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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Jun 07. 2018

옛날 나의 아침밥엔 늘 '김'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자영업을 하면서 둘이서 한 사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영업의 특정상 주말이라고, 공휴일이라고 쉬는 날이 있는 건 아니었다.

 동생과 나는 늘 집에서 엄마 아빠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고, 늦은 시간까지 자고 있지 않으면 혼이 나기도 했다.

 그때는 부모님이 밤늦게 늘 11시나 12시쯤에 돌아오신 것 같았다.

 그리고 쉬는 날 없이 매일 부모님이 같은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다투는 일도 많았고, 동생과 나는 그저 그 분위기에서 도망쳐 밖에 놀러 나간 적도 많았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그때 부모님은 어디 놀러 보내주지도, 같이 놀러 가지 못하기에, 주말에는 고모나 이모네 집에 놀러 가서 사촌들과 놀도록 만들어 주곤 했다.

 

 그렇게라도 우리를 걱정해주는 게 최선이었지만, 아침만큼은 딱히 변화는 없었다. 


 학교는 가까웠지만, 엄마 아빠는 늘 피로한 모양인지 아침밥에 국이나 찌개 같은 것이 같이 올라온 적이 없었다. 밥은 늘 되어 있었지만 반찬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 몰랐고, 그냥 엄마가 잠을 자기 전에 식탁 위에 얹어 두었던 것을 스스로 먹고 등교하는 게 전부였다.



 매일 엄마 아빠가 바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섭섭해질 수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불구하고 잘 이해를 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내가 기특하다. (하지만 분명 나는 떼쓰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빵과 잼이 올라와 있을 때는 분명 퇴근길에 집 근처에 있던 빵집에서 빵을 사 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 아빠가 참 무신경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은 했다.

 (그때는 엄마나 아빠나 요리를 못한다고 {맛의 부분에서} 생각을 못했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못 해주는 걸로 알았을 뿐이지.)

 밥은 항상 전기밥솥에 되어 있었고 반찬 또한 꺼내먹으면 그만이었지만, 나는 1인 분으로 먹게 나온 조미 김을 자주 먹었다.

 입이 짧은 탓에 반찬에 투정할 것도 별로 없었고, 그다지 김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걸로 만족했다.

 엄마는 그 후 그런 점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했지만, 그 반면에 갓난아기 때부터 입이 짧은 것에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일하는 곳은 농수산물과 관련된 직종이었고, 그로 인해서 밥은 잘 챙겨 먹지는 않아도 과일은 정말 잘 챙겨 먹었다.

 



 부모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한창 클 나이에 영양분 좋은 것들을 많이 먹어도 모자를 나이에, 매일 아침에 밥에 김만 싸 먹은 것만 알면 얼마나 미안할지. 적어도 내가 내 아이가 있다면 그런 일은 절대 없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나마 과일이라도 많이 먹이려고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입이 짧았던 만큼, 귀찮은 것도 싫고 간편한 게 손이 갔던 만큼 먹는 것도 같았다. 쉽게 먹을 수 있는 귤도 먹는 게 싫증이 나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엄마가 엄청 나무랐다.

 거기다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둘 다 쓰는 것도 귀찮았던 나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바꿔 가면서 쥐는 게 싫어서 한 손에 다 잡고 밥을 먹었던 적도 있고, 혼쭐이 나서야 반항을 하듯 젓가락만 쓰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했다.

 이 정도면 귀찮아하는 게 너무 심해서 김만 먹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역시

 아마 한국 사람이라면, 김치만큼 익숙하고 식탁에 흔한 게 김이 아닐까?

 한국의 김(金)씨 성 마냥…




 그래서 그런지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마른 편이었다. 어릴 적부터 입맛이 까다로워서 밥을 잘 안 먹기도 했지만, 아침 점심 저녁을 영양가 있게 잘 먹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엄마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침은 그렇게 먹고 점심은 학교에서 먹고 저녁은 주변의 식당에서 사 먹으라고 돈을 받기도 했다. 



 정확하게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자주 보게 된 건 중학생 때쯤이었다.

 그때는 정말 놀랄 정도였는데, 

 사실 그 때 무렵 사업의 상황이 좋지 않아지고 있었고, 엄마가 손을 빼고 나와 동생에게 더 신경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엄마, 오늘 누구 왔어?"

 나는 그날 다른 누군가가 와서 밥을 차려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늘 김은 존재했다.

 그리고 나 또한 아무리 반찬이 많이 있어도, 맨밥을 먹는 게 아니라 김과 싸 먹고 반찬을 짚었다.

 


개인적으로는 밥 위에 참치를 얹고 김을 싸 먹는 게 정말 안성맞춤이다.  마치 찐 고구마 위에 김치를 얹어서 먹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매번 진수성찬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엄마가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아침상을 잘 준비해 주셨었다.


 아마 무심코, 피로를 변명 삼아 김만 반찬으로 주었던 시절을 엄마는 나에게 미안해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식이 영양가 고루 골고구 먹지 못하는데, 좋아라 할 부모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의 우리 집의 환경이 어떤지 잘 아니까, 지금이 돼서도 그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김을 매번 집어 먹는 나에게 엄마는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었다.


"그렇게 김만 집어먹으면 진짜로 계속 김만 먹인다."

 그땐 아마, 기왕에 열심히 차려본 것인데, 맛없어서 김만 집어 먹는 게 아닌가 하는 게 엄마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하게 엄마에게 말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아무리 반찬이 다양하게 많이 있고 풍부해 보여도, 맛이 없을 때가 있었다.

 나는 그래서 언제나 간이 안성맞춤으로 잡혀 있는 김을 자주 집어 먹곤 했다.


 내가 요리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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