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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축복이야 Jun 10. 2024

부재중 전화

일기(日記)  20240610


휴대폰에 부재중 메시지가 떴다.

친구는 내게 전화를 해 통화연결음만 계속 듣다가 끊었을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 편이다.

함께 있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이다.

자주 통화하는 이의 이름이 뜨면 곧 다시 하면 되고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면 마음을 다해 얘기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통화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데 섣불리 받을 수 없고

받아서 나는 지금 통화를 할 수 없다고 전하기는 무척 난감한 일이다. 그러니 그냥 벨이 울려도 전화기를 뒤집어 두며 나중을 기약한다.


스무 살 새내기 때 만난 나의 절친 넘버 3 안에 드는 친구가 있다.

가까이 살지 않아 자주 만날 수는 없는 내 친구.

부재중 전화에 친구의 이름이 남겨져 있었다.

잘 지내고 있냐는 안부를 묻고 별일 없제?라고 말했을 것이다.

통화할 상황이 아니어서 곧 전화하겠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그러기를 몇 번.

나는 ''이라는 말은 쓰지 말았어야 했다.


친구와 통화는 안정된 곳에서 긴 호흡으로 해야 제맛이다.

몇 마디 안 한 것 같아도 시간은 훌쩍 지나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확보했을 때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친구뿐 아니라 엄마·아빠에게 안부 전화도 자주 하지 못했다. 마음의 짐처럼 계속 불편하고 해야지 하는 마음이 짓눌러도 쉽게 전화기를 들 수 없었다.

한껏 밝은 목소리를 낼 자신도 없고

소소한 얘기에 맞장구치며 재미나게 들을 자신도 없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전화를 쉽게 하는 편은 아니기도 했다.

나를 아는 사람은 의아하게 여길지 모르나, 그렇다.

나에게 전화한다는 것은 큰 맘을 먹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게 더 힘들었다.

전화해서 넋두리할 기운도 없었기 때문일까.


친구의 부재중이 계속 마음을 누르고

'아이고, 우리 딸 목소리 오래간만이네.' 할 아빠도,

아빠 병원 예약을 확인해 달라고 부탁한 엄마도

내 전화를 기다릴 텐데 계속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그 일이 너무도 힘들다.


오늘 오전은 그 일을 모두 해야지 결심했다.

먼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직도 좋아하는지는 모를 BTS의 노래가 들렸고 친구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 사이 대학병원에 전화를 두어 통 해서 엄마가 부탁한 일을 끝냈다.

가라앉은 목소리가 티 나지 않을지 내심 신경 쓰며 엄마에게 결과를 전하고 좀 풀린 상태로 아빠에게 평소처럼 너스레를 떨며 얘기를 하고 끊었다.

숙제를 끝낸 것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


한참 후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사이 내 속으로 잠겨버린지라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친구야~ 잘 있었나?"

익숙한 이름을 부르며 한 마디를 했다.

그런데 와락 눈물을 쏟는다. 전화기가 순간 젖는다.

별일은 없는데 내 목소리에 눈물이 난다며 친구가 운다.

예전 같으면 무슨 일이 있나 덜컹했을 텐데.

마음이 울렁거리고 찌르르하지만

나도 친구도 낮은 목소리로 그래…. 그래…. 그 말만 한다.

더 할 말도 덜어낼 말도 없다.

여느 날처럼 이유 없이 깔깔대며 별말 없는 대화에 한 시간이 훌쩍하던 때가 아주 먼 옛날 얘기같이 느껴졌다.

사는 게 다 그렇지…. 한 마디와

그래…. 그래…. 이 한마디에 통화는 끝났다.

그러고는 친구는 눈물은 접어두고 학원을 정돈하고 아이들을 맞이했을 테지.

친구의 눈물은 담아두고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간 것처럼.


친구야..

다음에는 누구와 있건 어디에 있건 부재중 메시지가 뜨지 않게 해 볼게.

그리고 한껏 밝은 목소리로 네 안부도 묻고 깔깔거릴게.

그동안 별일 없이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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