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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 고통의 시작

입덧

by 해보름

6개월의 꿈같은 신혼 후 그렇게 우리에게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 히 언제 생겼으면 좋겠다고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신혼도 어느 정도 지났으니 이젠 아이가 생기면 좋겠다 었다. 그러나 아이가 찾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임신 5주가 지나고부터 속이 안 좋아지면서 입덧이 시작됐다. 보통 입덧하면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를 한다는데 나는 속이 답답하면서 체한 증상이었다. 음식 먹은 게 내려가지 않고 바윗덩어리가 들어찬 것처럼 답답했다. 하루에 물 반잔 우 먹는 게 다였는데 그마저도 먹고 나면 답답해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 이야기해 봐도 입덧증상일 테니 뭐든 먹어보라고만 했다. 그렇지만 물도 소화시키기 힘든 나에게 음식을 먹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던 어느 날 한국에서 영상통화가 왔다. 친정언니였다. 언니는 핸드폰 속 내 모습을 보자마자 내 몰골이 왜 그러냐며 놀란 듯 소리쳤다. 입덧으로 음식을 못 먹어서 그렇다고 하자 니도 그간 통화할 때는 정상적인 입덧이려니 했다는데 막상 핸드폰으로 내 모습을 보니 그건 입덧으로 못 먹는 사람 몰골이 아니라고 당장 제부한테 얘기해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그때는 말 못 했지만 나의 모습이 흡사 송장과 같아 보였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왈칵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이 정도가 되기 전에 어떤 도움이라도 받았을 텐데 하는 왠지 모를 서러움 신랑에 대한 서운함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전화를 끊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간단한 검사 후 우선 탈수를 막아야 해 수액을 놔주었다. 수액을 맞고 새벽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수액을 맞고 나니 조금 나아진 듯했고 하루이틀은 음식도 조금 넘어갔. 그러나 문제는 2,3일은 버틸만한데 그 후로 다시 심해는 거였다. 그래서 주말이면 수액을 맞고 와서 5일을 참고 버티다 금요일 신랑이 퇴근하고 오면 저녁에 가서 수액 맞고 새벽에 오는 루틴이 시작되었다. 래도 그렇게라도 수액을 맞을 수 있다는 것에 조금은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 버티며 지냈다.




수액을 맞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은 한국 길거리카페에서 파는 생과일주스가 너무 먹고 싶었다. 얼음 넣고 갈아주는 시원한 키위주스가. 속이 답답해서인지 그동안은 뭔가 당기는 음식이 없었는데 키위주스는 너무 먹고 싶었다. 물조차도 맘껏 마시지 못하다 보니 키위주스 한잔 시원하게 마시면 갈증도 좀 해소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원한 그 한국에서 마시던 그 키위주스를 파는 곳은 그 당시 내가 아는 나의 동네에서는 없었고 아쉬운 대로 비슷한 여러 가지 믹스된 생과일주스를 파는 가게는 있었지만 문제는 한 달 넘게 굶은 내가 운전을 하고 어디를 갈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주위에 누가 사다 줄 사람도 없었다. 신랑 일 끝날 시간이면 웬만한 가게들이 문을 닫아 살 수가 없었다. (아쉽게도 그땐 우버이츠도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결국 나는 다음날 가까운 동네 슈퍼까지 걸어가서 키위를 사다가 직접 믹서기에 넣고 갈았다. 설탕도 넣는다고 넣었는데 내가 먹었던 그 달달하고 시원한 키위주스의 맛이 아니었다. 한국 가서 3천5 백원주고 딱 사 먹고 오고 싶었다. '이래서 입덧하면 엄마 생각이 난다는 거구나.' 나는 엄마가 있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 내 나라가 간절히 생각났다. 그래도 그 키위주스 한잔으로 며칠은 또 버텼다. 그러길 6주쯤 지났을까?




그날도 주말에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고 그날은 의사가 초음파를 한번 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초음파를 보여주며 아이 심장도 잘 뛰고 있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신랑의 눈에는 뭔가가 다르게 보였는지 의사 선생님이 가고 난 후 아이가 전에 봤을 때는 양수 안에서 팔다리를 움직이며 잘 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움직이지도 않고 꽉 움츠러져 있는 것 같다고 했다.

" 그래?" 내심걱정은 됐지만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니까 괜찮을 거라며 신랑을 안심시켰다. 실 나도 엄마 몸은 힘들더라도 아이는 엄마몸에 있는 영양분을 다 가지고 가서 크니 아이는 괜찮다는 주위말들을 믿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버티기가 너무 힘들었다. 한 달 넘게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는 있지만 여기서 놔주는 건 수액, 영양제가 아닌 말 그대로 물이었다. 몇 주 지나고부터는 맞고 나도 별 차도가 없어 음식을 먹지 못하니 영양제라도 놔줄 수 없냐고 물었지만 검사상 영양제가 필요하진 않다 하여 수액으로 탈수만 막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수액을 맞고 나도 힘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그날도 새벽이 돼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신랑도 매주 응급실에 가서 새벽까지 나를 케어하고 돌아오는 것도 힘들었는지 오자마자 잠이 들었고 나도 지친 몸 뉘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몸이 이상했다. 여름이긴 했지만 새벽엔 시원하고 쌀쌀하기까지 한 뉴질랜드인데 온몸이 답답하고 덥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그게 한동안 답답함에 몸을 뒤척이 의를 느껴 화장실로 향해 변기에 앉자마자 어떤 물 같은 게 아래로 왈칵 쏟아져 나왔다. 순간 이상함을 감지한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신랑을 깨웠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수액을 맞고 초음파를 보고 온 곳이었다. 다시 접수를 했고 임산부이고 양수가 터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나를 응급실 베드에 눕힌 후 피검사를 했다. 그게 다였다.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의사가 오겠지 하며 누워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런데 그 어떤 의사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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