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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주말의 공원

by 이븐도




사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건 사람 구경이다. 정말이다.

야외의 사람들은 더 그렇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얼굴이 시뻘건 토마토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 못 멈춰서 뛰었다. 기차 시간 맞추려면 이 코스를 40분 안에는 다 끝내야 했는데 잘 안 됐다. 그런데 어떡해. 기분이 개떡같은 걸. 어차피 더 잘래야 잘 수도 없고 그만큼을 더 잔다고 기분이 나아지지도 않는걸. 그럼 해야지, 달리기. 낮에 안 뛰는데, 더운데. 어쩌라고. 이렇게 집에 갈래? 집에 가서 또 짜증내고 잔뜩 후회할래? 피곤하다고 핑계 대면서?




그건 나도 싫었다. 개같은 인생. 근데 이 말도 좀 갱신될 필요가 있다. 이 동네 개들 상팔자인데. 진짜로.

요새 다 그렇지 않나?






몇 달간 공원을 돌며 느낀 건 공원을 도는 사람 숫자만큼이나 개가 많다는 것이다. 고양이는 한 번을 못 봤다. 전부 개다. 강아지, 개, 개, 또 강아지. 잘 몰라서 나열은 할 수 없지만 하여간 종도 다양하다.


어두운 시간대. 편한 옷의 사람들. 목줄을 넘어서 나에게 이빨을 드러내거나 코를 들이대는 강아지들. 발목 아래 존재하는 생명체에 기겁하듯이 놀라며 지나가는 나를 보는 그 미안하고 안 미안하면서 당황한 눈빛. 호숫가의 야장. 한 시, 두 시 할 거 없이 커다란 스크린으로 나오고 있는 야구나 해외축구 중계. 데이트의 마지막을 붙들고 있는 커플들, 커플이 될 사람들, 되고 싶으나 안 될 것 같은 남녀의 조합, 혼자 뛰는 사람들, 같이 뛰는 사람들. 그리고 개.. 진짜 진짜 많은 개. 안 많은 줄 알았으나 사람 옆의 대각선으로 늘어진 그 선을 따라가면 어김없이 연결된 그 친구들.




주말 한낮이었다. 큰일이 난 것 같았다. 벌써 더웠다. 5월 31일. 장난해? 내일이 6월이니까 봐 준다. 그래도 여름 같은 달이잖아. 아직은 명목상 5월이지만 그게 그거야. 근데 정말 당장부터 이러면 이제는 뭘 입고 뛰어야 하나.


즐거운 달리기의 시절은 갔다. 이제는 뛰고 있는 나 자신을 먼저 부숴 버리고 싶은 울트라 멘탈릭 챌린지 러닝-의 시기만이 남았다. 진짜 큰일이다. 작년 9월부터 야외 뜀박질을 시작한 나는 그 때도, 지금은 더우니 나가지 말자, 하는 생각을 몇 번 했었다. 진짜는 아직 겪지도 않은 것이다. 어떡하지? 6월, 7월, 8월.. 진짜 어떡하냐고.

어느 패딩이 좀 덜 답답하려나 한껏 머리를 굴리다 결국은 미끄럽게 언 길에 안절부절하며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유사 펭귄 산책을 하던 한겨울보다는 나으려나? 모르겠지.

근데 한 가지는 알았다. 덥다는 것. 개덥다는 것. 걸쳤던 바람막이를 이제 벗어야 했다.




근데 그걸 벗으면 꼬라지가 상당히 웃긴다. 건강해 보이는 어깨를 가진 탓에 상당히 운동에 능한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장점 아닐까? 아니지. 난 실제로 뛰니까. 빈약하게 뛰니까.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게 느껴져서 좀 슬프다.

저 생긴 것만큼 못 달려요, 쪽팔리니까 그만 보세요. 쪼렙이라고요, 항상. 그냥 보지 마세요. 슬슬 기력 딸려서 이쯤 쉬어야 되는데 쳐다보시니까 아닌 척 계속 뛰어야 하잖아요.






밤에는 개가 발에 채일까 봐 조심.. 하지는 않았는데 대낮에는 애들이 채일까 조심해야 했다. 진짜 사람이 많았다.

애들이 있다? 이 큰 공원에? 그럼 어른들도 있겠지. 그 어른은 보통 한 명이 아니었고 애들도 한 명이 아니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애를 키운다는 건 대낮에 애들을 이런 곳에 데리고 와야 한다는 거구나. 이 세미 땡볕에.


