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2
어느 순간부터 나에 대한 설명을 자꾸만 하기 시작했다. 글을 쓸 때면 자의식이 용수철처럼 튕겨올라와 나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나는 이런 성격이라서
나는 이런걸 잘 못해서
나는 이런 경험이 있어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서
등등
이러한 나에 대한 수많은 전제조건이 붙고
그 뒤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마도 나의 내면 깊은 어딘가에, 나를 좀 더 알아봐 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나에 대한 설명을 하게 만드나 보다.
어떠한 설명 없이 '지금의 나' 로서만 타인 앞에 존재할 수는 없을까.
가끔 장미를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장미는 누구에게도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야생 장미이든 재배되는 장미이든, 크기가 다르고 , 색상이 다르고 형태가 달라도 누구나 단번에 자신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장미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이더라도
장미를 마주 하게 된다면 " 아 이게 장미구나"라고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장미는 오로지 자신의 존재만으로
많은 이들의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향기에 취하게 하고, 겹겹이 쌓인 신비로운 꽃잎에 사로잡혀 넋을 놓고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어느 이른 여름 아침, 도심 속 공원을 거닐다 장미 덤불을 살짝 스칠 때 훅 퍼지는 예상치 못한 향기는 어느 꽃과도 비교할 수 없도록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각인시켜준다.
그저 존재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자신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꽃이 바로 장미이다.
또한 장미 한 송이를 건네는 것이 어떤 말 보다 많은 의미를 전달할 때가 있고 장미꽃 한 다발이 모든 것을 대신할 때가 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감정을 장미 100송이에 담아 전달하기도 하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서 정봉이가 만옥이를 기다리며 오랜 시간 동안 손이 빨개지도록 손에 꼭 쥐고 있던 장미꽃 한 다발처럼 순수한 진심을 온전히 대변해주기도 한다.
이처럼 장미는 존재 자체가 자신의 전부가 되는 자존감이 높은 그런 꽃이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서
스치기만 해도 향기가 각인되고
관심을 원해서
가던 발걸음도 멈추게 할 만큼 매혹적인 것이 아닌
난 나야, 지금 모습이 그냥 나일 뿐이야.
라며 별 다른 설명 없이 고고하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저 지금의
본인 자체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시킬 수 있고
현재의 나가 내 전부가 될 수 있는
그런 장미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언젠가 나도
'지금의 내 모습이 그냥 나야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해?" 라며
고고하게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장미를 동경의 눈빛으로 오랫동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