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보
검정치마의 노래 antifreeze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영화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불 때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 우린 일상 속에서 수많은 눈동자를 보며 살아간다. 그런데 ‘처음 봤던 눈동자’라니. 가사 속 ‘나’는 ‘너’에게서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눈동자를, 눈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상대에게 매료되었다는 것을 이 한 문장으로 알 수 있다. 화자는 ‘네게 사랑에 빠졌어.’라는 말 대신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라고 말한다.
소히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백예린의 산책이라는 노래에서도 눈동자가 언급된다. “내가 쏙 들어앉아 있던 그 눈동자 그 마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주던 그가 보고 싶어지네” 여기서도 눈동자는 사랑을 전달하는 매개로 나타난다. 눈동자는 보고 있는 대상을 그 안에 비추어 담는다는 특징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에 ‘쏙 들어앉아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그의 눈 속으로 들어간 것만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다. 눈동자는 잠깐이지만, 사랑하는 이의 일부가 되는 것을 허락해준다.
이러한 눈의 속성 때문인지 18세기 영국에서는 Lover’s Eye라는 유행이 있었다. 자신의 눈을 그린 아주 작은 초상화를 장식적인 프레임에 담아 연인에게 선물하곤 한 것이다. 이전에도 사랑하는 이의 얼굴 전체를 담은 아주 작은 초상화가 그려지긴 했지만, 오직 눈만을 확대해서 그린 이 그림은 그와 달랐다.
Lover’s Eye가 유행하게 된 것은 조지4세의 유명한 사랑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그는 과부이자 카톨릭 교도라는 이유로 왕실의 반대를 받았던 애인 마리아 피츠허버트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비밀리에 편지를 보냈는데, 그 안에 오직 자신의 오른쪽 눈과 흐릿한 단색 배경만을 담은 작은 그림을 함께 동봉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유행은 사진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유럽 전역, 러시아, 미국에까지 퍼지게 된다.
그 유래에서부터 알 수 있듯 Lover’s Eye는 연인들 사이의 비밀스런 선물이었다. 여러 이유로 알리기 어려운 관계의 연인이 서로의 눈 그림을 아무도 보지 못하는 옷깃 안쪽에 달아 감추곤 했다. 다른 이들이 알아채서는 안 되고, 그들에게 말할 수도 없지만, 그들은 이 그림을 통해 연인의 존재를 언제나 느끼며 자신 안에 더 소중히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더해 Lover’s Eye가 더욱 친밀한 사랑의 전달 수단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연인의 ‘모습’을 간직한다기보단 연인의 ‘일부’를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상대를 바라보고 떠올리며, 사랑한다 말할 때의 그 눈빛.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연인밖에 없다. 따라서 이는 온전히 연인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 된다. 당신은 누구에게 자신의 눈을 주고 싶은가? 또 누구의 눈을 옷깃 속에 간직하고 싶은가? 가을의 한 가운데에서, 마음 속에 떠오르는 그 이름을 조곤히 중얼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