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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 Oct 28. 2022

가족이라는 든든한 에어백

베란다 텃밭에서 수확한 새싹 샐러드



작년 여름 베란다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상추와 깻잎을 비롯해 다양한 쌈 채소 씨앗을 뿌리고(파종) 키워 먹었다. 농사를 지어보니 새삼 알겠다. 진~짜 겁나게 힘들다는 사실을. 채소를 먹을 때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있지만, 초보 농부가 되고 보니 식재료를 더욱 귀하게 여긴다.     






쌈채소가 가득했던 베란다 텃밭~*



상추 한 장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지도 배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가며 베란다로 간다. 오늘은 얼마나 자랐을까? 새싹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면 어찌나 이쁜지. 물을 주고 햇볕과 바람만 있으면 잘 자라주는 채소가 신기하고 고마웠다. 농사지을 맛이 났다.


딸에게 직접 키운 채소를 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텃밭. 올봄까지는 뿌듯하게 키워 먹었는데 이번 여름에 뿌리 파리 때문에 농사가 초토화되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뒷머리 잡고 기절하겠다. ‘초파리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초파리 너무 무섭다. 습하고 더운 날씨에 물을 너무 자주 준 탓이기도 하고,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낳은 과욕 때문이기도 하다.


텃밭 잘 가꾸는 분들 정말 대단하다. 나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새싹만큼은 무탈하게 잘 키워 먹고 있다. 어린잎이라도 무럭무럭 자라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베란다 텃밭에서 직접 수확한 레드비트, 브로콜리, 청경채 새싹



사진에 담긴 새싹은 레드비트와 브로콜리, 청경채다. 새싹은 따뜻한 봄여름 가을까지는 쑥쑥 자란다. 파종(논과 밭에 씨앗을 뿌리는 일) 하고 일주일 후면 먹을 수 있다. 겨울에는 기온이 낮아 3배 정도 더디게 자란다. 이번 겨울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딸아이 샐러드 그릇에 담긴 갓 수확한 새싹을 담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내가 농사지은 채소 뿌듯뿌듯’ (뭐래~)     

  

새싹이 어느 정도 자라서 뽑으려 하면 뿌리(새싹)가 흙을 꽉 움켜쥐고 있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새삼 놀랐다. 나는 마치 흙이 품고 있던 아기(씨앗)를 놓지 않으려는 어미처럼 느껴졌다.     



올리브오일(엑스트라버진), 레몬즙, 들깨와 참깨 가루를 넣은 샐러드



고작(?) 며칠인데. 씨앗을 품은 흙이 뿌리(새싹 뿌리)를 놓지 않으려는 듯 느껴진 모습을 보며 딸과 아들을 생각했다. 열 달을 내 뱃속에서 함께 숨 쉬고 살았던 내 심장과도 같은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벌써 자라 성인이 되어 친구가 되어 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엄마가 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내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 대부분이 딸에 관한 내용이지만, 딸 못지않게 아들 또한 내 심장과도 같다. 비록 아픈 딸을 위해 내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지만, 아들을 향한 사랑과 마음을 그 시간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아들이 보내준 쌍무지개 (겁나 이뻐서 기절~^^)



띵동! 아들 문자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발견한 예쁘고 신기한 쌍무지개라며 사진을 보냈다. 쌍무지개는 처음 본다. 아들은 이렇게 종종 예쁜 자연을 찍어 보내주곤 한다.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나에겐 값진 선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되면 음악도 공유한다. 그 문자에 헤벌쭉 웃으며 아들이 보내온 음악에 푹 빠져 허우적댄다. 아픈 곳은 없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과묵하지만 살갑게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 같은 아들이 마이 고맙다~.    


욕심(?)을 조금 내자면 아들이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연인과 건강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 바람이다. 아들만 행복하면 난 그것으로 이미 행복하니까.



            옥빛 하늘과 바다를 닮은 하늘이 참 신비롭다             



씨앗을 며칠 품고 있던 흙이 자신이 낳은 새끼인 것처럼 뿌리를 움켜쥔 것이 내겐 단순하게 보이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토록 애가 타듯 뿌리를 놓지 않으려는 것이 이별을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 엄마는 더 그렇다. 아이가 아프면 대신 아프고 싶고, 아이가 행복하면 엄마는 더 행복하다.      



11년이란 세월 동안 참 많이도 힘들었다


수많은 위기도 있었지만, 가족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었기에 딸과 나는 무사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딸은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루푸스(희귀난치성질환)를 원망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자신(딸)과 병(루푸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노력한다.      


가보지 않은 길이나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던 나는 겁쟁이였다. 딸이 나를 성장시켜준 스승이다. 내 머리와 마음이 도태되지 않도록 적절한 언어를 버무려 쓰디쓴 말도 내 귀에 넣어주곤 한다. 격려와 응원을 아낌없이 내주는 딸과 아들은 나의 귀인이다.


자신을 믿고 가보지 않은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딸을 보며 배운다. 시작하지 않으면 변화도 없고 성장도 없는데 나는 미리 겁먹고 시작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이젠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시간만 잡아먹는 모래시계 안에 갇힌 모래가 되지 않기로 했다. 몸만 어른이 아니라 마음도 어른이 되어야 진짜 어른이다. 나는 그런 어른이고 싶다. 진짜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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