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아이 옷 정리, 아빠가 배우는 계절 감각
아내가 아이 옷을 계절마다 정리할 때마다
나는 조용히 그 옆을 지나갔다.
낡은 옷, 작아진 옷, 여름 반팔, 가을 긴팔,
겹겹이 쌓인 아이 옷 더미 앞에서
아내는 하나하나 접고, 구분하고, 따로 담았다.
그 옷들은 아이들이 자란 증거였다.
그런데 나는 그걸 전혀 몰랐다.
정확히 말하면, 보지 못했다.
아이가 작년에 입던 점퍼가 왜 안 맞는지를
‘아, 키가 컸구나’ 정도로만 이해했지,
그 옷이 얼마나 자주 세탁됐고,
무릎이 얼마나 닳았는지는 몰랐다.
그리고 그 옷을 접으며
아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어느 날, 아내가 말없이 아이 옷장을 열어두었다.
나는 무심코 들여다봤다가
그 안에 정리된 옷들에 잠시 멈춰 섰다.
색상별로 접힌 티셔츠,
계절별로 정리된 바지,
그리고 잘 보이는 위치에 놓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옷.
그 안에는 ‘정리’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배려와 감각이 있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말했다.
“이번 옷 정리, 내가 같이 해볼게.”
막상 시작하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이 옷이 여름용인지 간절기용인지
직접 입어보지 않으면 도저히 모르겠는 재질.
‘반팔인데 기모가 있는 티셔츠’는 어느 계절에 속해야 하는가?
게다가 딸과 아들의 옷은 전혀 달랐다.
딸은 레깅스를 많이 입고,
아들은 운동복이나 후드 집업을 더 좋아했다.
같은 크기의 옷이어도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다르고,
몇 번 세탁했느냐에 따라 늘어난 것도 줄어든 것도 있었다.
나는 옷을 접는 것보다
‘이 옷을 앞으로도 입을지, 다른 계절에 쓸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데 훨씬 오래 걸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옷 정리가 아니라
아이의 계절을 읽는 일이라는 것을.
겨울철 스웨터의 소매 끝에는
아들의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고,
봄에 입던 딸의 원피스에는
놀이공원에서 흘린 솜사탕이 굳어 있었다.
그 모든 옷에는
그 계절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나는 지금
아이의 성장과 함께 계절을 배우는 중이었다.
가끔은 아내가 묻는다.
“이 옷 버릴까, 둘째 물려줄까?”
그 질문에 나는 이제
“음… 이건 둘째한테 입히긴 좀 낡았어”
혹은
“이건 너무 예뻤잖아. 한 번 더 입히자”
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나눈 아빠로서
기억을 정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옷 정리는 계절의 마침표이자
가족의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의식 같았다.
봄 옷을 넣고 여름옷을 꺼내며,
나는 우리 아이가 조금 더 자랐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아내가 해왔던 ‘계절 감각’이라는 일을
조금씩 내 몸에 익히고 있다는 것도.
어떤 날은
딸이 말한다.
“아빠, 이번 가을에는
노란색 스웨터 입을 거야.”
나는 이제
그 말이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계절을 준비하는 아이의 마음이라는 걸 안다.
아빠는 날씨보다 느리게 계절을 읽는다.
하지만 아이의 옷장을 여는 순간,
그 계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사계절은 아이에게만 오지 않는다.
부모에게도 오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나는 늘 날씨를 스마트폰으로만 확인했다.
오늘 최고 기온, 최저 기온, 강수 확률.
그 정보들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날씨보다 더 정확한 계절 신호를
아이의 옷장 안에서 느끼게 되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
소매가 짧아진 후드티,
발등이 다 드러난 양말.
그건 날씨가 변했다는 통보가 아니라,
아이의 하루가 달라졌다는 증거였다.
옷을 정리하다가
가끔은 한 벌의 옷을 오래 쳐다보게 된다.
유난히 자주 입었던 노란 티셔츠,
딸이 유치원에서 그 옷 입고
"오늘은 해님 같지?"라고 말했던 날.
그 옷을 손에 들면
그날의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아내가 그 옷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아이들은 자꾸 자란다.
그건 참 놀랍고도 당황스러운 일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맞았던 바지가
엉덩이에서 걸리고,
발목이 툭 튀어나온다.
“이제 이건 작아졌네.”
내가 말하면,
아이도 고개를 끄덕인다.
"응, 나 이제 7살이니까."
그 말에 나는
그저 웃어넘기지 못했다.
아이 옷을 접는 일이 익숙해질수록,
나는 이 일이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기억을 분류하는 작업임을 깨닫는다.
버릴 옷, 물려줄 옷, 보관할 옷.
그 분류 기준에는
사이즈보다 감정의 잔상이 더 크게 작용한다.
어떤 옷은 해졌지만
절대 버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옷은
어떤 하루의 웃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아이 옷장을 오래 들여다볼 때,
나는 가끔 물었다.
“무슨 생각해?”
아내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다 컸구나, 싶어서.”
이제는 그 말이
단순한 감탄이 아니라
작은 이별의 감정이라는 걸 이해한다.
아이의 옷이 작아졌다는 말은
그만큼 또 한 계절이 지나갔다는 뜻이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한 조각이
이제 추억으로 넘어간다는 신호이기도 하니까.
나는 이제 옷을 접으며
계절을 정리하고,
아이를 이해하며,
내가 몰랐던 가족의 감정을 배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아빠가 되기를 바란다.
옷이 작아졌다는 건
단지 키가 컸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시간도, 함께 자라나고 있다는 뜻이다.
아이 옷을 정리하며 나는 배웠다.
우리 집의 계절은 달력보다
아이가 자라는 속도로 먼저 찾아온다는 것을.
〈6화. 장난감 정리, 대화의 시작이 되다〉
어지러운 방 안에서 시작된 아주 작은 대화.
아이의 세상을 이해하는 첫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