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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Mar 22. 2024

새우젓, 간 맞추기

단순함

새우젓 무침

새우젓을 한스푼 덜고 고춧가루 약간과 다진 파를 듬뿍 넣어서 섞습니다. 들기름을 한두 방울 떨어트리고 종지에 담아냅니다.


새우젓 무침이 맛있어 보이는 비결은 파의 초록 부분을 많이 넣는 것. 생생한 파를 새우젓에 무친다는 느낌으로, 기름은 몇 방울만 툭, 고춧가루 툭툭, 담을 때 물기가 많이 보이지 않도록 담음새를 신경 씁니다.



언젠가부터 (지금은 없어졌지만) 점심시간에 가끔 가던 식당의 황탯국을 흉내 내어 집에서 만들면서 새우젓으로 간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 요리법에 새우젓이 들어갔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국물에서 새우를 본 일은 없으므로 아니라는 게 맞을 테지만 나는 왠지 새우젓을 꼭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무 몇 조각과 남은 뼈를 바르고 결을 찾아가며 찢은 황태포, 새우젓, 큼직하게 썬 두부 세 덩이를 넣고 푹, 두부의 텅텅한 맛이 우러날 정도로 오래 끓여낸 황탯국은 (j가 좋아하는) 우리의 식탁에 종종 등장하는 메뉴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새우젓을 직접 산 것은 10여 년도 전에 소래포구에 놀라갔다가 한통을 사본 것 외에는 없고, 늘 김장하고 남겨진 것을 받아왔다. 몇 해는 삼겹살이나 족발 먹을 때만 썼기 때문에 그렇게 냉동실을 몇 통씩 채우던 새우젓이었는데, 최근에는 가져오는 양도 적어졌고 그러면서도 먹는 양은 늘어나서 요즘은 적정 분량의 새우젓이 냉동실에 들어있는 것이 무척 만족스럽다.


 올 겨울은 야채수프보다 흰 죽을 많이 끓여 먹어서 가끔 반찬으로 새우젓 무침을 내놓았는데 요놈이, 파와 함께 사각거리면서 입맛을 한껏 살려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익히 아는 '새우젓 한 젓가락'에 대한 속담과 옛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공감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톱만큼 작은 새우를 하나 젓가락으로 집어내는 맛이라니. 다른 어떤 것 보다 강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무언가 파와의 어울림이라는 부족할 것 없는 반찬으로써 '무침'이라는 이름을 달고 당당하게 식탁에 올려진 것이다.


  작년 김장 때 김치 속을 집어 먹고 '맛이 하나 부족한데? 뭔가 달큼한 맛이 없는 것 같아.'라고 내가 콕 집어 얘기하자 우리 윤여사님은 무척이나 당황하며 '생새우가 매우 비쌌다'는 말을 남겼다. 생새우는 그 자체로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김치에서 한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다. 그렇지만 또, 생새우를 넣지 않았다는 2023 김치는 칼칼함이 더 살려져서 무척이나 맛있는 묵은 김치가 되었고, 김칫국으로, 찌개로, 볶음으로 우리 집 매일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몇 년 전에는 한창 많이 광고하던 크릴새우 오일을 챙겨 먹으면서 '기운 난다.' 하며 '이건 역시 고래의 먹이야!' 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새우젓을 즐겨 먹고 김장 때, 간 맞출 때, 고기와 곁들여 먹을 때, 고래만큼 새우젓을 즐겨 먹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또 (새우젓 때문에) 힘이 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호박새우젓볶음도 가끔 만들고 최근에 '꽤 하는 것 같은데!' 얘기를 들은, 주요 메뉴로 급부상한 새우젓으로 간을 한 달걀찜도 올 겨울에 많이 먹었다. 칭찬과 새우젓은 고래를 춤추게 하는 법이다. 원하는 재료와 새우젓 하나만으로 요리가 완성된다. 그 맛은 단순하지 않고, 오히려 집중되면서도 풍성하다. 시금칫국, 배춧국, 뭇국, 한 가지 채소로 끓인 맑은 국 간 맞출 때 쓰기도 하고 (이것들은 어쩐지 나만 좋아하는 메뉴가 되어서 자주 하지는 않았다.) 마른오징어를 넣고 콩나물국밥을 만들기도 했다. 그 한번 만들어본 콩나물국밥은 내가 만들었지만 어찌나 맛이 있던지..



맛있지?

… 웅

?

너, 말 좀 하면서 천천히 먹어, 밥그릇 내려놓고.

알았어, ㅋㅋㅋㅋㅋ (수란 만든 밥그릇을 들고 먹고 있었다.)

뭐 다 밥 먹고 어디 독립운동이라도 하러 가?


콩나물국밥

 

 새우젓은 만든 시기와 방식에 따라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쓰는 새우의 종류도 다르고 잡힌 시기에 따라서 크기가 다르고 또 그때의 날씨에 따라서 처리하는 방식에 차이가 나고 그래서 맛도 쓰임도 구분된다. 내게 익숙하면서 직관적인 이름은 오젓, 육젓, 추젓이었는데, 오사리젓의 줄임말이라는 오젓 때문에 알게 된 '오사리'라는 단어가, 평소 쓰지는 않았지만 책 제목으로 익숙했던 '도사리'라는 말과 이어지고 제철을 기준으로 이른 철과 늦은 철의 수확물을 구분하는 새로움으로, 알았다는 것이 뿌듯하다. 유월의 육젓이 가장 크고 통통한 시기라고 하니 그 전의 '오사리' 시기가 오월과 맞아서 오젓, 그리고 육젓인 것 같다.     


오사리 - 제철 - 늦사리


 새우 종류가 많다고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쉬지 않고 새우를 잡아들이는 건가 싶다가도 맛보고 싶고, 참 맛있겠군 하는 결론에 이른다. 2월에 잡힌 것부터 김장철 가장 맛이 좋은 것으로 선호되는 6월에 담근 육젓과 추젓, 11월에 담근 동젓도 있다고 하니 사시사철 새우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종종 챙겨 먹던 영양제에 대한 마음이 시큰둥해졌다.


새우젓, 구분되는 단어

풋젓/곤쟁이젓(데뜨기젓,돗떼기젓)/오젓(오사리젓)/육젓/차젓/자하젓(고개미젓)/추젓/동젓/동백하

토하젓/자젓/뎃데기젓/새우알젓


위키백과 새우젓

https://ko.wikipedia.org/wiki/새우젓 


 요리 조리에서의 단순함은 자연이 준 재료를 살리는 일, 무언가를 살리는 일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한껏 뽐내도록 배려하는 일. 우선은 많은 것 중의 살리고 싶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이 살며시 지나가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담고 있다가 그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알아채기도 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짝꿍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해야 하고 하지 않아야 하는 모든 사건과 과정이 그것 하나에 집중된 일. 그렇게 살리고 싶은 일을 찾는 것, 알아차리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그건, 그것이 뭐가 되든 좋아하고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일임이 분명하다. 지워지지 않는, 심심하면서도 강한 혹은 약한 하나의 '그것'.


 '단순함'을 제목으로 쓰려고 했던 글이 이번에는 새우젓에 이어졌다.   



겨울에 쓰던 글을 봄에 마칩니다.


단순함

https://brunch.co.kr/@bluetable/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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