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를 끊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수면제를 먹어왔다. 매일 먹은 것은 아니지만 자주 먹었다.
어제 아침부터 일찍 나가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들어왔다. 글을 쓰지 못했고,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으나 와인 두 잔을 마시고 그대로 잠들었다. 밤에 카톡도 못 본 것을 보니 12시도 안 되어, 그러니까 침대에 누운 지 10분도 안 되어 잠이 들었다. 아침에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났다. 수면제 없이 꿀잠을 잔 게 참 오랜만이다.
어제 점사를 보고 왔다. 그동안 홍석천의 운수 좋은 날을 방송하면서 마음속으로 콕 찍어두었던 무당이 한 명 있었다. 집도 가깝고 나이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그녀의 점사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좋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적당히 업 앤 다운이 있으나 은근히 오래가는 매력. 방송을 그만두고 글을 쓰면 어떨까 물었더니 자꾸 TV가 보인다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란다. 32-3부터 계속 힘들었으니 그동안 인덕 없이 자기 고집 하나로 여기까지 힘들게 왔는데 운기는 지난 9-10월부터 들어왔고, 앞으로도 일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 한다. 안정적으로 내 글만 쓸 수 있으려면 나이 52는 넘어야 한단다. 한적한 바닷가 작업실의 꿈은 그때쯤 이루어질 것인가?
며칠 108배를 열심히 했더니 자꾸 꿈을 꾼다. 이미지와 줄거리가 선명한 꿈이다. 꿈에 만년필을 샀다. 검은색을 하나 사고 잠에서 깼다가 다시 잠들었는데 꿈이 이어졌다. 같은 사람에게 또 한 자루의 만년필을 샀다. 두 번째는 하얀색이었다. 색만 다를 뿐인데 더 비싸다고 했다. 난 “목(木)이 많으니 금(金)이 필요해”라고 말하며 하얀색의 비싼 펜을 또 사고는 룰루랄라 즐겁게 콧노래를 불렀다. 금은 목을 극하니 상극이라 한다. 그러나 잘 키운 나무는 도끼로 잘라내 목재로 만들어야 비로소 쓰일 수 있다. 이제 내가 쓰이기 위한 시간일까?
108배를 하면서 생각했다. 하루 세 시간만 내 글을 쓰자. 방송을 하고 홍보를 하고 대필을 하고... 생계를 위한 글과 내 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보자. 카프카는 노동 보험 공단에서 일하며 소설을 썼는데,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고 귀가해 3시부터 7시 반까지 잠을 자고, 밤 11시까지 3시간쯤 글을 쓰다가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그는 하루에 두 번 잠을 자며 두 가지 직업을 가지고 살았다. 카프카는 달 별자리가 쌍둥이자리고 나는 동쪽 별자리가 쌍둥이자리다. 쌍둥이자리는 집이나 직업을 두 가지 갖는 경향이 있다. 하루 두 번 자고 일어나지는 않더라도, 당분간 잠에 연연하지 말아 보자. 밤을 새우고 아침에 자든, 낮에 자든 자고 싶을 때 푹 자자. 올해 계획 중에 “밤샘 금지”를 지웠다. 그리고 수면제를 먹지 않기로 했다.
무당에게 결혼운을 물어보니 굿을 해도 가능성은 희박하니 그냥 연애나 하면서 자기랑 놀잔다. 점사를 보고 나와 앉아 수다를 떨다가 별자리 책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도 별자리를 봐달라고 하기에 내가 무당의 별자리를 봐주었다. 같이 갔던 녀석이 둘이 참 웃긴더라 했다. 중이 자기 머리 못 깎는다고 서로 상담을 해주는 게 웃기다고. 내가 생각해도 참 웃기다. 별자리 상담가인 나는 내 별자리 책을 무당에게 물어보고, 무당은 내게 별자리 상담을 받고. 상담이란 게 그런 거 아닌가. 알고 있지만 누군가 말해주면 더 명확해지는 것. 그것으로 마음의 위로가 되는 것. 내비게이션처럼 명확하게 앞날을 예측해주지 않지만 삶의 지도 한 장 얻어 내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며칠 일 관련해서 아무 연락 없었다. 그러다 어제 하루 놀러 나갔더니 내가 노는 꼴은 못 보겠는지 일거리가 잔뜩 들어왔다. 딱 3시간만 내 글을 쓰고, 섭외와 기타 등등 일들을 해치우자. 두 마리 토끼 잡아 보지 뭐. 어차피 결혼도 못해 시간은 많다!
며칠 따뜻하더니 오늘은 춥고 지금은 눈이 내린다. 집에 콕 처박혀 글쓰기 좋은 날이다.
108배 시즌1 97일 차 _ 2020년 5월 7일
https://brunch.co.kr/@bluetwilight/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