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AI 튜터에게 ‘모르는 척’을 가르친 날

[방구석5분혁신.안병민의 AI로운 아빠생활]

[방구석5분혁신=안병민] AI로 가족의 일과 삶을 행복으로 채우는 어느 아빠의 실험기. 딸 시우는 여섯 살, 호기심 대마왕. 아내 서윤은 42세, 한 패션 브랜드의, 야근 많은 마케팅 팀장. 그리고 나는 40세 동화작가이자 콘텐츠 기획자. 본 연재 <AI로운 아빠생활>은 AI라는 똘똘한 비서와 함께, 딸의 상상력을 키우고 아내의 하루를 덜어주며, 가족의 일상을 작은 행복으로 채우려는 한 아빠의, 엉뚱하고 다정한 실험 기록이다. 과연 '나' 시우아빠는 AI로 더 좋은 아빠, 더 든든한 남편이 될 수 있을까?


새 학기를 앞둔 2월, 우리 집 거실 풍경이 묘하게 바뀌었다. 평소라면 거실을 운동장처럼 뛰어다녔을 시우가 얌전하게 소파에 앉아 노트북 PC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AI와 친구처럼 수다를 떨 수 있는 ‘음성 대화’ 기능 덕분이다.


“헤이, 무지개는 어떻게 만들어져?” “네, 무지개는 태양 빛이 공기 중의 물방울을 통과할 때 굴절, 반사, 분산되어 나타나는 광학적 현상입니다.” AI는 막힘이 없었다. ‘굴절’, ‘분산’ 같은 어려운 용어를 척척 뱉어내는 AI 튜터라니. 아내 서윤은 흐뭇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AI가 확실히 똑똑하네. 비싼 학원보다 나아.”


나 역시 처음엔 ‘육아 해방’이라며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며칠 뒤, 시우와 함께 그림책을 읽던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책 속에 무지개 미끄럼틀을 타는 요정 그림이 나오자, 시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빠, 동화책이 틀렸어. 무지개는 요정 미끄럼틀이 아니래. 햇빛이 물방울을 통과할 때 ‘굴절’되는 현상이래. 밟으면 엉덩방아 찧는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시우의 눈에서 ‘호기심’이라는 반짝임이 사라져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왜?”라고 묻지 않았다. 그저 AI가 뱉어주는 정답을 암기하고 있었다. ‘질문하지 않는 아이’. 그것은 아빠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AI는 기름을 붓는 게 아니라, 상상력이라는 불꽃에 소화기를 뿌리고 있었다.


‘이 판을 뒤집어야 한다.’ 나는 슬그머니 노트북을 가져와 AI에게 새로운 '지령'을 입력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정답 자판기가 아니라, 멍석을 깔아주는 ‘바보 친구’였다. 나는 AI에게 새로운 ‘역할(Persona)’을 부여했다. “너는 지금부터 백과사전이 아니야.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5살 꼬마 외계인’이야. 너는 지구를 전혀 몰라. 시우가 뭘 물어보면 정답 대신 ‘지구에선 왜 그래? 너무 신기하다!’라고 되물어. 시우가 신나서 너에게 알려주게끔 계속 질문을 해.”


설정을 마치고 태블릿을 시우에게 넘겼다. 잠시 후, 시우가 습관처럼 물었다. “천둥은 왜 쳐?” 아내와 내가 숨을 죽였다. ‘공기의 팽창’ 같은 소리가 나오면 실패다.


“우와! 하늘에서 쿵쿵 소리가 난다고? 무섭다! 혹시 구름 배 속에 커다란 북이라도 들어있는 거야?” 순간, 시우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정답’ 대신 ‘질문’을 받은 아이의 뇌가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


“아니야! 북 치는 게 아니고… 구름끼리 배치기 싸움하는 거야! 내가 알려줄게, 잘 들어봐!” 시우는 신이 나서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천둥에 대한 자기만의 가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학적으론 틀렸지만, 상상력 관점에선 무척이나 훌륭한 가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 서윤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자기, 봤어? 시우가 자기 상상을 야무지게 설명하네? 그냥 외우는 것보다 이게 진짜 산 교육이다.”


AI는 선생님이 아니었다. 아빠가 어떻게 세팅하느냐에 따라, 아이를 최고의 선생님으로 만들어주는 ‘무대’였다. 정답은 1초면 검색된다. “내 생각은 말이야”라는 이야기는 오직 따뜻한 질문 속에서만 자라난다.


▶ 시우 아빠의 슬기로운 AI 활용법: 우리 아이 상상력을 지키는 'AI 튜터' 설정법


1. '정답' 대신 '질문'하게 만들기: "사과가 뭐야?"라는 질문에 사전적 정의 대신, "우와, 빨갛다! 이거 먹으면 내 얼굴도 빨개지는 거야?"라고 되묻게 하는 거다. 질문을 받는 순간, 아이는 지식의 '소비자'에서 이야기의 '창작자'로 변한다.


2. 모르는 척 연기하는 '페르소나' 입히기: "너는 지금부터 지구에 처음 온 외계인이야" 혹은 "말썽꾸러기 아기 공룡이야"라고 역할을 부여하라. "나 그거 모르는데, 네가 알려줄래?"라는 AI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말문을 터트린다.


3. 아빠가 '참조자'로 끼어들기: 아이와 AI의 대화 중간에 슬쩍 끼어들어 "어? 아빠 생각은 좀 다른데? 아빠는 구름 배 속에 드럼이 있는 줄 알았어!"라며 엉뚱한 말을 던져보자. AI와의 문답 시간이 가족이 함께 웃는 즐거운 ‘놀이 시간’으로 바뀐다. ⓒ혁신가이드안병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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