중간중간 얼마나 보챌까. 엄마 나 배고파, 집에 언제 가, 목말라. 물 말고 음료수, 홈런볼 사 줘, 밥 잘 먹을게요, 나 다리 아파. 또 집에 언제 가. 뭐 그런 말의 반복을 뚫고, 사실은 그들보다 더 집으로 들어가 드러눕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고 감행해야 하는 외출.




나한테는 매번 보라색 분홍색 초록색 노란색으로 미감 다 떨궈진 조명만 쏘는 다리였던 곳이 소풍 장소가 되어 있었다. 어설픈 바람이 뜨뜻하게 부는 곳에서 그들은 굴하지 않고 배드민턴을 쳤다. 나는 야외의 배드민턴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건 배드민턴이 아니라 코앞 또는 저 멀리 어처구니 없는 곳에 떨어진 셔틀콕을 끝도 없이 주워오는 훈련이나 다름없으니까. 맞잖아.

아빠도, 엄마도 나를 저렇게 키웠구나. 재밌으실까? 그래. 애들 보는 게 재밌겠지. 씽씽카 타고 도는 자기 아들을 살아 움직이는 액션캠이 되어 같이 다다다다 뛰며 찍는 저 아저씨처럼. 그리고 그 둘을 찍는 아마 엄마일 사람. 아, 신도시의 아름답고 윤택한 주말 풍경.






더워서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사유는 알 수 없으나 이 복작하고 평화롭고 안온한 주말의 낮에 나처럼 씩씩거리며 혼자 극한을 사는 것처럼 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무슨 패치 같은 걸 붙인 채 땀에 젖은 민소매를 입고. 저 사람들도 집으로 가면 시원한 물로 씻고 늘어져서 탕수육 먹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원래 인생은 이렇게 평화로운 건데.


땀 안 나는 뽀송한 몸으로 살랑거리고 부드러운 옷을 입고 가만히 걸으면서 깔깔 웃고 사랑에 빠지거나 빠진 눈으로 아메리카노나 알록달록한 스무디를 빨아먹는 거. 그 광경 속에 서 있자니 혼자 뛰는 모든 사람들이 잠시 우스워졌다. 물론 나도. 뭐 그렇게까지 애를 쓰면서 이러고들 계신지.




봐요, 그렇게 누군가를 위한 복수를 대신 해야 하는 것처럼 뛰어야만 풀리는 게 인생이 아니래잖아요. 누가? 그곳의 모든 천천히 걷고 도시락을 까먹고 나란히 벤치에 앉아 비눗방울을 부는 사람들이. 그 장면들이 나한테 그렇게 말하던데? 다 똑같이 하는 돈벌이에서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고 그걸 조용히 못 풀어 기어이 이 더위에 훅훅 숨을 쉬고 있는 나를 보고. 달리는 다른 사람들? 그럼 빼자. 그 사람들은 행복해서 그러고들 있는 거래.






낮이라 그런가 보이는 게 많았고 주말이라 그 보이는 것들이 더더 많았다. 그들도 나를 봤고 나도 그들을 봤다. 도처에 구경꾼들이 앉아 있어서 게으르게 뛸 수가 없었다, 는 사실 반은 구라고. 기차시간 맞추려면 진짜 죽을 것처럼 뛰어야 했다. 목적 달성이지. 뭐 때문에 그렇게 기분이 박살이었는지 기억도 안 났다.


사실은 나이트 끝나고 잠을 세 시간만 자서일수도. 그리고 그렇게 못 자고 뛰는 탓에 다리가 다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달렸다. 이 말끔한 나들이 차림의 사람들 사이에서 우중충한 운동복이나 입고 척척 걷는 것도 웃기잖아. 셀프로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노는 날에 젊은 사람들은 다 서울로 놀러가 버려서 여긴 이미 결혼한 것 같은 남녀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인싸들. 어떻게 햇빛 쨍한 날은 잘 골라서 유부초밥도 먹고 김밥도 먹고 닭강정도 먹고 꽃다발도 들고 다니네? 좋겠다, 야. 나도 하나만, 하고 싶었다. 했다. 속으로.






