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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Feb 09. 2024

웍으로 크레페 얇게 굽기

균질성의 비적절함과 비균질성의 적절함

크레페가 등장하기까지 오래 걸리는 이야기입니다.



칼국수


이번 겨울에는 칼국수를 여러 번 만들어 먹었다.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김치와 말린 배춧잎, 채 썬 호박과 고기를 넣어 육수를 내고, 1-2시간 전에 소금과 물을 넣고 치대어서 냉장고에 넣어 둔 반죽을 꺼내서 주무르고 등분해서 밀가루를 잔뜩 묻혀 둥글 납작하게 다듬고 밀대로 민다. 적당히 말아서 칼로 썰어낸다. 말린 것들을 다시 풀어서 소쿠리에 담는다. 3인분을 만드는 동안에 먼저 만든 칼국수 면이 서로 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충분하게 뿌려서 흩어 놓고 가끔 뒤적여 주었다.


‘너무 맛있어!’ ^^ 그래서 몇 번을 더 만들었다. 몇 년 전에 우동 만든 후로 면을 만든 것은 처음이다. 내가 만든, 식구들이 좋아하는 칼국수는 약간 연약하고 부드러운, 보통의 칼국수 보다 질은 상태의 반죽으로, 익히기 전까지 밀가루를 묻혀서 잘 썰고 눌어붙지 않게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러면 울퉁불퉁하면서 자유로운 형태를 가진 보드라운 말간 칼국수가 된다, 술술 넘어가는 맛이다. 조금 단단한 부분과 더 연한 부분들이 제 각각인 두께로 어우러져 있어서 한 젓가락 집어넣고 우물거리면 다양한 식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면을 만들면 사실 써는 것도,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어느 날은 더 기술적인 면을 만드려고, 단단하게 반죽해서 넓게 밀어내고 쓱쓱 기계로 썰 듯이 일정한 형태가 유지되도록 만들었다. 작업은 생각한 데로 군더더기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이건 더 쉬운 일이었다. 면이 붙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밀가루도 적당히 뿌려 놓았다. 시간 여유도 생기고 손이 덜 갔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나는 전에 만든 것이 더 좋아!'

     

 '띵!'


 이크 그래,

 우리 집 칼국수는 이런 모습으로 나의 손길이 묻어 있는 것이지. 잠시 잊었다, 이건 내 칼국수라는 걸! 이전 칼국수는 반죽이 질어서 밀가루를 많이 뿌려놓았어도 면에 잘 붙어서 국물 탁해짐이 덜했는데, 내가 만든 기계 칼국수는 면을 익히는 시간을 전보다 오래 잡아야 했고, 그래서 국물이 약간 걸쭉해지기도 했다. 핸드메이드 칼국수의 맛은 이런 거야.


 쌀을 가루 내어 떡을 하고, 밀을 가루 내어 면을 만들고, 밥을 하고 빵을 굽고 술을 빚고, 늘이고 줄이고, 찍고 풀어낸다. 내가 하나 벼르고 있는 것은 맛있는 식빵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이다, 종종 식탁에서 빵 만드는 순간을 그려보곤 한다.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다.

 여기서, 같은 곡물류이지만 단백질 함량이 높아서 성형이 비교적 자유로운 파스타 재료인 듀럼밀은 우리가 아는 스파게티 면의 단단함을 만들어낸다.  


파스타


가끔 인스타그램의 추천피드가 나를 파스타 만드는 영상으로 안내하고 나는 홀린 듯 그것을 들여다보곤 하는데 최근에 본 것은 외쿡 할머님의 생파스타 만드는 영상이었다. 김 발 같이 생긴(거의 흡사하다), 판에 손가락으로 손가락 크기의 반죽을 쓰-윽 밀어내서 돌돌 말린 작은 소라모양을 만드는 것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파스타 만드는 영상은 시선을 잡는다. 같은 것은 없다, 자연스럽고 풍성하다. 요리에 손을 거친 형태들이 더해진다.

 듀럼밀은 이렇게 다양한 형태를 만들 만큼 단단해서 스파게티로 구조물 만드는 건축, 구조 관련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리를 만들기도 하고, 탄탄한 보호막을 만들어 달걀을 떨어트리는 실험을 하기도 한다. 듀럼밀은 보통 밀가루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아서 성형하기가 쉽다고 하는데, 이 단백이라는 놈이 요리에서 제법 재미있다. 우리의 대표 단백질인 달걀로 최근에는 추운 날 아침으로 r에게 달걀찜을 몇 번 만들어주기도 했다. 달걀 하나에 물을 60ml 정도 넣고, 새우젓을 한 꼬집 정도 넣어서 잘 풀어준 후 불에 올리고 바닥에 붙지 않도록 잘 저어준다가 이때다 싶은 보글거리는 순간에 뚜껑을 덮고 불을 줄인다. 3분 정도 지켜보다가 뚜껑을 연다. 두 개는 많다고 했다. 촉촉하고 따뜻하게 부푼 달걀을 보고 있자면, 달걀프라이 흰자의 바삭함과 노른자의 폭삭함에서부터, 간장달걀조림까지의 무한 달걀요리의 세계로 빠져들다가 밀가루 반죽에 달걀을 넣는 이유를 생각해 보며 문득 그것을 만들어야겠다고 맘먹는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종합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크레페 굽기.


밀가루+달걀


 밀가루에 소금 간을 하고 생강가루, 설탕도 약간 넣고 달걀을 깨트린다. 묽은 반죽이 되도록 물의 양을 조절하며 넣는다. 달걀의 힘을 이용해서 아주 얇은 크레페를 만들어야겠다. 얇은 크레페 만들기에는 판판한 면에서 넓게 펼쳐주는 도구가 필요한데 그 문제를 지금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웍으로 크레페 얇게 굽기


 팬에서 펼치지 말고 둥글고 깊게 만들어진 웍 안에서 면을 따라 얇게 펴 바르며 반죽이 흐르는 것을 이용해서 둥글리며 굽는다. 반죽의 끝이 '팍' 매끈한 흰자 같이 얇게 단단해지면 팬에서 떼어내면서 뒤집어준다. 버터가 없어서 올리브오일을 이용했는데, 나쁘지 않았다. 다만 버터는 더 고소한 맛을 줄 것 같다. 이건 사실 연말에 케이크 대신 만들어서 생크림과 딸기를 넣고 세 번 접어서 먹은 것인데 우리의 즐거운 파티가 되었다. 다음에는 버터를 이용하고 착착착 세 번 접어서 설탕을 뿌릴 것이다.


 이런 과정과 그 안에서의 고민과 해결을, 혹은 부족함을 느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아니 어떻게!' 하는 맛있는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가 요리를 즐기는 방법이다.



금요일에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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