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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R Sep 04. 2024

음식 재료 준비하듯, 자료 조사하기

핵심메시지가 잘 담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

카페에서 듣게 된 이야기들


강이 훤히 보이는 카페에 갔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필사도 할 요량으로.

야외 테이블에 앉아도 괜찮을 정도로 날씨가 시원해졌다. 바람이 솔솔 분다. 가을이 오는 정취를 느끼며 책을 읽는다니, 멋진 같은데 하며 신나 하고 있는데 너무 시끄럽다.

떨어져 있는 테이블에 나이 또래 여성 4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소리가 컸다. 짜증이 났지만 전망 자리를 놓칠 없어 자리를 지키고 있자니, 의도치 않게 그들이 하는 얘기를 다 듣게 되었다.  


얘기의 주제는 사회에 진출한 여자아이들이 겪게 되는 불평등이었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인 같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교 10등 안에 여자 아이들이 훨씬 많은데, 사회에 나가면 완전히 달라진다는 이야기로 시작되어, "남자 여자 월급에 차이가 많이 난다", "네가 회사 오너면 여자 애를 뽑겠냐, 남자아이를 뽑겠냐.", "임신, 출산하면 다시 일을 있냐, 누가 아줌마를 뽑겠냐" 등등으로 이어졌다.

여자아이를 키우는 듯한 엄마가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이게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자 아이들이 똑똑하니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거다, 제도를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가 이렇게 저렇게 반박을 해보려 하지만, 강한 반박에 부딪혀 입을 다물었다. "육사도 여자가 매번 1등을 했는데 체력 시험을 넣으니까 여자 등수가 떨어졌다더라"라고 하니, 이 엄마가 소심하게 반박했다. "육사인데 당연히 체력 시험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자 상대 엄마가 던지는 말. "내 말의 핵심이 그게 아니잖아. 그동안 없었던 과목을 넣어서 갑자기 여자 아이들의 등수를 떨어뜨리게 문제라는 거지."

좀 있으니 소심한 반박이 나온다. "우리 애 초등학교 때 여자 아이에게 맞고 지냈어." 이제 모든 엄마들의 화제가 바뀐다. "어머, 그랬었어? 왜 얘기 안 했어. 힘들었겠다." 방금 전 여자 아이들이 겪는 불평등에 대해 토로하던 엄마도 이때는 남자 아이 엄마를 위로한다. "여자 애들이 때리는 게 꽤 아파. 선생님은 남자 애들만 혼내더라." 이런 수다 속에서 조금 전 서운했을 남자아이 엄마의 마음이 풀린다.


수다는 이렇게 끝이 없다. 카페의 전망이 좋다, 커피맛이 어떻다 얘기하다가, 커피가 담긴 잔에 대해 얘기하다가, 가족 여행 얘기하다가, 남편하고 싸운 얘기 하다가, 아이들 얘기하다가, 다시 맛있는 반찬 얘기하다가. 이렇게 주제를 바꿔가면서 몇 시간씩 얘기한다. 그리고 헤어질 때는 다음에 계속 얘기하자 한다. 주제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감하고 격려하고 험담해주는 시간 자체로 의미가 있다. 마음을 나눴기에. (나도 8시간을 쉬지 않고 얘기 나누고, 시간이 너무 짧다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구난방인 듯 보이는 대화 중에 이런 말이 나왔다. "내 말의 핵심이 그게 아니잖아." 한참 글쓰기 공부하면서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을 여성들의 이야기 중에 듣다니.  



사진: Unsplash의 Priscilla Du Preez



핵심메시지 : 나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


나 혼자 책 보고 글쓰기 공부할 때는, '핵심 메시지'의 의미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글쓰기 책에서 관련 글이 나와도 무엇인지 모르니 흘려 읽었었다. 글쓰기 수업을 듣다 보니 알게 되었다. '핵심메시지'가 없이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나 혼자 보는 일기와 독자가 있는 글의 차이도 핵심 메시지였고, 글의 줄기를 잡아주는 것도 핵심메시지였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이 소설, 시, 설명문 등의 주제는 무엇인가에 대해 배웠었다. 의미도 모르지만 시험공부를 위해 외웠던 '주제'가 바로 '핵심메시지'다.


<나의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에서는 내가 쓴 글을 누군가가 읽었는데, 남는 것이 없다면 나는 그 사람의 시간을 빼앗은 샘이라고 했다. 독자의 시간을 뺏지 않기 위해서는 맥락과 메시지가 분명한 글을 써야한다.   

단어가 쉽고, 문장이 간결하고, 분량도 가벼운데 다 읽고 나면 아리송해지는 글이 있다. 이런 글을 대부분 작가 자신도 어떤 이야기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쓴 글이다. 주제가 분명하지 않은 글이다.
잠시 직장에서 경험한 비효율적인 회의를 떠올려보자. 회의는 의견을 주고받으며 대안을 찾는 시간이다. 한데 문제만 지적하고 타박하다가 끝나는 회의가 허다하다. 이런 회의에 참석하고 나면 기분이 나빠진다. 잘못을 지적받아서이기도 하지만, 쓸데없는 시간 낭비로 업무가 지체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다 읽었는데 메시지가 없으면 읽은 사람은 허무해진다. (중략)
독자의 시간을 뺏는 글이 되지 않으려면 ‘맥락과 메시지가 분명한 글’을 써야 한다.

