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말이 많은 사람, 말이 없는 사람 -같은 집, 다른 대화 온도-
“왜 아무 말도 안 해?”
아내가 조용히 물었다.
나는 그냥,
정말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말하고, 보고, 듣고, 기운이 빠졌고
그냥 조용히 밥이나 먹고 싶었다.
그런데 그 침묵이
아내에게는 외면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우린 MBTI 성격으로 따지면
내향형(I) 남편과 외향형(E) 아내다.
혼자 있어야 회복되는 사람과,
누군가와 이야기해야 살아나는 사람.
이 차이는
같은 공간에서 완전히 다른 에너지를 만든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나는 말수가 줄어든다.
내겐 그 시간이 충전이다.
그런데 아내는 그때부터 말이 많아진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 뉴스에서 본 이야기,
아이와 나눈 대화, 동네에서 들은 이야기까지
쉴 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낸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지?"
"그걸 꼭 지금 다 해야 하나?"
가끔은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게
하루 종일 회의보다 더 피곤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무표정해졌고,
가끔은 대답도 안 하게 됐다.
그리고 돌아온 건
"요즘엔 나한테 관심이 없어졌지?"
"같이 살아도 외로운 기분이야."
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날,
한참을 혼자 생각했다.
정말 나는
아내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
아니었다.
나는 단지 말이 적은 사람일 뿐이었다.
혼자 생각하고, 마음으로 공감하고,
굳이 다 말로 꺼내지 않아도
전달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달랐다.
그 사람은,
말로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오늘 어땠어?"
"그랬구나."
"와, 진짜 그런 일이 있었어?"
이런 짧은 반응 한 마디에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
나는
내가 침묵을 지키는 동안
그 사람은 혼자 소외감에 시달렸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날 이후,
나는 퇴근 후 10분,
무조건 아내와 짧은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정말 별일 없어도
"오늘 좀 정신없었어."
"아까 네가 했던 얘기 생각나더라."
그런 말 한마디라도 먼저 꺼내봤다.
아내는 놀랍게도,
내가 이야기하자 말수가 줄었다.
서운한 기색도 사라졌다.
내가 말을 꺼낸 그 짧은 순간들이
그 사람에겐 큰 위로였던 거다.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먼저 마음을 여는 제스처가
그 사람에겐 사랑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향형이다.
많은 말을 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기 어렵다는 걸.
말을 안 해서 무심한 사람이 아니라,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는 사람이었다는 걸
내가 먼저 설명해야 했다.
사랑은 말의 양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말의 속도를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속도에
내가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때,
우린 같은 속도로 걸을 수 있다.
오늘의 질문
– 나는 외향형일까, 내향형일까?
– 상대가 말이 많다고 느낄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 오늘, 내가 먼저 건넬 수 있는 한 문장은 무엇일까요?
다음 이야기 예고
4편. 정리왕과 즉흥왕
계획형 남편과 인식형 아내, 주말 스케줄 하나로 시작된 대화는
결국 부부의 삶의 태도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왜 이렇게 ‘계획’을 다르게 받아들일까?
MBTI로 다시 사랑할 마음이 생기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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