한 바퀴를 다 돌아가는 지점에서는 누군가 공연을 하고 있었고 거긴 진짜 피크닉 장소였다. 난 뭐 했지, 저런 것도 안 하고. 근데 이제 나한테 여기는 그냥 뛰어야 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신기했다. 항상 텅 비어 있거나 벚꽃 핀 날에나 사람들이 앉아 있던 곳인데 이렇게들 잔뜩 행복해하고 있다니. 나 빼고. 저기요, 니들보다 내가 여기 더 많이 왔을걸? 주인은 나야. 안 물어봤다고? 알아요.


없는 꽁지가 빠지게 뛰는 와중에 많은 것들을 봐서 좋았다. 사람들이 입은 옷, 표정, 들고 있는 마실 것, 과자, 꽃, 내 맘대로 추측하는 그 모든 것들의 기류, 같은 시간. 다른 활동.

사실 별 것도 아니잖아. 나도 하면 돼. 병원에 싸다니는 도시락통에 좀 류가 다른 음식들을 넣어 와서 먹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러느니 그냥 아, 집가서 먹어. 하겠지. 귀찮게 걸어서 그건 또 어떻게 거기까지 들고 가, 생각하면서. 그래서 그 주말의 공원이 재밌었다. 실시간으로 라이브 스트리밍 중인 휴일을 보내는 사람들. 실상 인생이 어떨지는 알 수도 없고 알 일도 없지만, 가능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장면들.


아이스 아메리카노, 도넛, 야장의 치킨, 생맥과 닭꼬치, 씽씽카, 그리고. 뭐. 선거 홍보인단, 크록스, 크록스를 신고 뛰는 애들, 시폰 스커트, 바스락거리는 치마, 은색 운동화, 볼캡, 그리고 붙는 티셔츠의 조합, 마뗑킴 가방, 가방에 달린 키링, 맨정신으로 포토이즘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안 아픈 애들, 앵무새. 빨간색. 파란색의 앵무새. 그 앵무새들을 어깨에 얹고 대머리에 쓴 모자 아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걷던 아저씨. 그리고 그걸 어떻게든 덜 불법적인 선에서 찍어 보고 싶었으나 못 찍을 것 같아 같이 따라 걸은 나.




정말 알 수 없고 다시 마주칠 일도 없는 사람들의 즐거워 보이는 순간들을 잔뜩 구경하고 왔다. 그게 뭐 어떻다는 생각을 할 것도 없이 찬물로 초광속 샤워를 하고 빈 반찬통으로 덜그덕거리는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에 올라야 했지만. 나와 달라 보이지도 사실은 다를 것도 없을 사람들. 한 꺼풀 벗기면 다 똑같은 만큼 불행할 수도 울적할 수도 뭣 같을 수도 있는 그 사람들. 그 누가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같은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걸 보는 것보다, 그런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쳐다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행복과 평안을 학습할 수 있는 시간.


그러니까, 뭘 원하는지도 모를 땐 일단 봐야 안다고. 그런 것 같다니까. 휘어진 눈꼬리, 사랑일 것 같은 게 담겼을 눈과 입매, 도망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서서 걷는 누군가의 장면. 햇빛, 웃음, 달달한 것, 시원한 것. 가벼운 것. 또 웃음. 쓸데없는 대화와 농담.






다 아는 걸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스스로 배워야 한다. 별 거 아니라고. 그들을 보고 지나친 내 인생의 깊이나 속은 엉망일지 모르는 그 낮의 사람들의 것이나. 다 그런 걸 알아서 챙겨먹고 사는 걸지도 모르지. 모르는 거잖아. 정말 내가 주말에도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는 젊은 여성, 으로 보였을 수도, 그 누군가는 사실 우울증 약을 백 개 먹는 중이라도 거기서는 그냥 아이스크림을 들고 미소짓는 사람이었을지도.


그래서 또 어떤가 싶다. 어쩌면 행복은 그렇게 절대적인 것도, 잔뜩 고결하거나 영원한 것도, 그리고 그래야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니까.






사람까지 안 가도, 그 비싼 수제 간식 먹고 때맞춰 옷 갈아입은 말끔한 털의 강아지들 속도.. 절대 알 수 없는걸?

그러니까, 좋으면 좋은 거다. 뭐 어렵고 깊고 복잡하고 의미가 어때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주말 공원 사람들의 표정에서 멋대로 읽은 것처럼.




근데, 그래도 개 팔자는 상팔자가 맞다.

누가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냐? 딴에는 최선을 다해 보필할 그 주인들과 생판 남인 나까지 이렇게 속을 헤아려 주잖아.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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