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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Mar 02. 2024

아빠와 딸

일상상상 S#1


S#1. 2024년 오클랜드


(금요일 아침)

‘딸아이는 유치원을 가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엄마는 회사로 출근을 했겠지?’


4살 정도로 보이는 딸아이가 아빠와 둘이 손을 잡고 쇼핑몰에 들어섰다. 위아래 내복차림인 걸 보니 집에서 일어난 후 계속 뒹굴거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아빠 손에 이끌려 나왔나 보다.


이제 막 입구로 들어왔는데, 딸이 아빠에게 뭐라고 속삭이자 아빠가 딸을 번쩍 안아 들고 걸어가기 시작한다. 아빠가 딸을 안아주는 것은 국룰이자 당연한 일상.


S#2. 1988년 서울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저녁시간임에도 날이 밝았던 걸 보면 아마 봄이나 여름 저녁이지 않았나 싶다.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놀이터와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그러다 저녁시간이 되면 옆집, 앞집 엄마들이 동네로 나와 아이 이름을 부르며 찾기 시작한다.


00야~! 저녁 먹어~


그러면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집으로 헤어졌다. 옛날에는 그런 게 일상이었다.


우리 엄마 역시 저녁이 준비되면 우리를 찾았고, 엄마와 함께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퇴근하고 돌아오실 아빠를 마중 나가는 것이 저녁 일과였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조금 안 맞으면 저 멀리서 버스에서 내린 아빠가 걸어오신다. 언니와 나는 아빠가 보이는 순간부터 경주마가 경기를 시작하듯 아빠만 바라보며 전력질주로 달려가 안겼다. 그리고 아빠는 집 앞에 도착하면 우리 집이 있는 5층까지 언니와 나를 안고 올라가셨다.


아빠 힘들어~내려와


뒤 따라 올라오던 엄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아빠에게 푹 안겨 올라왔다. 그게 우리 가족의 평범하고도 행복한 일상이었다.



S#3. 2017년 서울


남편의 퇴근 메시지를 받으면 집에서 놀던 아이와 집 앞 놀이터로 슬금슬금 나선다. 아이는 여전히 내복차림이지만, 손잡이가 달린 세발자전거를 타거나 손을 잡고 나간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저녁 먹으라는 엄마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는 시대이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거나, 엄마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곁에 있으니 말이다.


멀리서 지하철 역에서 올라오는 남편의 모습이 보이고, 딸아이는 아빠를 향해 뒤뚱거리며 뛰어간다. 그리고 남편은 말없이 아이를 번쩍 안아준다. 잘 걷던, 잘 뛰던 아이는 바닥에 발을 내려놓을 생각조차 안 하고, 남편 역시 아이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고, 집을 향해 돌아올 때쯤 내가 아이에게 한마디 한다.


아빠 힘들어~이제 내려와


여전히 그 둘은 내 말을 듣지 않았지만, 나는 그 뒷모습에서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린다.


이제 그 작던 딸아이가 훌쩍 커 아빠에게 번쩍 안기기 힘들 때가 되자 나는 지나가던 낯선 사람들에게서 그 옛날 나의 모습, 그리고 딸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빠와 딸 사이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함. 내 마음은 그게 뭔지 알고 있다.


S#4. 2024년 오클랜드


(아이를 안은 아빠의 모습은 저 멀리 조금씩 작아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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