- <나의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이하루


공저 원고를 쓰면서 '핵심메시지'의 중요도를 인식하게 됐다. 하지만 실제 핵심메시지를 글로 풀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인풋 부족을 탓하고, 나의 준비 부족을 탓하면서 어찌어찌 원고를 마무리했었다.  



핵심메시지를 정했으면, 자료 조사를 해야 한다.  


<나는 말하듯이 쓴다>의 '한 문장을 향해 직진해라' 챕터를 읽으면서,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핵심 메시지를 몰라도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글을 때는 다르다.. 핵심메시지가 내 것이 되지 않으면 글쓰기는 길을 잃는다. 핵심메시지를 정했으면, 그 메시지에 대해 공부를 했어야 했다. 나는 나의 핵심메시지를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았었다.


강원국 작가는 키워드를 찾은 후 이에 대해 백과사전을 검색하고, 사례, 예시, 일화, 통계, 이론, 연구 등을 찾은 후 글을 쓴다고 했다. 핵심메시지를 찾은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나는 키워드, 핵심 문장, 주제문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키워드를 찾고 그 단어를 인터넷 백과사전에서 검색해 개념을 명확히 파악한 후 쓴다. 또는 내 글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문장들을 띄엄띄엄 써본다. 그렇게 핵심 문장을 추리고, 거기에 살을 붙이는 방식으로 쓴다. 주제문을 정하고 쓰기 시작하기도 한다.

(중략)

핵심 메시지를 담은 한 문장이 정해졌으면 이를 풀어내야 한다. 이 한 문장이 왜 맞는지 근거를 들어 설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이다. 이때부터가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사례, 예시, 일화, 통계, 이론, 연구, 조사 등이다. 풀어내는 방식에는 비교, 대조, 분류, 구분, 비유, 은유 등이 쓰인다. 이로써 주제문이 사실이란 것을 증명하여 옳다고 믿게 하거나, 그대로 행동하게끔 해야 한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도 비슷한 글이 있었다. 은유 작가는 '글쓰기에서 자료 찾기가 왜 중요한가요?'라는 챕터에 자신의 글쓰기의 첫 공정이 자료 찾기(p99)라고 하면서 '자료 찾기는 자신감을 셀프로 충전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p100)고 썼다.


은유 작가는 5년 정도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만드는 간행물에 실리는 글을 쓰면서 아래와 같은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습자지처럼 넓고 얇은 지식만 있어도 꾀부리지 않고 자료를 열심히 찾으면 웬만한 글은 쓸 수 있겠다, 글이란 것은 어떤 사실을 토대로 필자가 재구성하는 일이다, 감각적인 글발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탄탄한 자료로 내실 있게 글을 써야 한다는 감을 잡았죠.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p100


나의 지식이 습자지 같다고 자책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자료를 찾아야 했다. 몇 달 전,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를 읽을 때는 그냥 스쳐 지났던 내용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다니. 역시 직접 경험해봐야 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


어쩌면 자료 찾기 작업은 '대충 하지 않겠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마음가짐에 관한 일이기도 합니다. 자료 찾기를 건성으로 하면 몸은 편해도 글을 쓰다 막히고, 자료 찾기를 탄탄하게 하면 몸은 힘들어도 비교적 수월하게 글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낀 만큼 쓸 수 있으므로, 손수 모아둔 자료의 양과 그것을 이해한 정도에 비례해 글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겁니다.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p101



음식 재료 준비하듯 자료 조사하기


카페에서의 수다, 술자리에서의 수다는 자료조사가 필요 없다. 자신의 경험, 어디서 주워들은 것들을 풀어놓아도 괜찮다. 가끔 대화 중에 '그 말이 맞아?' 하면서 핸드폰을 검색해보고, 내가 경험한 건 그게 아니야 하면서 반박하기도 하지만 그런 옥신각신이 수다의 맛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어쩌면 자주 틀린 사실들이 팩트인 듯 오간다. 카페에서 들었던 대화도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을테다. 그래도 수다는 분위기를 맞추고, 마음을 맞추면서 계속할 수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다르다. 독자에게 잘못된 사실, 어디서 주워들은 썰을 알려주면 안되는 건 기본이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잘 쓰려고 해도 자료조사가 필요하다. 나를 위해서도 자료 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핵심메시지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고, 잘 담길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나는 적어도 4~5권의 책을 뒤져 글에 담고 싶은 문장들을 골랐다. '재료 준비부터 정성스럽게 해 놓아야 그 기운을 이어가 맛있는 음식완성하는 것과 비슷하다'(p101)는 은유 작가의 글처럼, 글을 위한 재료 준비를 해본 것이다.

이 글의 핵심메시지는 <핵심메시지가 잘 담긴 글을 쓰려면, 자료조사를 해야 한다>였다. 이 핵심메시지가 자료 조사에 기반해서 길을 잃지 않고 잘 담겼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 글이 읽는 분들의 시간을 빼앗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표지사진: UnsplashIñaki del Ol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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