽음으로 가는 가능성들을 줄여갔기에 내가 그 식물을 살릴 수 있는 길로 조금 더 가까이 간 것이다.  무언가 했는데 소용이 없었을 때 나는 더 기뻐할 수 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이다.

  아끼는 사람이 나의 행동으로 인해 화를 냈다고 하자 그때 나는 기꺼이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다음부터 피해 갈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과 가까이할 수 있는 경험을 하나 쌓은 것이다.

   가끔은 식물이 목이 말라요 뿌리가 꽉 찼어요라고 친절하게 말을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도 그다지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정확하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도 자기가 정확하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식물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다

  식물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너에 관한 것들은 무엇이든 좋다. 싫은 것도 좋은 것도 무엇이든 다 좋다. 너에 대한 모든 경험들을 쌓아가고 싶다. 그리하여 너와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해본다.

  

이전 14화 식물러의 책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