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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링 Oct 25. 2024

우리 아이에게

중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마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아이는 가방 속에서 꾸깃꾸깃한 성적표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손을 가방에 쑤욱 깊게 넣어 노란색 종이도 꺼냈다.


"아앗. 구겨졌다. 구겨지면 안 된다고 선생님께서 말했는데..."


10번은 더 접은 성적표를 나에게 싹싹 펴서 주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작은 주사위만했던 성적표 종이를 펴고 펴니 A4만 하게 되었다. 

중학교땐 그 누구에게도 성적표를 보여주기 싫은데...


"보여주기 싫으면 안 보여줘도 돼."

"아니야. 못한 건 다음에 잘하면 되지 뭐. 나는 당당해."

"엄마는 성적표 보여주기 싫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넌 그렇지 않은가 봐."


나는 가볍게 이 상황을 넘어가고 싶었던 것 같다.


성적표와 함께 나에게 쥐어진 노란색 편지지

담임선생님께서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달라는 글이 있었다. 

초에 도덕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학부모말을 구글폼으로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모바일로 가볍게 써서 보냈는데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들은 나의(엄마) 글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던 것만 기억난다. 뭐라고 썼던 거지?  그 글을 남겨두지 않아서 참 아쉽다.


오늘의 편지는 먼 훗날을 위해 남겨본다. 

편지글은 아래와 같다.


(아들의 이름)야 


중간고사 공부한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면서

한켠으론 뛰어놀아야 하는 시기에 의자에만 앉혀놓은 거 같아 안쓰럽고

이런 현실이 안타깝고 그렇단다. 이 시기에는 네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걸 하면 네가 잘하는지 행복을 느끼는지, 무엇을 하면 슬퍼지는지를 알아가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단다.

학교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겠다만 남의(많은) 생각을 배울 수 있는 건 책이 좋더라.

물론 요새는 다양한 사람들이 유튜브에 자신을 노출시켜 많은 걸 알려주지만

알고리즘에 갇히는 순간 철창 안의 새가 되는 것 같더라.

학교 다니느라 학원 다니느라 시간이 부족해 책을 가까이할 시간이 부족할지라도

조금만 시간을 내어 책을 읽으렴. 독서는 네가 가장 힘들고 고민이 되는 순간에 너에게 길이 되어주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될 거야. 그러다 보면 네가 필요할 때 공부도 하게 되지 않을까?

아들아. 엄마가 많이 사랑해. 항상 건강하자.


-엄마가-



편지글을 써놓고 내가 너무 이상주의자인가, 싶었지만 

세 아이들을 키워보면서 느끼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이들의 시간을 기다려주는 일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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