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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삼거리 Nov 17. 2023

카레 먹는 날

반반카레

2022.12.01.



 오늘도 이런 날이다. 생각한 재료와 형태도 같다. 사람이 이렇게 크게 벗어나질 않는다. 언덕으로 이사 왔기 때문에 보름정도 시기가 당겨진 것일까, 비가 온 다음인 것일까. 아침에 산길로 산책을 다녀오는데 싸릿눈이 흩날렸다. 그래도, 같은 재료이지만 이- 요리하는 사람인 나의 기술이, 구체적인 개인의 요구를 해결하는 능력이 1년 동안 조금 늘었기 때문에 어제보다 마음에 드는 카레를 만들었다.


 올리브오일을 조금 넣고 큼직하게 썬 돼지고기를 볶다가 기름이 나오기 시작할 때 당근을 넣어 같이 볶았다. 작은 당근 이어서 원형 그대로 1cm 높이로 토막 내었다.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볶아졌을 때, 물을 카레 봉투에 적힌 정량보다 넉넉하게 붓고 끓이기 시작한다. 월계수 잎과 마른 바질 씨앗을 꽃대에서 추슬러서 넣고 대도 넣고 밥이 될 때까지 거품을 걷어주며 끓인다. 오늘의 반반카레는 야채를 카레와 밥에 반반 나눠 넣는 것이다. 카레는 고기와 당근만 넣어서 끓이고, 감자와 고구마를 잘라 넣어 밥을 한다. 묽은 카레 만들기에 감자는 관리 대상이 되는데, 이 감자를 카레에 넣지 않고 밥을 짓기로 한 것이다. 감자밥을 하기로 한 김에 고구마도 넣었다. 고기를 넣은 카레는 매운맛 제품을 넣는데, 카레는 매운 데로 감자와 고구마의 포슬포슬함과 단 맛은 그대로 어울려 먹겠다는 작전이다. 밥도 아주 잘 되었다. 카레 냄비에 불을 끄고 휘휘 저어가며 가루를 섞는다. 그때까지는 내가 어떤 요리를 하고 있었는지 냄새만으로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돈지루였다고 잡아뗄 수도 있다. 야채를 그렇게 썰지 않는데.. 그런 향신료를 넣지 않는데.. 그래도 모르는척하며 된장을 한 스푼 넣는 것이다. 쓸데없는 상상이다. 내가 만들려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처음부터 카레다. 순간에 요리가 완성된다. 불을 켜고 더 끓이다가 나무 주걱으로 밥을 푸고 카레를 떠서 밥을 둘러가며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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