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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Apr 01. 2024

요리의 온도

불, 부엌

 우리가 자주 쓰고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잡으러 가자!' '잡으로 간다.'라고 한다. 장 보러 갈 때, r 데리러 갈 때 주로 쓴다. 보통, 도시에 사는 우리가 실제로 잡으러 갈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잡는 일에 서툴다. 우리는 남들 한 바구니씩 채우는 조개잡이 행사에서도 거의 빈 플라스틱 통을 내밀어서 관계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열심히 했다고요!)

“희한하네, 다들 많이 잡았는데.”


 얼마 전에는 시장에서 제주산 취를 사다가 쌈으로 먹었는데, 엊그제 산 용문산 취와 같은 취인데 조금 다른 것이 이렇게 되면 여기저기서 채집된 취가 모두 구분되는 것인가 싶고, 참취가 있고 곰취도 있으니 어렴풋하게는 알겠으나 나는 혼자서 뒤죽박죽이다. 예전에 지리산 도토리묵 파는 아주머니 가게에서 본 북한산 고사리는 북한산산 고사리인가 안북한산산 고사리인가, 둘 중 무엇이라도 통 알 수 없다. 이렇게 직접 잡아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집중력은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채집된, 혹은 만들어진 무언가를 단순이 '잡으러 가는' 우리지만 잡으러 가자는 말을 할때마다 먼 그때와 연결된다.


 그 시절,

 우리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먼저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  Epimetheus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


 불, 부엌


 불과 도구,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 여전하게 펼쳐지고 우리를 지탱한다. 그 곳(그 장소, 모든 일이 일어나는)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하나의 말은 부엌이다, 불을 때는 나뭇단에서 아궁이, 공간으로 이어진 우리말. 잡으러 가는 것과 부엌을 말하면서 요리하고 식사하는 일은 어딘가로 끝없이 이어진 활동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각 저마다의 어딘가로 이어진다.


 요리의 온도


 나는 한 그릇 국물요리를 무척 좋아하는데 어릴 적에도 솥에 가득 채워진 사골 국물을 덜어서 끓이고, 뜨겁게 데워 썰어진 파를 양껏 넣고 혼자서도 야무지게 밥을 먹곤 했다. 솜씨 좋은 할머니와 엄마의 명절, 제사 후의 고기, 북어, 두부, 다시마를 넣고 종일 푹 끓인 탕국은 또 얼마나 시원하고 좋던지 그 맛은 일단 지금도 다른 어디에서도 맛볼 수가 없다. 남겨진 녹두전도 꼭 노릇하게 데워먹었다. 따뜻하게 데워져 있는 에스프레소 잔을 입에 가져가는 것을 좋아하고, 냉면을 먹으러 갔는데 약간 미적 한 기운이 감돌면 어딘가 개운치 않았다.


 아니 그런데, 그  우리가 좋아하는 콩국수 집은 ‘냉’ 하지 않고 적정하게 콩물을 갈아서 내어 주었다. 첫 만남은 낯설었지만 고소함이 부드러운 질감으로 술술 넘어가는 것이 그 이유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금을 살짝 뿌리고 꾸덕하게 적셔진 면을 한 젓가락 집어서 먹는다. 시원하다는 것, 차가워서 서걱거리는 것이 먼저 느껴졌다면 아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즐길 수도 있는 것이구나.


 j는 녹두전이나 잡채를 꼭 약간만 데워서 먹자고 했기 때문에 냉장실의 찬 기운이 가실 정도만 데워주면 그만이었다. 나는 꼭 지글지글하게 구운 녹두전만을 당연한 듯했었지만, 그 상태로 녹두전의 퍽퍽함을 맛본 것이 또 싫지 않았다. 고소하면서 까슬까슬함도 살아있고 씹을수록 맛이 나는 것 같은, 식은 상태로도 맛있었다. 데우는데 크게 에너지를 쓰지 않으니 피로감도 주는 것 같고 무난한,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식은 밥은 식은 데로 좋았고, 토렴 하지 않은 국밥이나 국수도 그 풀어지는 상태를 느끼면서 좋았다. 차갑게 헹구고 물기를 털어낸 국수가 그릇 안에서 따뜻한 육수와 만나는 것을 맛보는 것도 매력이 있었다. 멸치국수는 따뜻하게 먹어도, 육수를 차게 식혀 먹어도 좋았다.


 사람의 온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온도란 데일듯 한 것이어서 불꽃같이 열정적인 사람들을 동경하고 좋아했다가, 차갑고 냉정함을 유지하는 베일 듯한 날카로움에 또한 마음을 빼앗기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밥 먹고 와서 하자.'라고 말하며 긴장을 풀어낸 여유를 가진 사람에게 기댄다. 나는 그래도 잘 모르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하는 작업에 자신만의 그것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건 내가 알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고 응원의 마음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만의 온도를 가진 사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자신의 질감을 지켜나가는 사람. 그래서 그런 (예상치 않았던, 조금 낯선) 음식을 먹고 하는 것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어도 그 이유를 알거나, 기분 좋은 매력을 발견하면 그날의 사건으로 여기 공책에 기록될 것이다. 한 그릇의 식사에서 알 수 없는 빈 틈을 느낀다면 그건 요리하는 사람 요리사의 부재를 느끼는 일이다. 길을 걷다가 건조한 환경에서의 부재를 느낀다면 그것은 건축가의 부재를 느끼는 일이다.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도 있지만, 관심 있는 분야의 글들을 종종 읽곤 하는데 요기 브런치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움직이고 있는 세상의 시선을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의 재미를 느끼고,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부재가 느껴지는 순간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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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bluetable/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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