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듯이 쓰라"는 주문에 딴지 걸어보기
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나는 이번 글에서 심술쟁이의 마음으로 '편하게 말하듯이 쓰라'는 선배 작가들의 조언에 딴지를 걸어봤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 별거 아닌 듯 쉽게 말하나 싶어서 심통이 났다.
강원국 작가의 책 제목을 가지고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자니, 갑자기 작가님의 초보 강사 시절 모습을 직관한 기억이 떠올랐다.
때는 2018년. 큰 아이 초등학교 때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보러 갔었다. 이날 강의 주제는 "글쓰기를 말하다". 고영성 작가, 김민식 피디, 강원국 작가가 출연하는 특별프로그램이었다.
그날 강의에서 강원국 작가는 책을 내고 강의를 하기 시작했는데, 강의할 때마다 너무 떨려서 생수병을 손에 들고 강단에 선다고 했다. 작가는 정말 15분 내내 양손으로 생수병을 꼭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강의를 했다.
나는 그때 한참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중이었다. 청중들은 강사가 떨리는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니 '나 지금 떨려요'라고 말하지 말라고 배웠던 나는, 팔짱 끼고 편하게 앉아서 솔직한 강원국 작가의 초보 강사의 모습을 지켜봤었다.
처음부터 잘하지는 못했다. 나는 과묵을 무기로 25년 직장생활을 했다. 실어증에 가까웠다. 하지만 직장을 나온 뒤로 말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대부분의 수입이 강의와 방송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말을 잘하기 위해 늘 노력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닫고 터득한 내용을 이 책에 낱낱이 담았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돌이켜보니, 내가 강의보다 글쓰기가 어렵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건, 강의는 10년 넘게 한 것이고 글쓰기는 시작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쉽게 강의 준비하고, 별 떨림 없이 강단에 서고, 청중들의 질문에 막힘 없이 답하게 되는 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초보 작가로서, 바들바들 떠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생수병을 손에 꼭 쥔 채, '글쓰기가 너무 어려워요'하면서 투덜투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참 투덜거리며 글로 쏟아내고 나니, 아래의 글들이 다르게 보인다.
잘 쓰려면 잘 말해야 한다. 말을 잘하려면 잘 써야 한다. 말과 글은 서로를 견인하고 보완한다. 어느 쪽만 잘하려 하면 어느 쪽도 잘할 수 없다. 쓴 것을 말하고 말한 것을 써야 한다. 말하듯 쓰고 쓰듯 말해보라. 말 같은 글, 글 같은 말이 좋은 말과 글이다. 나는 말하면서 생각하고 말로 쓴다.
(중략)
마음을 다해 말하고 말한 것을 글로 써보고, 또 말하기 위해 글을 써보는 것. 이것이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기 위한 내 노력의 전부다. 말하기 위한 준비가 글쓰기 연습이 되고, 또 그것이 다시 말이 되는 일상. 말하기를 연습하는 글쓰기가 즐겁고, 또 말하는 것이 즐거워 글을 쓰고 싶은 선순환의 삶, 그야말로 말과 글이 동행하는 삶이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비결이다.
-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
이제 거꾸로 생각해 본다.
글을 쓸 때 수차례 퇴고하듯이, 말을 할 때도 마음을 다해 생각하고 생각해서 한 마디 한 마디 정성스럽게 내뱉으면 좋겠다. 그러면 횡설수설하지 않게 되고, 아리송한 상대의 말을 해석하느라 시간을 빼앗지 않아도 되니까. 나아가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게 될 테니까.
나의 강의도 초보강사였던 시절의 마음을 되새겨보면서 준비와 실행에 고심해 봐야겠다. 나의 말에 영향받는 수많은 청중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해 말하고 말한 것을 글로 써보고, 또 말하기 위해 글을 써보라"는 강원국 작가의 조언을 마음에 담고서 말이다. 역시 선배 작가의 말은 다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