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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l 09. 2024

어느 틈에



어느 날 갑자기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옷을 벗어 놓은 채로 현재 내가 머물러 있는 시간에서 공중 부양하듯 나만 조용히 홀로 옮겨지고 싶다. 인생이 무겁게 느껴질 때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이다. 그럴 땐 훌쩍 무작정 떠나곤 했다. 목적지가 없을 땐 고속도로를 헤매다 막다른 길에 들어서기도 하고 멀리 있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을 만나러 가기도 했었다. 반가운 지인이 있는 곳은 탁한 공기가 아닌 신선한 공기다. 내 쉬는 숨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때 반갑게 맞이해 주었던 사람은 잊지 못한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되어준다면 멀리 있는 반가운 지인이 되어줄 수 있다면 흔쾌히 받아들이고 싶다. 지난 주말 어릴 적 고향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비가 내리는 모습이 시원하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며 안부를 물었다. 며칠간 더운 여름을 실감하고 단비가 내리던 날이었다.난 꽉 막힌 서울 양양 고속도로를 지나 양주 톨게이트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지하철 창가에 빗줄기가 떨어지는 모습과 함께 정겨운 메시지를 보내는 언니 마음이 전달되었다. 그동안 안부를 전하지 못하고 지냈던 미안함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지하철 안이라 안부만 묻고 끊었다. 특별한 일이 있거나 모임의 구성원이 아닌 이상은 서로의 일정으로 만남을 쉽게 가질 수가 없다.  



    


며칠 후, 대형카페링크를 보내왔다. 바로 난 같이 가자고 답장하고 다음 날 약속을 잡았다. 다행히 주말 스케줄이 비어있었다. 지인들의 오랜만에 연락은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무거움을 느낄 때 또는 적막한 무대에서 리허설을 위한 외침이 필요할 때이다. 리허설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땐 미아가 되어 무대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난 지인들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오는 걸 반가워하고 갑작스럽게 약속 잡는 것도 게의 치 않는다.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는 시간은 젊음이 그리워서도 이기도 하지만 그때 철없었던 행동과 몸짓들을 반성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두터운 우정을 다져 주기도 한다. 언니의 따듯한 마음을 난 기억한다. 고된 일을 하는 중간마다 고아원이나 시설에 주말마다 다니며 봉사의 손길을 잊지 않았던 모습에 나도 따라 나섰던 기억이 있다. 그때 처음 봉사라는 것을 해봤었다. 추운 겨울날 큰 다라이에 물을 가득 붓고 담긴 담요를 잘근잘근 밞아야 했다. 그날은 처마 밑에 고드름이 달린 날이었다. 그 후 우리는 장애우들과 게임을 하며 즐겼던 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언니는 여전히 옥상에 작은 화분에 토마토, 감자, 고추들을 심으며 자연을 희구하고 있었다.     

어느 틈에 우리는 무거운 짐들을 지고 그동안 우리가 살아왔던 생생했던 삶들을 이야기하는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동심은 여전했다. 카페 안에 핀 작은 꽃에 감동하고 해가 저물고 아파트 불들이 켜진 가정 안에 희노애락을 뒤로 하고 멋진 야경을 만들어주는 풍경의 아름다움에 취해 잔을 기울였다. 인생이란 무거움과 가벼움의 균형을 잡아가는 방법을 알아가는 길이였다.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된다.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반면에 짐이 완전히 없다면 인간 존재는 공기보다 가벼워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벼려, 지상의 존재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겨우 반쯤만 현실적이고 그 움직임은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지고 만다.

- 밀란쿤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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