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봤으면 하는데.
어느 날, 시골에 있는 이모네 댁에 며칠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시간만 되면은 TV 앞에 앉아서 드라마를 시청하셨다. 그리고 두 분은 똑같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어이구 저 미친 X"
"저, 저 미친."
흔히 말하는 막장드라마라고나 할까, 또는 인기 있는 주말드라마. 그리고 제일 흥미로워하는 법정극.
그저 단순한 법정극이 아니라,
부부 사이에 불륜이나 패륜 같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 엄마와 아빠 또한 그런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저게 재미있어?"
그런 질문을 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저게 제일 재미있어."
확실히 자극적이고 흥미로울 수 있지만, 몇 번 계속 보면 결말까지 다 파악할 수 있을 거기서 거기였고 불행의 결말은 거의 비슷했다.
무엇보다 대부분은 부부 사이에서 이혼을 하니 많이 하면서 분쟁하는 이야기인데, 그것을 부부가 보고 있으니, 뭔가 아이러니했다.
'정말 재미있어서 보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즐겨보는 것 중 하나. '미운 우리 새끼'가 있다.
그 예능에는 게스트를 한 명씩 초청을 해 어른들과 함께 미혼의 아들을 관찰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그 게스트는 한 번씩 바뀌면서 각자 다른 게스트의 입장과 생각으로 매번 새로운 재미가 추가되곤 한다.
그리고 게스트가 미혼의 여성이면 고정으로 출연하시는 미혼의 아들을 가진 어머니들이, 자신의 아들을 어필하려고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 게스트 중에서는 배우 '송지효'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찍은 영화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게... 불륜에 관련된 영화예요."
송지효 씨는 조금은 말하기 어려운 듯이 말했지만, 진행자인 MC 신동엽은 그런 소재는 어머님들이 되려 좋아하는 것이라고 어려워할 필요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대로 어머니들은 웃으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한 어머니가 송지효 씨에게 물었다.
"그 영화에서 그거, 하는 역할이에요? 어떤 역할이에요?"
그거는 불륜을 하는 역할인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송지효 씨는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저는 본처의 역할이에요."
"그럼 다행이네."
그것을 물은 이유는, (어머님 입장에서 송지효가 자신의 며느리가 된다는 가정하에서)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싫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저 드라마나 영화상의 역할뿐이라고 할지라도 배우가 그런 사람인 마냥 인식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저 불륜녀의 역할을 하는 배우일 뿐인데, 정말 불륜을 하고 다니는 것 마냥,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고 비난을 받기도 하다.
그건 그만큼 감정이입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 아닐까.
엄마 아빠는 그런 드라마(?)를 좋아했다.
자극적인 내용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막장 요소를 넣는 드라마가 왜 인기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적어도 '사랑과 전쟁'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니까.
뻔하고 뻔했다.
엄마와 아빠와 내가 그런 것을 같이 보게 되면 반전과 분쟁의 요소는 늘 한결같았다. 그것 또한 엄마 아빠는 알고 있지만, 마냥 보고 있고 볼 것이 없을 때마다 챙겨보시곤 했다. 그리고 막장드라마 같은 걸 보실 때에는 이런 말도 하기도 한다.
"그, 그거. 미친 X 나오는 거 보자."
그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이나 이야기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아는 모양이었다.
상상이 가지 않는다.
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불륜, 이혼, 패륜, 재산 문제 같은 요소가 나오는 것을 버젓이 바라보고 있다니. 전혀 그 모습이 공감이 가지 않고, 어떨 때 보면 불안하기도 했다.
부부는 어려움을 하루하루 버티고 버텨, 끝까지 서로를 유지하는 게 결혼 생활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것을 갈라 세우는 요소들을 보여주는 것은 이미 자신들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입장에서는, TV에 나오는 것을 보고, 엄마나 아빠가 혹시 서로를 오해하고 싸우기라도 하면 어찌 되나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정말 TV는 TV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른 채널을 돌리고 끝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왜 자꾸 저런 걸 계속 봐? 뻔하고 뻔하잖아."
나는 저런 걸 보면 두 사람 사이에 괜한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숨겼다. 그리고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계속 TV를 보면서 말했다.
"부부 클리닉이잖아.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은 프로그램 이름이었고,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정식으로는 '부부 클리닉 - 사랑과 전쟁'이었다.
"저런 걸 봐 놔야, 낭중에 나나 네 아빠가 망할 짓 하고 있는지 아닌 지, 자기 스스로 알지."
어찌 보면 감탄할 수 있을 수 있겠지만, 아니 다시 들어보면 그냥 꽤나 무서운 말이었다.
"그냥 영화를 봐."
"아니 이게 제일 재미있어."
왠지 막장 드라마가 왜 시청률이 높은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