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너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만 있다면
휴대폰 최근 기록 목록을 열어 동생의 이름을 찾기 위해 한참 동안 스크롤해서 목록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내 동생 이름은 'Dory'라는 애칭으로 저장되어 있다.
Dory(도리)는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등장 캐릭터 중 하나이다. 단기 기억상실증을 가지고 있고 낙천적 성격으로 주인공 니모가 아빠를 찾는 여정을 함께 하는 아주 귀여운 캐릭터이다. 'Dory'를 보는 순간 내 동생의 까불 발랄하면서 덜렁대면서 귀엽고 낙천적인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내가 동생을 부르는 별명이자 애칭이 되었다.
2022년 4월 19일 오후 6시 37분에 걸려왔다.
내 동생이 나에게 건 마지막 전화가.
내 동생이 자신의 생애 마지막으로 건 전화가.
그날은 엄마 생신이었다. 생신 기념으로 복국을 먹으려고 식당에 앉아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날 동생의 목소리는 내가 들었던, 기억하는 동생의 목소리 중 가장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 어디야, 집이야?
- 엄마 생신이어서 지금 밥 먹으러 왔어.
- 뭐 먹으러 갔는데
- 우리 복국 먹으러 왔어
- 아 잘했네
일상적인 대화.. 우리의 인사말.
며칠 전 엄마로부터 동생이 개인 파산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말을 전해 들었지만 엄마가 본인이 이야기하기 전에는 모른 척하라는 말에 동생이 개인파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었을 때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했다.
이제 이자만 내도 버거웠는데 원금과 이자를 같이 상환해야 하다 보니 도저히 안될 것 같아 개인파산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 그리고 힘없는 목소리.
- 너 목소리가 왜 이렇게 힘이 없어
- 아 아니야
동생은 원주로 가서 닭갈비 음식점을 오픈해서 3년 정도 운영했었다. 이미 지역에서 유명한 닭갈비 음식점과 경쟁하고 텃세를 극복하면서 겨우 정착하나 싶었는데, 이제 좀 정착해서 흑자가 나나 싶었는데 2020년 초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쳤다. 그리고도 1년 반 정도를 버텼는데 적자가 너무 심해지자 가게를 접고 지입차를 빌려 물류 배송을 한다고 했다. 당분간 자영업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가게를 다시 운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닭갈비 음식점 겨우 잘 정리했는데 또 음식점 오픈이라니...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하고 소식을 통보하듯 전한 것이었기에 그저 무사히 운영되기만을 바라면서 지켜보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하지만 코로나 감염이 악화되면서 거리두기와 집합 금지가 강화되면서 가게는 밤 9시면 손님이 없어 문을 닫아야 했고, 손님이 없으니 당연히 운영이 어려워진 상황이 몇 달째 지속되었다. 그러면서 계속 빚이 늘어났던 모양이다.
버티다 버티다 개인파산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와 엄마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친한 친구가 몇 년 전 개인파산을 했던 적이 있고, 힘든 시기를 잘 지내고 지금은 다시 일어서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빚에 허덕이면서 원금 이자를 갚느라 허덕거리는 것보다 개인파산 신청으로 바닥을 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동생이 그날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스스로 원하는 삶의 모습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얼마나 큰 좌절감을 느꼈는지, 어떤 절망감으로 두 무릎을 꺾여 주저앉아았었던건지, 가족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주저앉으면 일어서야 하지만 더 이상 일어서고 싶지 않았던 마음을, 가족에게 빚이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삶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얼마나 많이 찾아보았는지에 대한 것들을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의욕은 있지만 가진 것이 없었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작했던 모든 일이 좌절되었고,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주말 휴일 없이 내내 일했지만 남은 건 빚과 개인파산 신청을 해야 하는 동생의 상황을 알았으면서... 그날 그 꺼져가는 듯한 힘없는 느릿느릿한 목소리를 들었으면서 나는 아무것도 더 캐묻지 않았다. 동생과 내가 이 생에서의 마지막 통화를 하고 있는 동안 내 아들은 한 손에 젓가락을 하나씩 쥐고 드럼을 치듯 식탁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면 안돼. 밖에서는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
너무 시끄러웠다. 동생이 하는 말에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동생의 목소리가 신경 쓰이고 뭔가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동생의 마지막 말은 나와 엄마에게 빚이 넘어가지 않게 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게 내 동생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내 하나뿐인 사랑하는 동생이 이 생에서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동생은 세상을 떠났다.
동생의 휴대폰을 켜서 통화목록을 열어보니 나에게 걸었던 전화가 마지막 전화였다.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했어야 하는 말은, 동생이 했어야 하는 말은 그런 말이 아니어야 했다. 나중이라는 게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나중에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리고 빚이며, 개인파산이며, 요즘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다. 나중에.
이제 그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나중에 내가 동생에게 물으려고 했던 것들, 동생에게 해주려고 했던 말들을 그때 했어야 했다.
'Dory'의 통화기록을 다시 훑어보니 부재중 전화가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
동생의 부재중 전화는 밤에 주로 와있었다. 밤 9시 이후에는 즐겨찾기에 등록해놓은 전화번호를 제외하고는 벨소리가 울리지 않게 '방해금지' 기능을 설정해두었다. 하지만 동생은 즐겨찾기 목록에 저장되어 있었다. 동생의 부재중 전화에 나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은 날이 많았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4월에 우리는 단 두 번만 통화했다. 3월에도 동생은 밤에 부재중 전화를 걸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에도 다음날에도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나는 왜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지?
기억나지 않는다. 동생의 부재중 전화 기록을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동생이 떠나고 난 후에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자체가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의 휴대폰을 열어 동생과의 통화기록을 훑어보았다. 역시나 밤에 부재중 전화가 많았다. 그리고 엄마와는 그날, 또는 다음 날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 4월 6일에는 엄마와 동생이 36분 동안이나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 엄마가 동생과 이런저런 속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동생은 정말 잘 지내면 연락을 잘하지 않는데.
내가 가정을 꾸리고 나의 일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삶에만 몰입해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일, 해야 할 일 이외에는 보지 않고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던 것 같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동생에게 무관심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가 떨어져 살았던 지난 4년의 시간 동안 나는 동생에게 관심을 거두어버렸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 무관심 속에서, 나와 엄마도 살길이 빠듯하니 너는 네 알아서 네 인생 잘 꾸려야 한다는 메시지로 힘들 때 힘들다는 말을 결코 꺼내어놓을 수 없는 높고 두꺼운 벽을 만들어두었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요즘 이 생각을 자주 한다. 엄마와 나에게 전화를 걸었던 그 밤에 동생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한 번쯤 자기 마음속에 꼭꼭 눌러 담았던 절망들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싶은 날이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먼저 알아봐 주길, 손 내밀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받지 않는 전화를 끊으면서 동생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중에 전화하려고 했다.
정말로 그러려고 했다.
이렇게 떠나버릴 줄은 몰랐다.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아서 정말 힘들었을 순간에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하고 보듬어주지 못했던 누나를 용서해줄래.
동생이 떠나고 나서 매일같이 부질없는 상상을 한다. 우리가 밥 먹으려고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동생의 전화가 걸려오고 나는 그 전화를 받는다. 동생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 식탁에서 일어나 조용한 밖으로 나가 묻는다.
- 너 무슨 일 있지.
동생의 부재중 전화 기록을 확인하고 나는 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동생이 요즘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 주말에 엄마랑 같이 올라갈게.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동생이 까까머리 어린 시절 마당에서 자전거에 앉아서 찍었던 사진을 배경으로 ♥Dory♥라고 적힌 화면이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