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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mBom Mar 30. 2024

UNIT 10. 마음을 내어준 물건

MONO PROJECT ARCHIVE

한동안 반려 식물 키우기가 큰 인기였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 시간만큼 집에 쏟는 애정이 더 커지는 것이 원인이라는 말들이 자주 뉴스에도 나왔다. 허브나 샐러드용 채소 재배기를 비롯해 텃밭을 가꾸는가 하면 식물에도 재테크 개념이 붙으면서 식테크용 식물들이 한 잎에 몇 십만 원씩 팔린다더라 하는 이야기들도 종종 들었다.


생명이 있는 존재를 책임감 있게 키운다는 것에 자신이 없는 나는 반려동물은 꿈에도 키울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식물은 여러 차례 시도 아닌 시도를 해보았음에도, 선인장마저 내 옆에 오면 유명을 달리하게 되니 무언가 돌본다는 것의 DNA는 내게 없나 싶은 생각이었다. 고급 선인장이라면서 예쁜 토기에 담긴 선인장 화분 2개가 선물로 온 날로부터 두 달 남짓 지났을 때, 화분 위치를 옮겨 보겠다고 책장 위에서 화분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선인장 머리가 툭 하고 부러져 뒹굴었다. 하필 나에게 와서 목이 부러져 죽게 되다니, 이후로는 식물을 집에 들이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주변에는 반려 식물 키우기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다. 부모님만 하더라도 십 몇 년 이상 길러온 화분이 열댓 개가 넘고 학창 시절 함께 살던 룸메이트는 내가 말려 죽게 만든 화분도 살려서 장성하게 키워내 분갈이로 이사까지 시켜줬다. 무언가 돌본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과 마음을 들여 상태를 확인하고 제때에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 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 애정의 관계가 쉽게 성립되지 않았다.


그러던 내게도 반려 식물이 생겼다. 재작년 이맘때 즈음, 퇴근길에 지나는 동네 꽃집에 불쑥 들어갔고 토분에 담긴 극락조화 화분 하나를 일단 샀다. 위 지름이 30cm가 조금 안되는 사이즈 정도의 토분에 잎이 다섯 잎 정도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화분을 처음 보자마자 확인한 건 ‘키우기 편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애정을 주며 잘 키워보겠다 불현듯 다짐한 것 치고는 첫 물음이 알아서 잘 크는 식물인가를 확인한다는 게 모순이지만, 애정을 주어 더 잘 자라게 할 수는 있어도 기초 체력이 탄탄해서 좀 모질어도 버틸 수 있는 존재인지가 궁금했다.


극락조화는 극락조라는 새를 닮은 꽃을 피운다고 해서 극락조화라고 불린다. 남아프리카 원산지로, 노지에서 월동이 불가해 우리나라에서는 실내에서 키우기가 비교적 쉬운 식물이라고 한다. 물론 실내에서 꽃피우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고, 시원하게 뻗은 줄기에 비교적 넓은 초록 잎이 매력인 식물이다. 며칠에 한 번씩 물을 주면 좋냐는 물음에 겉흙이 마르면 그때 물을 듬뿍 주면 된다고 했는데, 추위에 약한 식물이니 너무 찬물도 좋지는 않다는 말에 물을 주기 전에는 대야에 물을 담아 두었다가 두세 시간이 지나 찬기가 좀 가시면 물을 준다. 급수를 하지 않는 날에는 잎에 먼지가 없게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고, 잎을 닦아주는데 다행히 아직도 잎이 5개여서 수고가 덜하다.


급하게 먹은 마음 치고 3년째 한집 살이를 잘 이어가고 있는 중이니, 나름 이제 ‘반려 식물 키웁니다’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길이도 좀 자랐고 뿌리도 제법 내린 것 같아 오는 봄에는 분갈이 해서 새 옷도 입히고 거름 많은 흙으로 바꿔줘야지 싶다. 극락조화의 꽃이 영구불멸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데, 혹시나 쉽게 피워내지 않는 꽃이 피는 행운도 바라보면서 소소히 나에게서 애정을 내어가는 쓰임으로 있어주었으면 한다.



UNIT 10. 마음을 내어준 물건

NAME.   극락조화 화분

FROM.   한국

SINCE.   2022

PRICE.   5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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